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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의 행정 기관 권한이 미치는 구·군, 읍·면·동·리로 구분된 지역. 우리나라 행정 구역은 특별시·광역시·도·시·군·구·읍·면·동·리로 구획되어 있다. 행정 구역은 인위적인 요인에 의해 구획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구의 비례에 따라 결정된다. 인구의 증감과 시역 변동 등은 행정 구역을 개편시키며 지역의 변화를 반영한다. 부산광역시는 서쪽으로는 경상남도 김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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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의 자치 행정 구역. 부산 지역의 구·군제는 1951년 9월 1일 설치된 중부출장소, 서부출장소, 영도출장소, 부산진출장소, 초량출장소, 동래출장소 등 6개 출장소에서부터 시작된다. 1957년 1월 1일 구제가 실시되며 각 출장소는 중구, 서구, 동구, 영도구, 부산진구, 동래구로 개편되었다. 1975년에는 대연출장소 및 수영출장소를 합해 남구가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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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내에 있는 법으로 정해진 동. 법정동(法定洞)은 대한민국 법정 구역으로, 법률로 지정된 행정 구역이다. 행정 운영의 편의를 위하여 설정하는 행정동은 주민 수 증감에 따라 수시로 설치 또는 폐지되지만, 법정동은 법률로 지정되어 변동이 쉽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동 대부분은 1914년 시행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정하여진 것이다. 동명은 대부분 예부터 전해...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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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서쪽에 있는 구. 1951년 설치된 중부출장소에서 따와 중구(中區)가 되었다. ‘중부출장소’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 부산시청 등 주요 공공 기관과 금융 기관, 각종 기업체, 주요 소비 시장 및 유통 산업이 집결해 있어 부산의 중추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구 지역은 통일 신라 시대 동래군 동평현에 소속되었다가 고려 시대인 1018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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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에 있는 법정동. 광복동(光復洞)은 1876년(고종 13) 일본인 전관 거류지가 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3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다. 이후 부산의 도심으로 성장하며 상업 및 업무 기능이 집중함에 따라 주거 인구는 줄어든 반면 유동 인구는 급격히 증가한 상업 지역으로 변모하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가장 많이 살았던 지역으로, 광복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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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에 있는 법정동. 남포동(南浦洞)은 1931년 시작된 남빈(南濱) 매축 공사로 대규모 토지가 조성되며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6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다. 이후 부산의 도심으로 성장하며 상업 및 업무 기능이 집중함에 따라 주거 인구는 줄어든 반면 유동 인구는 급격히 증가한 상업 지역으로 변모하였다. 행정동으로 남포동 1개가 있다.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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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에 있는 법정동. 대창동(大昌洞)은 1913년 대규모 매축지가 조성되며 부산항과 인접한 지역으로 인구가 급증하여 2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다. 이후 부산의 도심으로 성장하며 상업 및 업무 기능이 집중함에 따라 주거 인구는 감소하여 대창동 1가는 행정동인 중앙동 관할로, 대창동 2가는 행정동인 영주동 관할로 되었다. 대창동은 일제 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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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에 있는 법정동. 대청동(大廳洞)은 1876년(고종 13) 일본인 전관 거류지가 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4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다. 이후 부산의 도심으로 성장하며 상업 및 업무 기능이 집중함에 따라 주거 인구는 감소한 반면 유동 인구는 증가하였다. 대청동은 초량 왜관의 연향 대청(晏饗大廳)[일본 사신을 맞아 연회를 베풀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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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에 있는 법정동. 동광동(東光洞)은 1876년(고종 13) 일본인 전관 거류지가 되고, 일제 강점기 부산항의 발달로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며 5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다. 이후 부산의 도심으로 성장하며 상업 및 업무 기능이 집중함에 따라 주거 인구는 감소한 반면 유동 인구는 증가하였다. 동광동은 초량 왜관의 동관이 위치해 있어 붙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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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에 있는 법정동. 보수동(寶水洞)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 거류지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3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으나, 이후 상업 및 서비스 시설이 집중하며 주거 인구가 감소하였다. 행정동은 보수동이며, 법정동인 보수동 1가, 보수동 2가, 보수동 3가로 이루어져 있다. 보수동은 보수천(寶水川)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보수천은 개항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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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에 있는 법정동. 부평동(富平洞)은 1876년(고종 13) 일본인 전관 거류지가 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4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다. 이후 부평동이 속한 중구가 부산의 도심으로 성장하며 상업 및 업무 기능이 집중함에 따라 인구 감소가 발생하였다. 행정동인 부평동은 법정동인 부평동 1가, 부평동 2가, 부평동 3가, 부평동 4가로 이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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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에 있는 법정동. 신창동(新昌洞)은 1876년(고종 13) 일본인 전관 거류지가 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2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다. 이후 부산의 도심으로 성장하며 상업 및 업무 기능이 집중함에 따라 주거 인구는 감소한 반면 유동 인구는 증가하여 4개의 법정동으로 되었다. 행정동은 광복동이며, 창선동 1·2가와 광복동 1·2·3가로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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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에 있는 법정동. 영주동(瀛州洞)의 옛 이름은 임소(任所)이다. 임소는 개항 후 외교 통상의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1890년(고종 27)에 설치한 감리서[현 봉래초등학교 자리]의 관원이 근무하는 직소(職所)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지역의 공식적인 동명이 영주동이 된 것은 감리서가 있던 영선산(瀛仙山)에서 유래하였다. 감리서 관원들이 영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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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에 있는 법정동. 중앙동(中央洞)은 1876년(고종 13) 일본인 전관 거류지가 되고 1913년 대규모 매축지가 조성되며 부산항과 인접한 지역으로 인구가 급증하여 7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다. 이후 부산의 도심으로 성장하며 상업 및 업무 기능이 집중하여 주거 인구가 감소하자 대창동 1가와 합하여 행정동인 중앙동에 속하게 되었다. 중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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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에 있는 법정동. 창신동(昌新洞)은 1876년(고종 13) 일본인 전관 거류지가 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2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다. 이후 부산의 도심으로 성장하며 상업 및 업무 기능이 집중함에 따라 인구 감소가 발생하여 행정 구역이 통폐합되며 행정동인 광복동에 속하게 되었다. 창신동은 1947년 일제식 동명 개칭 때 붙여진...
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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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서남부에 있는 구. 1951년 이 지역에 출장소가 설치되었는데, 당시 중앙동에 소재했던 부산시청을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서부출장소(西部出張所)라고 불렀다. 그 후 1957년 구제를 변경하면서 서구(西區)가 되었다. 서구는 1740년(영조 16) 동래부 사천면(沙川面)의 구초량리·대치리·신초량리·목장리·감천리·독지리·장림리·다대리에 해당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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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서구에 있는 법정동. 부민동(富民洞)의 남쪽에 있다고 하여 남부민동(南富民洞)이라 이름 붙여졌다. 남부민동은 조선 후기 동래부 사하면 부민리에 속하는 부민포 부근 지역이다. 일제 강점기 초 이곳이 매립되면서 새로운 터가 만들어져 1914년 남부민정(南富民町)이라 하였다. 1947년 남부민동으로 이름 하였다. 1951년 서구출장소가 설치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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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서구에 있는 법정동. 동대신동(東大新洞)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 거주가 확대되며 인구가 급증해 3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다. 1947년 한국식 동명인 동대신동 1·2·3가로 개칭되었으며, 행정동은 동대신 1·2·3동이다. 동대신동이란 지명은 대신동의 동쪽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대신동 지명이 처음 생긴 것은 1914년으로 추정된다.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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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서구에 있는 법정동. 부민동은 구초량리라고도 불렸다. 조선 시대 이곳 일대는 억새풀과 띠로 우거져 있어 새뛰 또는 샛띠라고 불렀다. 초량(草梁)은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남부민동에서 암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샛띠 고개는 이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초량 지역이 너무 넓어 이곳을 구초량이라 부르다가 부민동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부민’ 지명은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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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서구에 있는 법정동. 부용동(芙蓉洞)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 거주가 확대되며 부민리에서 분할되었고, 1924년 경상남도청이 이전하며 급속하게 성장하여 2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다. 이후 상업 및 업무 기능이 집중하며 인구 감소가 발생하여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부민동 1·2·3가와 합쳐지며 행정동인 부민동 관할 하에 있다. 부용동이란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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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서구에 있는 법정동. 이곳의 옛 지명은 닥밭골[楮田] 또는 고분도리였다. ‘대신동’이란 지명은 1914년경에 처음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대신동은 보수천의 호안 공사 이후 일본인이 거주하면서 새로운 생긴 시가지를 ‘한새벌’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대신동은 한새벌의 한자식 표현이다. 원래 인가가 없던 곳으로 조선 후기 동래부 사하면의 부민포(富民浦)와 대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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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서구에 있는 법정동. 움집을 의미하는 ‘애막’이라는 옛말이 변하여 한자로 아미(峨嵋)가 되었다는 설과, 이곳에 반월형의 토성이 있었는데 이것을 아미월(峨嵋月)이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조선 후기 동래부 사하면 구초량리 지역이었으며, 1896년(고종 33)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 부민리 일부를 분리하여 곡정(谷町) 1·2정목(丁目)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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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서구에 있는 법정동. 암남동(岩南洞)이란 명칭은 사하면 암남리에서 유래하였다. ‘암남’은 아미동 지명과 관련한 ‘아미골’의 남쪽이란 의미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정된다. 암남동은 신석기 시대 유물인 암남동 패총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해안을 따라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동래군 사하면(沙下面) 암남리(岩南里)에 속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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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서구에 있는 법정동. 초장동(草場洞)은 이 지역에 초원이 있어 붙여진 지명이라고 전한다. 이곳은 초원이 좋아서 용마(龍馬)가 하강한 곳이라고 전해지며, 조선 시대 목마장이 있었다고 전한다. 초장동은 조선 후기 동래부 사하면의 부민리(富民里) 일부로, 정확한 시기를 확인할 수 없으나 일제 강점기 부민동 일부를 분할하여 초장정(草場町) 1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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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서구에 있는 법정동. 일제 강점기 소화정(昭和町)으로 불리다가 해방 후 충무동이 되었다. 충무동 지명은 이곳의 충무동 로터리에서 비롯되었다. 조선 시대 부민포(富民浦)에 속한 해변이었으며, 1918년 지금에 서구청 자리에 대정 공원(大正公園)이 조성되면서 그 아래로 광장과 함께 로터리가 생겼다. 당시 이 광장은 부산에서 가장 넓은 곳으로 모든 행사와 집회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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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서구에 있는 법정동. 토성동(土城洞)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 거주가 확대되고 6·25 전쟁을 거치며 피난민이 유입되어 인구가 급증하면서 5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다. 이후 상업 및 업무 기능이 집중하는 도심지로 성장하면서 주거 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행정 구역을 통폐합, 충무동 1·2·3가와 합쳐 행정동인 충무동의 관할 하에 있다. 토성동이란...
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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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앙 남쪽에 위치한 행정 구역. 동구(東區)라는 지명은 일제 강점기 도심의 중심부[현재의 중구] 동쪽에 위치한 데서 비롯되었다. 조선 시대 이곳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거점 지역이었다. 1407년(태종 7) 부산포[현 좌천동 일대] 부근에 부산포 왜관이, 1607년(선조 40) 지금의 고관 자리[부산진역 부근]에 두모포 왜관이 설치되어 이것이 16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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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에 속하는 법정동. 범일동(凡一洞)의 지명은 범천(凡川)에서 유래한다. 범천은 옛날 이 하천 주위에 호랑이가 나타나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일제 강점기 시구 개정을 단행하면서 범천 1리(凡川一里)와 범천 2리(凡川二里)를 합병하여 범일동이 되었다. 범일동 지역은 조선 후기 동래부 동평면에 소속되었으며, 1910년 범천 1리와 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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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에 속하는 법정동. 조선 시대에는 두모포 또는 고관(古館)[초량으로 왜관이 이전하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을 재편하면서 수정동 지명이 처음 사용되었다. 수정동(水晶洞)의 지명은 이 지역의 토질이 황토가 적고 모래가 많아서 비가 와도 신발에 물이 묻지 않았으며, 맑은 샘이 솟아나는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또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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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에 속하는 법정동. 좌천동의 지명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수록된 좌자천(佐自川)에서 유래되었다. 좌자천은 가야산에서 시작되어 지금의 수정동 중앙을 거쳐 부산진 동쪽을 돌아 바다로 들어가는 작은 소하천이었다. 좌자천의 지명은 이곳이 바다 입구여서 태풍의 피해가 잦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물이 깊지 않고 잦은 물[밑바닥에 깔린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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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에 속하는 법정동. 초량(草梁)이란 지명은 이곳에 있었던 초량항에서 비롯되었다. 초량은 우리말로 ‘샛뛰’를 한자화하여 표기한 것으로 향토지에 전해 온다. 샛뛰는 억새·갈대라는 뜻의 ‘초(草)’ 자와 뛰 ‘량(梁)’ 자 음을 따서 지은 것이다. 풍수상으로 부산포 지형이 와우형이라 풀밭이 있어야 하기에 초량이란 명칭이 생겨났다는 설도 있다. 초량은...
영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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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부에 있는 구. 영도구(影島區) 지역은 일찍이 절영도(絶影島) 혹은 목도(牧島)라 불렀다. 육지와 인접하며 말을 키우기에 적합한 지리적 조건을 갖춰 일찍이 나라에서 말을 키우는 국마장(國馬場)이 있어 목도라 하였으며, 절영도는 이곳에서 자란 말은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데 빨리 달리면 그림자가 못 따라올 정도라고 하여 ‘끊을 절(絶)’, ‘그림자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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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법정동. 남항동(南港洞)은 일제 강점기 부산항의 발달로 급격히 성장하여 3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으나, 이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대교동 1·2가, 대평동 1·2가와 합쳐 행정동인 남항동의 관할 하에 있다. 남항의 옛 이름은 석말추(石末楸)로 바닷가에 있는 큰 돌이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썰물 때 그 끝이 조금 보인다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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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법정동. 대교동(大橋洞)은 일제 강점기 부산항의 발달로 급격히 성장하여 2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으나, 이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대평동 1·2가, 남항동 1·2·3가와 합쳐져 행정동인 남항동의 관할 하에 있다. 일제 강점기 초기 용미산을 기준으로 북쪽 해안에 자리하여 북빈(北濱)으로 불렀고, 마주 보는 자갈치 시장 부근은 남쪽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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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법정동. 대평동(大平洞)은 일제 강점기 부산항의 발달로 급격히 성장하여 2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으나, 이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대교동 1·2가, 남항동 1·2·3가와 합쳐져 행정동인 남항동인 관할 하에 있다. 대평동의 옛 이름은 대풍포(大風浦)로 지형상 풍랑에 대피하기 좋은 포구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1947년 일본식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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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법정동. 동삼동(東三洞)은 ‘동쪽에 위치한 3개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상리, 중리, 하리 등 영도의 동쪽 해안에 위치한 세 개의 자연 마을이 지금의 동삼동이 되었다. 동삼동에 신석기 시대 패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부산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던 곳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은 1896년(고종 33)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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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법정동. 봉래동(蓬萊洞)은 일제 강점기 부산항의 발달로 급격히 성장하여 5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다. 행정동은 봉래 1동과 봉래 2동으로 분할되어 있다. 영도 가운데에 위치한 봉래산 주봉이 닿는 곳에 있어 봉래동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 1896년(고종 33) 경상남도 동래부 사중면 영선리에 속하였다. 1910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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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법정동. 신선동(新仙洞)은 일제 강점기 부산항의 발달로 급격히 성장한 지역으로, 광복 이후 법정동인 신선동 1가, 신선동 2가, 신선동 3가로 분할되었다. 행정동인 신선동은 영선동 2가, 봉래동 4가와 함께 법정동인 신선동 1가, 신선동 2가, 신선동 3가를 관할한다. 신선동은 봉래산 기슭의 신선(神仙)이 사는 선경(仙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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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법정동. 영선동의 옛 지명은 나릿가로 육지와 연결되는 나루가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885년(고종 22) 영도가 처음 동리의 체제를 갖추게 되며 당시 절영도 첨사 임익준(任翊準)이 동해상에 있는 전설의 섬인 영주(瀛州)와 신선이 사는 봉래산에서 각각 한 글자씩 빌려 와 ‘영선(瀛仙)’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영선동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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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법정동. 청학동(靑鶴洞) 지역의 옛 이름은 조내기로, 어장이 개발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내기는 개펄이 발달한 바닷가에 바닷물이 조락(潮落)[밀물과 썰물이 일어나며 물이 빠지는 현상]하는 데서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하고, 일본에서 조엄(趙曮)이 가져온 고구마가 이곳에서 처음 재배되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1903년(고종 40) 동...
부산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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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의 중앙에 있는 구. 부산진구(釜山鎭區)의 지명은 조선 시대에 설치된 부산진성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현재 관련 지명인 부산진성, 부산진역, 부산진 시장은 동구에 위치한다. 부산진구가 속한 지역은 1409년(태종 9) 양주에 속하였다가, 1428년(세종 10)에는 동래현 속현인 동평현에 포함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동평면과 서면에 속하였다.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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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 속하는 법정동. 가야동(伽倻洞)이란 이름은 과거 가야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옛날 수정동에 있던 고관과 가야동을 잇는 고개인 감 고개[柿嶺], 가모 고개[可牟嶺], 가마 고개[釜嶺]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가야동이 속한 지역은 1409년(태종 9) 양주에 속하였다가, 1428년(세종 10) 동래현의 속현인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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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 있는 법정동. 개금동(開琴洞)이란 지명은 마을 형상이 마치 거문고와 같이 길게 늘어져 있는 형상이라 유래되었다는 설과 임진왜란 당시에 피난길을 헤매던 백성들이 이곳에서 들려오는 가야금 소리를 듣고 정착하였다는 설에서 기원하였다고도 한다. 개금동이 속한 지역은 조선 후기에는 동래군 동평면(東平面) 와요리(瓦要里)였고,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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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 있는 법정동. 당감동(堂甘洞)은 조선 시대 이곳에 있던 동평면의 당리(堂里)와 감물리(甘物里) 두 마을을 합쳐 만든 지명이다. 당감동에는 당감동 고분군이 있어 일찍부터 취락이 발달하였음을 보여 주며, 1409년(태종 9) 양주에 속하였다가 1428년(세종 10) 동래현 속현인 동평현에 포함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동평면에 속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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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 있는 법정동. 범전동(凡田洞)의 지명은 마을이 금용산에서 발원한 범천 유역의 농경지에 있어 비롯되었다고 한다. 범전동은 조개더미 흔적이 남아 있어 선사 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범전리는 관문에서 11리[약 4.32㎞] 거리에 위치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범전동은 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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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 있는 법정동. 범천동(凡川洞)의 지명은 이곳을 흐르는 범천(凡川)[범내]과 관련이 있다. 범천은 증산(甑山)의 산세가 험하고 삼림이 울창하여 호랑이가 자주 출몰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식으로 호천(虎川)이라고도 하였다. 범천동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동평면에 범천 1리와 2리가 있다. 범천 1리는 관문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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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 있는 법정동. 부암동(釜岩洞)은 동천의 상류인 백양산(白楊山)[642m]에서 발원하는 당감천 주변의 부암 고개에 있던 부암이라는 바위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부암은 마치 ‘가마솥을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바위가 있던 고개를 가마 고개라 하였다. 부암동은 『동래부지(東萊府誌)』[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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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 있는 법정동. 부전동(釜田洞)은 본래 부현리였다. 부현리는 현재 당감동 입구의 부암 고개에 있던 바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에 있던 바위는 마치 ‘가마솥을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가마 고개라 하였고, 이를 한자화한 지명이 부현이라는 것이다. 부전의 전(田) 자는 비교적 논밭이 많은 평지에 붙여진 명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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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 있는 법정동. 양정동(楊亭洞)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양정리(羊亭里)’로, 『동래부읍지(東萊府邑誌)』[1832]에 ‘양정리(楊亭里)’, 『동래부읍지』[1871]에 ‘양정리(羊亭里)’로 표기되어 있어, 양자가 양(羊)과 양(楊)이 혼용되었다가 현재는 양정(楊亭)으로 사용된다. 먼저 양(羊) 자가 쓰인 연원에 대해서는 과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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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 있는 법정동. 연못에 연꽃이 많아 연지동(蓮池洞)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 연못은 현재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연못은 『동래부읍지(東萊府邑誌)』[1832]에 신지언(新池堰)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동래부 서쪽 13리[약 5.11㎞]에 있는데 길이는 208척[약 63m], 너비는 204척[약 61.81m]이며 동래부에서 두 번째로 큰 제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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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 있는 법정동. 전포동(田浦洞)의 지명 유래는 산자락에 마을과 논밭이 있었는데 갯가에 위치하여 밭개라 하였고, 이를 한자로 표기해 전포리(田浦里)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동래군 서면(西面)에 속하였고, 1896년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 다시 동래군 서면 전포리로 되었다가, 1936년 부산부로 재편입되며 부산진출장소에 속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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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 있는 법정동. 초읍동(草邑洞)은 과거 새로운 터전, 새로운 자리라는 의미로 새터라 불렸다. 이는 동평현의 치소가 왜구의 빈번한 침략으로 피폐하자 이전하면서 새터로 불렀던 데서 유래한다. ‘새’는 갈대를 의미하는 ‘초(草)’로 읽고, 터는 ‘읍(邑)’으로 표기하여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다. 조선 후기에는 동래부 서면 초읍리였으며, 1936년...
동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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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동래구(東萊區)의 명칭은 조선 시대 지명인 동래부에서 비롯되었다. 지명이 처음 나타나는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서 “동래군은 본래 거칠산국(居漆山國)이었는데 경덕왕 때 동래군으로 고쳐……”라는 부분이다. 동래의 명칭 유래는 동래의 ‘래(萊)’ 자에서 보는 설이 있고, 독로국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는 설이 있다.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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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속하는 법정동. 낙민동(樂民洞)의 지명 유래는 문헌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 시대 남문동변리(南門東邊里)라 부르던 지역으로, 민정을 살피려 나가는 수령이 백성을 즐겁게 해 준다는 뜻에서 이같이 명칭을 고쳤다는 설이 있다. 낙민동에는 사적 제192호인 부산 동래 패총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취락 형성의 역사는 비교적 오래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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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속하는 법정동. 명륜동(明倫洞)의 지명은 동래 향교 명륜당에서 유래되었다. 동래 향교는 1392년 조선의 건국과 함께 국가의 교육 진흥책에 따라 각 지방에 향교를 세울 때 지금의 동래고등학교 주변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래 향교는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 함락과 함께 불타 버렸고, 1605년 다시 세워진 후 여러 차례 옮겨졌다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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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속하는 법정동. 명장동(鳴藏洞)의 지명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인근의 명창리와 같이 명편을 간수하였던 곳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명편(鳴鞭)은 옛날 의장 때 쓰는 기구의 하나로 이를 흔들어 소리를 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정숙하게 하는 물건으로 일명 정편이라고도 한다. 동래 부사는 동래 독진(東萊獨鎭)을 지휘하여 동래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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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속하는 법정동. 복천동(福泉洞)의 지명은 이곳에 있던 우물에서 유래되었다고 추정된다.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동래읍성 안에 6개의 우물이 있다는 기록이 있고, 대한제국 말의 기록에는 옥미정동·대정동·야정동 등의 우물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조선 후기 동래부 읍내면 옥미정동(玉未井洞)이었다. 1942년 부산부 동래출장소 복천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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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속하는 법정동. 사직동(社稷洞)의 지명 유래는 이곳에 있던 사직단에서 비롯되었다. 사직단의 사(社)는 토지신이고 직(稷)은 곡물 신으로, 사직단은 왕을 비롯한 지방 수령이 토지신과 곡물 신에게 제사를 드려 나라의 풍요와 지방의 안녕을 비는 곳이었다.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1640년(인조 18) 처음 사직단을 쌓았으며, 이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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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속하는 법정동. 수안동(壽安洞)은 조선 시대 동래 읍치의 동헌이 있던 곳이다. ‘수안(首安)’ 또는 ‘수안(水安)’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수안(首安)은 동래 부사가 집무하던 동헌이 있어서 비롯되었으며, 수안(水安)은 땅 밑을 조금만 파도 물이 나온다 하여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수안동은 조선 후기 동래부의 읍내면에 속하였던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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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속하는 법정동. 안락동(安樂洞)의 지명은 충렬사 내에 있던 안락서원에서 유래되었다. 안락서원은 1606년(선조 39) 임진왜란 때 순절한 송상현(宋象賢)·정발(鄭撥)·윤흥신(尹興信) 등 선열을 모시기 위하여 동래읍성 남문에 송공단을 건립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1624년(인조 2) 충렬사란 사액을 받았다. 1652년(효종 3) 내산(萊山)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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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속하는 법정동. 온천동(溫泉洞)의 지명은 이곳의 동래 온천에서 비롯되었다. 온천동을 지칭하는 명칭은 『삼국유사(三國遺事)』[1145]에 “재상 충원공이 장산국(萇山國)의 온정(溫井)에서 목욕을 하고 경주로 돌아오던 길에……”라는 기록에서 처음 등장하며, 이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을 비롯한 여러 사료에서 등장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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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속하는 법정동. 칠산동(漆山洞)의 지명 유래는 과거 이곳에 있던 거칠산국(居漆山國)의 ‘칠산’에서 유래하였다. 거칠산은 ‘거칠다’는 우리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거친 뫼’, 즉 황령산을 지칭한다고 말하는 견해도 있고, 현재 동래읍성의 주산인 마안산을 칠산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는 견해도 있다. 칠산동은 조선 후기 동래부 읍내면이었다...
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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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남구(南區)는 동래부의 읍성이 있던 읍내면 남쪽에 있어 조선 후기 남촌면(南村面)으로 불렸다. 1951년 구제(區制)가 시행되며 옛 지명을 따와 남구가 되었다. 남구 지역은 삼한 시대에는 변한, 삼국 시대에는 대증현, 통일 신라 시대에는 동래군에 속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양주군에 편입되어 있었고, 조선 초에는 동래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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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에 속하는 법정동. 감만동(戡蠻洞)은 감만포가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감만포에는 조선 초부터 수군 진영이 있었는데, 왜인[오랑캐]이 수시로 부산 앞바다에 쳐들어 와서 문제를 일으키자 수군을 주둔시켜 오랑캐를 이긴다는 뜻으로 감만(戡蠻)이라 하였다. 일설에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왜적을 이곳으로 유인해 전멸시켜 감만이란 이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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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에 속하는 법정동. 대연동(大淵洞)의 옛 지명은 못골로 못이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였다.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는 이 못에 대해 길이가 18척[약 5.45m], 너비가 125척[약 37.88m]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못이 커서 마을의 이름을 지을 때 ‘큰 대(大)’ 자와 ‘못 연(淵)’ 자를 써서 대연이라 하였다. 대연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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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에 속하는 법정동. 골짜기 위의 산이 양쪽으로 겹쳐져 있는 형상이 지게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하여 지게골이라 불렀으며, 이후 문(門) 고개로도 불렸다. 문현(門峴)은 문 고개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문현동(門峴洞)은 조선 후기 기록에서는 지명을 확인할 수 없고,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慶尙南道東萊郡家戶案)』[190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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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에 속하는 법정동. 용당동(龍塘洞)의 지명은 옛날 이곳에 큰 못이 있었는데, 이 못을 둘러싼 부근 산세가 용의 모양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또 일설에는 용왕을 모신 당집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용당동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알 수가 없으나,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는 남촌면(南村面)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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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에 속하는 법정동. 용호동(龍湖洞)에는 작은 호수가 있었는데, 그 호수에 하늘로 오르지 못한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용호동은 조선 후기 민가는 거의 없었고, 소금을 굽는 동이[盆]만 여기저기에 있어 ‘동이가 있는 갯가’라는 의미에서 분개(盆浦)라 불렀다. 이 지역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남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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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에 속하는 법정동. 우암(牛岩)이라는 이름은 포구의 언덕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소 모양과 같다 하여 ‘소 우(牛)’에 ‘바위 암(岩)’을 써서 우암이라 불렀다 한다. 언제부터 우암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남촌면(南村面) 하단(下端) 우암리로 지명을 확인할 수 있으며,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
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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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에 있는 구. 북구(北區)는 조선 시대 읍치가 있던 동래의 북쪽에 위치한 데서 명칭이 유래한 것으로 짐작된다. 북구는 고대에 변한에 속하였으며, 이후 금관가야에 해당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지역이다. 조선 시대에는 현재의 북구 지역 대부분이 경상도 양산군 좌이면에 속하였고, 현재의 만덕동 일대[만덕리]는 동래부 서면에 속하였다. 1869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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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에 있는 법정동. 구포(龜浦)의 지명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전한다. 먼저 구포는 구복포(龜伏浦)[거북이가 엎드린 포구]에서 유래하였다고 본다. 이 지역은 『양산군읍지(梁山郡邑誌)』[1878]에 “창을 설치하여 남창으로 한다. 이 지역은 범방산 한 줄기가 낙동강 물을 향하여 머리에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이 거북이와 같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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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에 있는 법정동. 금곡동(金谷洞)은 일반적으로 동쪽에 위치한 금정산의 주봉인 고당봉에서 서쪽의 낙동강변으로 뻗은 큰 골짜기의 지명이 금곡이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한다. 한편 금정산 서쪽 골짜기에 금맥을 찾아 뚫은 굴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가야 시대에 쇠를 녹이던 야철지(冶鐵址)가 있어 ‘쇠 금(金)’ 자를 써 금곡이라 이름 붙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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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에 있는 법정동. 덕천(德川)은 만덕천(萬德川)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만덕’은 고려 시대의 절터인 만덕사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에서 유래된 지명인데, 만덕사지 쪽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이 만덕천이다. 만덕천은 조선 시대까지 만덕계수(萬德溪水)라고도 불렸으나, 일제 강점기 초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덕천이라 줄여 불렀다. 광복 이후 만덕천은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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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만덕동(萬德洞)의 지명은 만덕 제1 터널 입구 좌측 산 쪽에 위치한 만덕사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만덕사지는 고려 전기에 지어져 고려 후기까지 있던 절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고려사(高麗史)』 권38 공민왕 즉위년 12월조에 따르면 “12월 신묘에 영릉의 서자 석기의 머리를 깎아 만덕사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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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에 있는 법정동. 화명(華明)에 대한 지명 유래는 여러 설이 전한다. 먼저 동의 동쪽에 위치한 화산(華山)이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화산 아래 명당이라는 뜻에서 화명이라 유래하였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화산 바로 아래에 위치한 자연 마을인 화잠리에서 유래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화명동(華明洞)은 조선 시대에는 양산군 좌이면에 속하였...
해운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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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의 동남부에 위치한 행정 구역. 해운대구(海雲臺區)의 지명은 해운대(海雲臺)에서 따온 것이다. 해운대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고적조에 “신라 최치원(崔致遠)[857~?]이 일찍이 대를 쌓아 머물러 즐겼다는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최치원의 자(字)는 해운(海雲)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동백섬 동남쪽의 비탈진 넓은 암반위에 쌓았던 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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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속하는 법정동. 반송동(盤松洞)은 본래 지경리(地境里)로도 불렸는데, 이후 반송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지경리는 기장현과 동래부의 경계를 이루는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반송동은 지금의 운봉초등학교 앞에 수령이 200여년 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반송 나무굴이라 칭하면서 비롯되었다. 반송동은 『동래부지(東萊府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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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속하는 법정동. 반여동(盤如洞)은 지형이 소반(小盤)[작은 밥상]처럼 동그랗다는 풍수설의 영향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반여동은 부산의 중요 고분군 가운데 하나인 반여동 고분군[부산의 복천동·연산동 고분군과 함께 위치적으로 삼각형을 이루는 중요 고분군]이 있어 오랜 거주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조선 시대 동래부의 동면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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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속하는 법정동. 석대(石坮)란 지명은 일찍부터 사용해 왔으나 정확한 연원은 알 수 없다. 대(坮)는 대(臺)의 고(古) 자로 지역 내에 지명처럼 돌로 쌓은 높은 곳이나 이에 준하는 넓은 반석(盤石) 등의 지형과 관련한 것으로 보이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마을 앞으로 석대천[수영천의 상류로 사천이라고 했음]이 흐르고, 옛날에는 물이 맑고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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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속하는 법정동. 송정(松亭)은 본래 갈개 또는 가래포(加來浦), 가을포(加乙浦)라고 불렀다. 갈개는 갈대의 지방 방언으로 만입부에 갈대가 서식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으로 전하며, 가래포의 가래는 갈대의 사투리이다. 가을포는 가래포의 차음에서 나왔다고 한다. 가을포를 송정으로 부르게 된 것은 이곳의 세거 씨족인 광주 노씨(光州盧氏)가 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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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속하는 법정동. 우동(佑洞)은 조선 시대 사료에서도 나타난다. 당시 지명은 지금과 달리 우(右)자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좌동의 대칭 지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동 지명은 춘천천의 우안(右岸)에 위치한 데서 비롯되었다. 우동은 조선 후기에 동래군 동하면(東下面)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동하면의 우동(右洞)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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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속하는 법정동. 재송(栽松)이란 지명은 조선 시대에 이곳에 있던 재송포(栽松浦)와 관련이 있다. 이곳은 수영강과 온천천이 합류하는 곳으로 여기까지 배가 들어오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 이곳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지명이 유래되었으며 일명 송수촌(松樹村)이라 부르기도 했다. 재송동(栽松洞)은 조선 후기 동래군 동하면(東下面) 재송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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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속하는 법정동. 좌동(佐洞)은 춘천천의 왼쪽에 위치하여 붙여진 방향 지명으로, 우동(佑洞)과 중동(中洞)과의 대칭 지명임을 보여 준다. 좌동 지역은 조선 후기에 동래군 동하면(東下面) 좌동리(佐洞里)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남면 좌동리가 되었다. 1942년 부산부 수영출장소 관할로 개편되었다가 1953년 해운대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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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속하는 법정동. 중동(中洞)은 해운대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지역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좌동·우동과 함께 방향을 의미하는 대칭 지명이다. 중동 지역은 조선 후기에 동래군 동하면(東下面)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오산동, 대천동, 중동, 좌동 일부가 합쳐 남면 중동리가 되었다. 1942년 수영출장소에 편입되면서...
사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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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에 있는 구. 조선 시대 사하(沙下) 지역은 낙동강 하구에 모래가 퇴적되어 형성된 삼각주 아랫부분이라 하여 사천면 하단(下端)으로 불렸다. 사천면 하단을 줄여 사하가 되었다. 사하구(沙下區)는 신석기 시대를 비롯한 삼한 및 가야 시대의 유적인 다대포 조개더미와 청동기 시대의 유적인 괴정 1동 유적·괴정 2동 유적, 감천동 고인돌[1964년 부산 화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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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하구에 있는 법정동. 감천동(甘川洞)의 옛 지명은 감내(甘內)이다. ‘감(甘)’은 신(神)을 뜻하는 ‘’, ‘검’에서 유래하였다. ‘천(川)’은 ‘내’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천(川)·양(壤)·내(內)·군(郡’) 등 마을을 뜻한다. 곧 감천은 ‘신성스러운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감천동 일대는 청동기 시대 유적인 감천동 고인돌[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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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하구에 있는 법정동. 괴정동(槐亭洞)의 옛 이름은 목장리(牧場里)였다. 조선 시대에 목장이 있어 말골·마하곡 등으로도 불렸다. 괴정이라는 지명은 이 지역에 회화나무[괴목(槐木)으로 홰나무라고도 함]가 많이 서식하였는데, 특히 수령 600년 이상의 팔정자(八亭子) 나무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괴정동에는 청동기 시대 분묘 유적이 있어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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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하구에 있는 법정동. 구평동(舊平洞)은 옛날의 서평동, 즉 구서평(舊西坪), 구시평에서 유래하였다. 이 지역에는 과거 서평포가 있었다. 서평포는 1663년(숙종 3)부터 만호영이 설치된 군사상의 요충지로 감내포 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구평동에는 축성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성포(城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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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하구에 있는 법정동. 다대(多大)의 명칭 유래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큰 포구가 많은 바다라는 데서 유래한 지명으로 추측된다. 다대동(多大洞)은 다대포 해수욕장 북쪽에서 발견된 다대포 패총[조개무지]과 신석기 및 가야나 원삼국 시대의 토기 파편[융기문 토기·빗살무늬 토기·붉은 간 토기·적갈색 연질 토기·회청색 경질 토기]이 발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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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하구에 있는 법정동. 당리(堂里)라는 지명은 동의 북쪽에 위치한 승학산과 산불량(山不良) 사이 계곡인 제석곡에 제석단을 쌓고 기우제를 지낸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제석골에 사당을 짓고 여신을 모신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전한다. 당리는 괴정 목장리(牧場里)의 목마성(牧馬城)이 뻗어 있던 지역이었으나, 『동래부지(東萊府誌)』[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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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하구에 있는 법정동. 신평(新平)은 신평(新坪)이라 쓰이기도 하였다. ‘새로운 평지’라는 뜻으로 서쪽에 접한 낙동강 하구의 충적지에 제방을 쌓아 새로 농경지를 조성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짐작된다. 신평동에는 1세기경의 패총이 있어 오랜 거주 역사를 짐작게 한다. 관내 다대진과 관련된 망후 마을[다대진의 후망소(後望所)로 기능하였다고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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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하구에 있는 법정동. 장림(長林)은 마을의 형태와 관련한 지명으로 보인다. 지형적으로 아미산 둘레에 길게 늘어선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장림동 일대의 강변 구릉지에 1세기경의 패총이 있고, 신라 때의 토기 편이 발견되기도 해 오랜 거주 역사를 알 수 있다. 조선 시대 『경상도 속찬 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1469]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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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하구에 있는 법정동. 하단동(下端洞)은 낙동강의 끝에 위치하여 ‘아래치’ 혹은 ‘끝치’라 부르기도 해 하단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하단은 동래군 사천면을 상단(上端)과 하단(下端)으로 나누며 생긴 지명으로, 현재의 당리, 괴정, 감천, 구평, 신평, 장림, 다대 등을 모두 포함하는 사하 지역을 일컫던 지명이다. 사천면 하단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금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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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금정구(金井區)의 구명은 이곳에 위치한 금정산에서 비롯되었다. ‘금정’이란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 “산정에 돌이 있어 높이 3척가량의 바위에 원정(圓井)[샘]이 있고 주위가 10여 척이며, 샘의 깊이 7촌(寸)가량 물이 늘 차 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늘 금빛이 있으므로 세상에서 전해지기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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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속하는 법정동. 조선 시대에는 구세리(仇世里)라 불렀다. 『동래 부산 고지도』를 비롯한 여러 고지도에 지명이 수록되어 있다. ‘구세’라는 지명은 중국 당나라 장공예의 9대에 걸쳐 이루어진 친족이 한집에 살면서 집안이 매우 화목한 것을 이른 ‘구세동거(仇世同居)’에서 따온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와, 굿을 하는 동네라는 뜻의 굿판, 굿터에서 비롯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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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속하는 법정동. 금사동(錦絲洞)은 사천 마을과 금천 마을 일부가 합쳐지면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금사동은 조선 후기에 동래군 동상면(東上面)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동래면이 되며 사천동과 금천동 일부가 합쳐져 금사동이 되었다. 1942년 동래군이 부산부로 편입됨에 따라 부산부 동래출장소에 속하였고,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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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속하는 법정동. 금성(金城)이란 지명은 금정산성[사적 제215호] 안에 있는 동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금성동(金城洞) 지역은 조선 후기에 동래군 서면 지역이었다. 1896년(고종 33) 경상남도 양산군 좌이면 금성리가 되었다가 1910년 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좌이면 금성동이 되었다가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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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속하는 법정동. 남산동(南山洞)이란 지명은 남산(南山)[165m]에서 비롯되었다. 남산은 금정산 동쪽 기슭 아래에 솟은 구릉성 산지이다. 지명은 이곳에 범어사의 사전(寺田)을 소작하는 농민이 많았는데, 범어사에서 보면 이 지역이 남쪽 산등성이에 해당하므로 남산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다른 유래로는, 지세가 북쪽이 높고 남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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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속하는 법정동. 노포(老圃)란 오래된 채전[밭]이란 뜻으로, 농사를 잘 짓는 농부 또는 경험이 많은 늙은 농부를 의미한다. 즉 농토가 풍부한 마을 혹은 농사가 잘되는 마을이라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설로는 노포 마을 뒤쪽 당산이 쥐가 채전에 먹이를 구하러 내려오는 형상을 하고 있어서 ‘늙을 노(老)’ 자와 ‘채전 포(圃)’ 자를 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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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속하는 법정동. 두구동(杜邱洞)의 명칭 유래는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 전 동래의 읍치를 찾던 중 부산진구 초읍동이 산세가 좋고 지리가 음양에 맞다 하여 우선 정해 놓고 더 좋은 곳을 찾던 중 두구동의 지세가 뛰어나 이곳으로 하려 했으나, 동래 일대를 보고 동으로 학소대(鶴巢臺)[학의 보금자리라는 의미]와 남으로 대조 포란형(大鳥抱卵形)[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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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속하는 법정동. 부곡(釜谷)이란 ‘가마실’을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다. 가마실은 부곡동에서 서동으로 넘어가는 산의 모양이 가마솥[釜]과 같이 생긴 데서 유래한다. 별칭으로 ‘기찰’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시대에 이곳에 동래와 한양을 잇는 영남로의 통행객들을 검문했던 십휴정 기찰(十休亭機察)이 있어 붙여진 지명이었다. ‘부곡’ 이름이 조선 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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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속하는 법정동. 서동(書洞)의 지명은 이곳에 있던 마을 이름인 서리(書里)에서 비롯되었다. 서동은 조선 후기에 동래군 동상면(東上面)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동상면의 서동(西洞)과 금천동(錦川洞)을 합쳐 동래면 서동이 되었다. 1942년 동래군이 부산부에 편입됨에 따라 부산부 동래출장소 서동이 되었다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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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속하는 법정동. 선동(仙洞)이란 지명은 선돌이 있어 유래되었다는 설과 오륜대와 인접하여 신선이 노닐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선리라 불렀다. 선동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북면 선동으로 수록된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취락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14년 동래부에서 동래군과 부산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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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속하는 법정동. 오륜동(五倫洞)의 지명은 이곳의 뛰어난 경승지인 오륜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의 고적 조에 “오륜대는 동래부의 동쪽 20리 사천에 있었는데 대에서 4~5보가량으로 시내에 임하고 암석이 기이하여 구경할 만하다. 속전을 다 갖춘 까닭에 이같이 이름 지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래부읍지(東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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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속하는 법정동. 장전(長箭)이란 ‘긴 화살’이라는 뜻으로, 금정산 성안의 죽전 마을과 같이 화살대를 만드는 대나무가 많이 생산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장전동(長箭洞)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북면 장전리로 기재되어 있다. 1914년 동래부에서 동래군과 부산부로 분리되며 장전리와 소정리[소정은 소하정(蘇蝦亭)이라는 금정산 기슭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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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속하는 법정동. 풍수 형국에서 ‘청(靑)’은 동쪽을 상징하며, 청룡은 불교에서 ‘이십팔수(二十八宿)’ 가운데 동방의 일곱 성수를 총칭하기도 하고 사신(四神)의 하나로 동쪽 하늘을 맡은 신을 뜻하기도 한다. 마을이 대부분 범어사 동쪽에 위치하여 청룡동(靑龍洞)으로 불렸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한편 금정산이 계룡(鷄龍) 형상으로 산의 중턱에 계명암(鷄鳴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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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속하는 법정동. 회동동(回東洞)은 이곳에 있던 회천 마을과 동대 마을의 합성 지명이다. 회동동은 조선 후기에 동래군 동상면(東上面)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동래부 동래읍에 편입되며 회천 마을과 동대 마을을 합해 회동리라 하였다. 동대 마을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사천가에 있고 바위의 높이가 4...
강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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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낙동강 본류의 서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후기에는 양산군 대상면과 김해부의 덕도면, 명지면 지역이었다. 1906년(고종 43) 대저면이 양산군에서 김해군에 편입되어 녹산면, 명지면, 가락면, 덕도면, 대저면이 되었으며, 1918년 대저면이 가락면에 통합되었다. 1970년대까지는 대부분 지역이 경상남도 김해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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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선암강의 동쪽 기슭에 위치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강동동은 조선 후기 김해군 덕도면이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대사(大沙)·상덕(上德)·북정(北亭)·제도리(濟島里)를 묶어 가락면으로 편입되었다. 1978년 부산직할시 북구에 편입되면서 가락동에서 분리되어 강동동이 되었으며, 1983년 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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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속하는 법정동. 천마산 봉우리가 아홉 개여서 구절봉이라고 하는데, 이 구절이 음변하여 구랑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옛 신라 시대 낭관을 지낸 아홉 사람이 살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마을이라고도 한다. 구랑동은 조선 후기 김해군 토야면에 속해 있었다. 원래 토야면은 산 안쪽의 범방·탑동·구랑·소압·미음·상룡·중곡·지사·생곡의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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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김해군 녹산면에서 지명이 비롯되었다. 녹산은 원래 봉화산의 동쪽이 사슴이 들판을 향해 달리는 풍수 형국이라서 ‘사슴 녹(鹿)’ 자를 사용하였으나 이후 녹산(菉山)으로 변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산에 녹두가 잘되어서, 여기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고도 전한다. 녹산 지명이 처음 나오는 것은 『김해부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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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속하는 법정동. 눌차동은 눌차도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눌차도는 섬 모습이 매우 완만하고 누워 있는 모습이라 하여 지명이 유래되었다. ‘눌’은 한 군데 오래 있어 지루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의 ‘눌어붙다’라는 뜻으로 해석되며, ‘차’는 누우려는 형세를 보이는 모습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조선 후기 웅천군에 속하였다가 천성면과 가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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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속하는 법정동. 대저(大渚)라는 지명은 낙동강 어귀에 형성된 ‘큰 모래톱’에서 비롯되었다. 대저1동은 『여지도서(輿地圖書)』[1757]의 『양산군읍지(梁山郡邑誌)』에 ‘대상하동방(大上下同坊)’에 속해 있었으며, 이 중 대상면이 대저1동의 출두(出頭)·사덕(沙德)·대지(大地)·평강(平江)에 해당된다. 1906년(고종 41)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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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속하는 법정동. 대저(大渚)라는 지명은 낙동강 어귀에 형성된 ‘큰 모래톱’에서 비롯되었다. 대저2동은 『여지도서(輿地圖書)』[1757]의 『양산군읍지(梁山郡邑誌)』에 ‘대상하동방(大上下同坊)’에 속해 있었으며, 이 중 대하면이 지금 대저2동의 소덕(小德)·덕두(德頭)·도도(桃島)·맥도(麥島)·사두(沙頭)·설만(雪滿)의 6개 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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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법정동. 북쪽의 연대봉과 남쪽의 국수봉에 이어지는 곳에 있다 하여 큰목, 혹은 한목이라 불렀고, 이에 대항동(大項洞)이 되었다. 대항동은 조선 후기 웅천군에 속하였다가 천성면과 가덕면으로 구분되었으나, 1908년 천가면에 통폐합되었다. 1914년 경상남도 창원군에 통폐합되면서 눌차리·대항리·동선리·성북리·천성리 등으로 구성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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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법정동. ‘동선’은 가덕도동의 행정 중심지 동쪽에 있는 선창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원래 한자로 동선(東船)이었으나 이후 동선(東仙)으로 바뀌었다는 견해가 있다. 조선 후기 웅천군에 속하였다가 천성면과 가덕면으로 구분되었으나 1908년 천가면에 속하였다. 1914년 경상남도 창원군에 통폐합되면서 눌차리·대항리·동선리·성북리·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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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명지동은 명지도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명지도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 ‘큰 비나 가뭄이 오거나 큰 바람이 불어오거나 하면 반드시 우는데 그 소리가 어떤 때는 천둥소리, 북소리 혹은 종소리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섬에서 들어보면 그 소리가 멀어져서 들려오는 것 같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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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법정동. 미음동의 미음(美音)은 ‘천상에서의 아름다운 소리’라는 의미이다.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전하는데, 먼저 풍수지리상 화동(花童)이 피리를 부는 화동 취적형(花童吹笛形)의 명당이 있어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한편 풍상산의 전설에서 유래한다고도 하는데, 가난한 한 어부의 노모가 승천하면서 노모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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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법정동. 범방동은 본래 지형이 풍수지리상 행주형(行舟形)[배가 물에 떠서 나아가는 형국]이라서 범방(泛舫)[배를 물에 띄운다는 뜻]으로 불렀다고 전한다. 이후 한자가 범방(凡方)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범방동이 속한 지역은 1832년(순조 34) 김해군 토야면에서 태야면으로 개칭되었다. 당시 토야면은 내륙의 범방리·탐동리·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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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법정동. 오봉산[45m] 남쪽 아래에 대나무 숲이 많아 봉황이 깃드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한다. 봉림동은 조선 후기 김해군 가락면에 속하였으며, 1989년 부산직할시에 편입되면서 가락면이 강서구 가락동이 되었다. 이후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부산광역시 강서구 봉림동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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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법정동. 생곡은 1914년 행정 구역이 통폐합되면서 이곳에 있던 생활리와 중곡리가 합쳐져 생긴 합성 지명이다. 생곡동은 조선 후기 김해군 토야면의 생활리와 중곡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1832년(순조 34) 김해군 토야면이 태야면으로 개칭되었고, 1914년 녹산면과 태야면을 병합하여 녹산면이 되고 생활리와 중곡리가 합쳐져 생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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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법정동. 가덕진성 북문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성북’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성 안쪽에 있어 성안 마을이라고도 불렀다. 조선 후기 웅천군에 속하였다가 천성면과 가덕면으로 구분되었으나 1908년 천가면으로 통폐합되었다. 1914년 천가면이 경상남도 창원군에 통폐합되면서 눌차리·대항리·동선리·성북리·천성리 등으로 구성되었다.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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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속하는 법정동. 약 400년 전 마을이 형성될 당시 바닷가에 소나무 숲이 울창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지금은 소나무 두 그루만 남아 조부송, 조모송으로 불린다. 송정동(松亭洞)[강서구]은 조선 후기 김해군 녹산면에 속하였다. 1914년 녹산·태야[내륙 쪽의 범방·탑동·구랑·소압·미음·상룡·중곡·지사·생곡의 9리]의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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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속하는 법정동. 토질이 무르고 비옥하여 쌀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밥이 맛이 있어 밥그릇에 가득 찬다고 식만(食滿)으로 불렀다고 전한다. ‘밥만개’라고도 부른다. 식만동(食滿洞)은 조선 후기 김해군 가락면에 속하였는데, 당시에는 남원 양씨(南原梁氏), 밀양 박씨(密陽朴氏)가 동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1989년 부산직할시에 편입되면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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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는 바다 가운데 새로 생긴 섬이라 하여 신도(新島)라 불렀으나, 명지의 옛 이름인 명호(鳴湖)의 ‘호(湖)’ 자를 이용하여 ‘신호(新湖)’라 하였다. 신호동(新湖洞)은 조선 후기 김해군 명지면 신전리 지역이었으나 1978년 경상남도 김해군 녹산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김해군 녹산면이 부산직할시에 편입되어 강서구 녹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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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속하는 법정동. 대나무가 많아 죽동(竹洞)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죽동(竹洞)은 조선 후기 김해군 가락면에 속하였다. 당시 죽동리는 청풍 김씨(淸風金氏), 분성 배씨(盆城裵氏)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989년 부산직할시에 편입되면서 강서구 죽동이 되었고,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부산광역시 강서구 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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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속하는 법정동. 죽림동(竹林洞)의 지명은 죽림 마을에서 비롯되었다. 과거 오봉산이 섬이었을 때 대밭이 무성하여 큰 홍수가 나면 섬이 바닷속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죽림동은 조선 후기 김해군 가락면에 속하였다. 죽림동이 있던 지역에 대해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1425]에서 “부의 남쪽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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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속하는 법정동.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선비가 글을 읽는 ‘고사 독서형(高士讀書形)’의 풍수 형국을 갖추고 있어 지사(智士)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지사동(智士洞)이 속한 지역은 1832년(순조 34) 김해군 토야면에서 태야면으로 개칭되었다. 당시 토야면은 내륙의 범방리·탐동리·구랑리·소압리·미음리·상룡리·중곡리·지사리·생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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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속하는 법정동. 천성동(天城洞)이란 지명은 조선 시대 이곳에 있었던 천성진성(天城鎭城)에서 비롯되었다. 성곽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되었으며, 동쪽에 봉화대가 있는 연대봉이 있다. 지금은 부분적으로 성터가 남아 있다. 조선 후기에는 웅천군에 속하였다가 천성면과 가덕면으로 구분되었으나 1908년 천가면으로 통폐합되었다. 1914년 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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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속하는 법정동. 화전은 일명 ‘서구지[서고지]’라고 부른다. 이곳의 성고개는 옛날 금단곶 보성 자리였다. 금단곶의 ‘곶’이 사투리로 ‘고지’ 또는 ‘구지’이다. 구지[고지]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서구지[서고지]가 되었다고 한다. ‘곶이’가 ‘꽃’으로 변하면서 한자 이름인 화전으로 바뀌었다고 전하는데, 남쪽 해안에 큰 바위가 네...
연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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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에 있는 구. 연제(蓮堤)는 연산동의 연(蓮)과 거제동의 제(堤) 자를 이용한 합성 지명이다. 연제구(蓮堤區) 지역은 조선 시대 동래부 서면의 거벌리와 남촌면의 일부에 해당한다. 1914년 동래부 일부와 기장군을 합하여 동래군을 설치하면서 연제구 지역은 경상남도 동래군 서면에 속하게 되었다. 1936년 부산부에 편입되었고, 1957년 부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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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연제구에 있는 법정동. 거제(巨堤)라는 지명은 이곳에 축조된 큰 제방에서 비롯되었다. 조선 시대 이곳의 지명은 거벌리(居伐里)였다. 거벌(巨伐)로도 표기되었는데, ‘큰 벌’을 뜻하는 평야로, 지금의 거제동(巨堤洞)과 연산동 일대에 펼쳐진 넓은 들을 말한다. 일제 강점기 때 상습 침수 지역이었던 이곳에 제방을 쌓으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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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연제구에 있는 법정동. 연산동(蓮山洞)은 마을의 낮은 늪지대에 수련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남쪽에 있는 금련산(金蓮山)에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견해가 있다. 조선 시대의 문헌 기록에서 연산이라는 지명은 확인할 수 없다. 이 지역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서면의 거벌리·대조리와 읍내면의 안락리·율부리로 편제되어 있으며, 『경상남도...
수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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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부에 있는 구. 조선 시대 동해 쪽 해상 방어를 담당하였던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수군절도사영의 수(水)와 영(營)을 따서 ‘수영’이라 하였다. 수영구 지역은 삼한 시대 변한에 속하였으며, 6가야 이후 금관가야 거칠산국 내 동평현에 속하였다가 삼국 시대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양주군에 편입되었고, 조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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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수영구에 있는 법정동. 광안동(廣安洞)은 일제 강점기에 붙여진 지명으로, 이 지역이 해안과 모래펄을 가진 곳이라서 ‘넓을 광(廣)’ 자에 해안을 뜻하는 ‘안(岸)’ 자를 붙여서 광안이라 이름 붙였는데, 풍수상으로 ‘편안할 안(安)’ 자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하여 광안(廣安)으로 표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광안동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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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수영구에 속하는 법정동. 금련산에서 발원하여 지금의 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 쪽으로 흘러내리는 하천이 남천(南川)이다. 이 남천의 동쪽에 형성된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천동(南川洞)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남촌면 하단(下端) 남천리로 동명을 확인할 수 있다.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1904]에는 남상면(南上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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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수영구에 있는 법정동. 망미동(望美洞)이란 이름은 배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배산은 척산(尺山) 또는 배산(盃山)이라고 불렸는데, 이 지역에서는 배미산(盃美山) 또는 잘미산이라고도 한다. 수영동과 망미동 사이에 있는 산을 망산(望山)이라고 한다. 망미동은 망산의 ‘망’과 배미산의 ‘미’ 자를 합성하여 붙인 지명으로 보인다. 한편 일설에는 좌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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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수영구에 있는 법정동. 민락동(民樂洞)은 일제 강점기에 붙여진 지명으로, 평민동과 덕민동의 백성[民]들이 모여 즐겁게[樂] 사는 동네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정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민락동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인근 수영동에 경상 좌도 수군절제사영이 설치된 조선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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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수영구에 있는 법정동. 조선 시대 동해 쪽 해상 방어를 담당하던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수군절도사영의 수(水)와 영(營)을 따서 ‘수영(水營)’이라 하였다. 수영동(水營洞) 지역에 언제부터 사람이 거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021년(현종 12)에 동래군의 군 치소를 지금의 수영에서 동래읍으로 옮겼다고 전해 오랜 거주 역사를...
사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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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에 있는 구. 사상구(沙上區)는 낙동강 하구에 모래가 퇴적되어 형성된 삼각주의 윗부분에 위치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사상구 지역에는 2000여 년 이전에 형성된 모라동과 학장동의 패총 유적이 있고, 삼한 시대에는 변한 12국 중 독로국에 속하였으며, 505년(지증왕 6)에 거칠산군이, 757년(경덕왕 16)에는 동래군 동평현에 속하였던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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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에 속하는 법정동. 감전동(甘田洞)은 감동(甘東)과 서전(西田)을 합해 붙여진 지명이다. 감동은 감동도(甘東島) 혹은 감도(甘島)라 불렸던 낙동강 하구 모래톱 섬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고, 서전은 서쪽 낙동강변에 모래톱에 의한 펄이 있어 ‘서발’[서쪽 펄의 의미] 혹은 ‘새뻘’[새로 생긴 펄의 의미]이라 부르다가 이후 이곳이 점차 논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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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에 있는 법정동. 괘법동(掛法洞)은 괘내리(掛乃里)와 창법리(昌法里)를 합치면서 형성된 지명이다. 괘내리는 마을 앞 나루터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가 동네였다. 냇물이 괴어 있는 동네라는 뜻에서 ‘괸내’라 부르던 것이 괘내가 되었다고 한다. 혹은 일찍이 사상 일대의 중심 역할을 하여 깃대를 걸던 냇가의 동네라 하여 ‘걸 괘(掛)’에 내(乃)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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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에 있는 법정동. 덕포의 옛 이름은 ‘덕개’이다. ‘덕(德)’은 언덕·두덕·부(阜)의 차자(借字)[한자의 뜻에는 관계없이 음이나 훈을 빌려다 쓰는 글자]이다. 즉 언덕개라는 말로, 언덕에 있는 포구를 뜻한다. 한편 이 일대가 큰 배가 닿을 수 있는 큰 포구여서 크다는 의미의 덕을 붙여 덕포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덕포동(德浦洞)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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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에 있는 법정동. 모라(毛羅)는 마을이 사천(沙川)의 고운 모래밭에 펼쳐져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전한다. 즉 낙동강 하구 토사의 퇴적으로 형성된 지형으로 모래로 이루어진 땅 ‘모래개’ 혹은 ‘몰개’에 넓은 땅을 의미하는 ‘라(羅)’를 붙여 모라가 된 것으로 본다. 또 다른 설로는 ‘모라’가 마을의 고대어인 ‘모을’, ‘모들’에서 유래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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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에 있는 법정동. 삼락동(三樂洞)은 삼차수의 ‘삼’과 ‘즐거울 락(樂)’[삼차수의 물길을 보며 즐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을 붙여 지은 이름이다. 낙동강 하류는 일찍부터 을숙도, 명호도, 대저도 등 삼각주가 발달하여 강물이 세 줄기로 나뉜다 하여 삼차수(三叉水)로 불렸는데, 삼락의 명칭은 소요저도가 낙동강 삼차수의 물길이 갈라지는 모래톱에 위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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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에 있는 법정동. 엄궁(嚴弓)은 동쪽에 위치한 엄광산(嚴光山)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원래 엄광리(嚴光里)라 불렸다. 이후 엄광산에서 본 지세가 활과 같다 하여 ‘활 궁(弓)’ 자를 써서 엄궁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엄궁동 지역에 취락이 형성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동래 도호부 관할의 사천면 상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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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에 있는 법정동. 주례(周禮)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서 마을 사람들의 공동 조직체인 두레가 발달하여 이 두레를 한자로 표기한 지명으로 알려져 있다. 혹은 두레가 발달된 이 지역의 지명을 정할 때 주나라의 주공(周公)이 지은 책 『주례(周禮)』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라고도 한다. 주례동(周禮洞) 지역에 취락이 형성된 시기는 알 수 없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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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에 있는 법정동. 학장(鶴章)이란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에 학성리, 장문리, 구덕리 등을 합칠 때 학성리와 장문리에서 각각 한 자씩 떼어 만들어진 지명이다. ‘학성(鶴城)’은 엄광산 기슭에 위치한 학성[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 조성된 성으로 방어를 목적으로 쌓은 성을 후에 목장성으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에서 유래하였다....
기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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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동부에 위치한 행정 구역. 기장(機張)은 본래 갑화양곡현(甲火良谷縣)으로 불렸다. 갑화 양곡은 이두식으로 풀이하면 갑국(甲國) 또는 갑향(甲鄕)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갑은 음독하면 갓[邊]과 통하는 것으로 보아 갓마을[邊城, 변두리 마을]이라고도 하고, 또는 갑은 10간[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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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기장의 읍내면이 있어 그 중심이라는 의미에서 기장읍(機張邑)으로 불렀다. 기장은 『서경(書經)』의 고우기장주(苦虞機張註)에 노기기장(弩機旣張)이라 하여 국토를 지키기 위하여 변방을 수비하는 의미가 있는데, 이에 바다에 닿는 첫째 마을로서 변방의 군사적 중요성을 고려해 한자화한 지명으로 추론된다. 기장읍 지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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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기장 향교(機張鄕校)가 있어 교리(校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기장 향교는 1617년(광해군 9) 기장의 유림들이 중건한 것이다. 교동(校洞)이라고도 부른다. 교리는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기장현 동면 고성리(古城里)로 기재되어 있다. 1356년(공민왕 5) 현재의 기장 읍성이 축조되어 옮겨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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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속하는 법정리. 내리(內里)라는 명칭은 1914년에 처음 확인된다. 중심 마을인 내동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내동은 앵림산의 계곡 안쪽에 자리한 마을로, 안골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화한 이름으로 보인다. 내리 인근에 원효 대사(元曉大師)가 창건[661]한 안적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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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속하는 법정리. 당사(堂社)라는 지명은 이곳에 있던 당집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사(堂祀)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당사는 토지나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고 있는 신당(神堂)이 있는 곳을 말한다. 대개 노거수 밑에 당집이라고 하는 신당이 었있다. 아릿마을[아랫마을] 동쪽 산을 당산이라 하며, 지금도 오래된 당산나무[소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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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속하는 법정리. 사라리와 마동리가 합쳐져서 대라리(大羅里)가 되었다. 행정 구역이 합쳐지면서 사라리의 웃사라 마을과 아래 사라 마을을 합쳐 대사라가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사(士)’ 자가 탈락하며 대라리가 된 것으로 추정한다. 대라리는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기장현 읍내면의 사라리로 확인할 수 있고, 『기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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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있는 법정리. 대변리(大邊里)는 조선 시대에 대변포(大邊浦)라고 부르던 곳이다. 이곳에 대동고(大同庫)가 있어서 대동고변포(大同庫邊浦)로 부르다가 ‘대변’으로 줄여서 부르던 것이 지명으로 정착하였다. 수군이 주둔하여 선두포(船頭浦)라 부르기도 하고, 전선창(戰船廠), 주사창(舟師廠)이라고도 하였다. 「차성가(車城歌)」에 “읍파정(揖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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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있는 법정리. 동부리(東部里)라는 지명은 조선 시대 이곳에 있었던 ‘동부방(東部坊)’에서 비롯되었다. 현재 기장초등학교 자리인 동헌(東軒)에서 남문 방향으로 주도로를 만들고 길의 동쪽은 동부방(東部坊), 서쪽은 서부방(西部坊)이라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동부리는 옛날 기장현청인 동헌 동쪽에 자리한 마을로, 서부리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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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있는 법정리. ‘만화(萬化)’의 명칭에 대해서는 먼저 산봉우리를 의미하는 지역 방언인 만다리의 차음(借音) 표기로 보는 견해가 있다. 기장에서는 산봉우리를 만다리, 만데이, 산만등이라 하는데, 이 중 만다리가 만(萬)+달리[化]로 되었다는 견해이다. 이 산봉우리는 북쪽의 일광산을 의미한다고 본다. 다음으로는 인근의 망풍정(望豊亭)과 두화(斗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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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있는 법정리. 조선 시대 기장 읍치의 읍성 서문 일대에 있어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동헌에서 남문에 이르던 길의 서쪽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서부리(西部里)는 옛날 기장현청인 동헌 서쪽으로 동부리와 더불어 성내 마을이다. 기장현청은 1356년(공민왕 5)에 건립되어 오랜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조선 시대에는 읍내면에 해당하였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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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있는 법정리. 석산은 ‘돌 석(石)’ 자에 ‘뫼 산(山)’ 자로, 순 한글 지명은 ‘돌뫼’이다. 돌뫼의 돌은 ‘높다[高]’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높은 산이 된다. 석산리(石山里)는 북동쪽의 연화봉[150m] 기슭에 자리 잡아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지명으로 보인다. 석산리는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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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있는 법정리. 시랑(侍郞)이라는 지명은 인근의 시랑대에서 비롯되었다. 1733년(영조 9) 당시 기장 현감이던 권적(權樀)이 원앙대(鴛鴦臺)에 놀러가서 돌벽에 시랑대(侍郞臺)라고 글자를 새긴 데서 유래되었다. 시랑리(侍郞里)는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기장현 남면 비옥포로 나타나며, 1895년(고종 32)에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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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있는 법정리. 신천리(新川里)의 명칭 유래는 다음과 같다. 먼저 이 지역에는 임진왜란 이전에 소부리[쇠부리] 마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없어지고 새로 마을이 형성되어 새마슬 또는 신리(新里)로 부르고, 인근 치내[聚川]에 생긴 마을을 치내[신천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치천이라고도 하며 앞에 하천이 있어 붙여진 이름]로 불렀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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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속하는 법정리. 연화리(蓮花里)의 지명은 마을 남쪽의 연화봉(蓮花峯)[150m]에서 유래되었다. 연화봉은 기장 고을의 풍수 형국을 옥녀 직금(玉女織錦)으로 해석한 데에서 비롯된다. 즉 연꽃무늬의 비단 폭에 해당되는 산봉우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화리는 조선 후기까지 정식 동리명은 없었고, 기장현 읍내면의 무지포(無知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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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속하는 법정리. 죽성리(竹城里)는 지역에 축조된 죽성에서 비롯되었다. 신라 시대의 토성(土城)인 고성(古城)이 있는데, 이를 죽성이라고 하였다. 고성 사방에 대[竹]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불린 이름으로 추정된다. 죽성리는 조선 시대에 두모포진성이 있던 곳이다.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1449]에 “현에서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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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속하는 법정리. 청강리(淸江里)의 지명은 이곳을 흐르는 죽성천의 부분 명칭인 청강천(淸江川)에서 비롯되었다. 청강천은 기장 읍내를 가로지르는 하천으로 물이 무척 맑아 돌에 이끼가 끼지 않아 백석청강(白石淸江)이라고도 불렀고, 이를 줄여 ‘맑은 청(淸)’과 ‘내 강(江)’을 써 청강이라 하였다. 청강리는 『호구총수(戶口總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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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속하는 읍. 장안읍(長安邑)의 지명은 이곳의 장안사에서 비롯되었다. 장안사는 불광산[659m] 자락에 있는 고찰로 범어사(梵魚寺)의 말사이다. 673년(문무왕 13) 원효 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하여 쌍계사라 부르다가 809년 장안사로 고쳐 불렀다. 장안읍 지역은 좌천리(左川里) 고분군 100기 등이 존재해 선사 시대부터의 오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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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고리(古里)는 조선 전기까지는 아이포(阿爾浦)로 불렸으며, 임진왜란 이후 화사을포(火士乙浦) 또는 화포(火浦)로 불리다가 고리가 되었다. 아이포는 ‘작은 개’ 또는 ‘포구’라는 뜻으로 작다는 말을 아이로 표현했고, 이를 그대로 차훈하여 아이(阿爾)로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화사을포는 봉화대가 설치되면서부터 불린 이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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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기룡(寄龍) 마을의 기(奇)는 ‘키’, ‘크’의 차음 표기로 ‘크다’의 의미이다. ‘용 룡(龍)’ 자는 ‘미리’로서 머리의 의미로 두 글자를 합하면 큰 머리를 뜻한다. 장안천 변의 마을 이름은 모두 용(龍) 자와 건(乾) 자가 들어가는데, 이에 기룡은 장안천 변의 큰 마을이라는 뜻이다. 기룡 마을은 경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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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길천리(吉川里)는 지역 내에 있는 질고지[마을 북쪽의 들]와 질곶이천[들을 흐르는 소하천]과 연관된 지명으로 추정된다. ‘질’은 ‘길’의 사투리이기 때문에 길(吉)이 되었고, ‘천’은 소리나는 대로 차음하여 천(川) 자를 따서 길천(吉川)이라 불렀다. 길천리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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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법정리. 덕선리(德仙里)는 이곳의 자연 마을인 내덕(內德) 마을과 선암(仙岩) 마을의 합성 지명이다. 내덕 마을은 덕산(德山) 안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선암 마을은 마을 남쪽의 작은 언덕에 신선이 놀았다는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덕선리는 본래 기장현에 속하였으나 1599년(선조 32) 기장현이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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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법정리. 명례리(鳴禮里)의 지명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자연 마을인 대명과 이곳의 옛 지명인 울례(蔚禮)를 합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명례리는 예부터 울리 또는 울례라 불렀다. 옛날 큰울례[大鳴] 마을에 허씨가 들어와 권세와 함께 예절을 중히 여겼기 때문에 이를 따르는 마을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대우받아 큰 소리를 울리며 사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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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법정리. 반룡(盤龍)의 지명은 장안천과 관련된 지명으로 보인다. 장안천은 옛날에는 ‘건천(乾川)’, ‘용천(龍川)’이라 하였다. ‘건천’은 ‘마르내’이고 ‘용천’은 ‘미리내’이다. 모두 큰 내 또는 으뜸가는 내라는 뜻이다. 이에 마을이 장안천[龍川]의 굴곡(屈曲) 지점에 위치하여 ‘선회할 반(盤)’ 자와 ‘용 룡(龍)’ 자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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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오리(五里)라는 이름은 대룡 마을·판곡 마을·신리 마을·개천 마을·고무 마을의 다섯 개 자연 마을이 모여 하나의 법정리를 이루었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오리는 조선 전기 기장현 신리방에 속하였다가 1599년(선조 32) 기장현이 폐지되며 울산군에 합속되었고, 1681년(숙종 7) 다시 기장현으로 복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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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용소리(龍沼里)라는 지명은 마을을 지나는 용소천과 관련이 있다. 용소천은 장안의 진산인 삼각산(三角山)[472m]에서 발원하여 마을 앞을 지나 반룡에서 장안천과 합류한다. 상류 곳곳에 작은 폭포가 소(沼)를 이루고 있고, 용이 살았다는 전설을 지닌 용담(龍潭)[깊게 파인 물웅덩이]이 있다. 용소리는 본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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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월내(月內)의 옛 이름은 월래(月來)였다. 명칭의 유래는 여러 가지이다. 먼저, ‘월(月)’은 경주의 옛 이름인 월성과 같이 울타리 또는 성(城)을 의미하며, ‘래(來)’는 서라벌의 라(羅)와 마찬가지로 마을을 의미해 성책(城柵)을 가진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본다. 다음으로는 마을 북동쪽의 월내천 옆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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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임랑리(林浪里)의 옛 지명은 임을랑(林乙浪)이었다. 임을랑 지명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임진왜란 당시 임계안(林溪岸) 뒷산에 왜적들이 성을 쌓고 이 성을 임성(林城)이라 하였다고도 하고, 마을에 숲이 우거지고 바다 물결이 아름다워 ‘수풀 림(林)’ 자와 ‘물결 랑(浪)’ 자를 따서 임랑이라 이름 붙였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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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장안리(長安里)의 지명은 장안사(長安寺)와 관련이 있다. 장안천 상류에 있는 장안사는 673년(문무왕 13) 원효 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하여 쌍계사라 부르다가 809년 장안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당시 장안사로 고친 것이 지명으로 이용된 것인지, 사찰 이름을 지명으로 이용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에 장안사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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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좌동리(佐東里)는 좌천 마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유래된 이름으로 추정하고 있다. 좌동리는 본래 기장현 중북면(中北面) 좌동방(佐東傍)이었다가, 1599년(선조 32) 기장현이 폐지되며 울산군에 합속되었다. 1681년 다시 기장현 중북면 좌동방이 되었다. 1895년 기장군 중북면 좌동동(佐東洞)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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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옛 이름은 좌촌(佐村), 또는 자천·자촌이었다. 지명 유래는 이곳을 흐르는 좌광천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관읍 병산골에서 발원하여 달음산을 감싸고 돌아 마을 옆을 흐르는 좌광천 냇가에 위치하여 옛 이름 좌방(佐坊)의 ‘좌(佐)’ 자와 ‘내 천(川)’ 자를 합하여 지명으로 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좌천(佐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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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효암리(孝岩里)는 기장군 상북면 영역이던 차암동(車岩洞)과 울산군 외남면의 효열동(孝烈洞)을 병합한 리로 효열동의 효(孝)와 차암동의 암(岩) 자를 합친 지명이다. 효암리 지역은 본래 기장과 울산의 경계부로, 1599년(선조 32) 기장현이 폐지되며 울산군에 합속되었다가, 1681년(숙종 7) 기장현으로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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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속하는 면. 일광면(日光面)의 명칭은 기장읍과의 경계를 이루는 일광산에서 비롯되었다. 일광산의 아침 햇살을 가장 먼저 받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일광면 지역은 좌천리 고분군 100기 등이 존재해 선사 시대부터의 오랜 거주 역사를 알 수 있다. 현재의 일광면 지역은 조선 전기 기장현에 속하였다가, 1599년(선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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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에 있는 법정리. 동백(冬柏)이라는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서 확인되는 동백포(冬栢浦)에 인접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하고, 이곳에 있던 동백정[옛날에 송씨와 남씨가 정착하여 마을 입구에 세웠다는 정자]에서 비롯되었다고도 전한다. 동백리(冬柏里)는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서는 기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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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에 있는 법정리. 문동리(文東里)의 옛 이름은 독이방(禿伊坊)이었다. ‘독이(禿伊)’는 원래 나무가 없어 헐벗은 민둥산을 의미한다. 마을 뒷산인 문산(文山)을 예전에 민둥산이라 하였는데, ‘민둥’이란 지명이 어감이 좋지 않아 민둥산을 문산으로 바꾸고, 민둥을 발음이 비슷한 문동으로 불렀다고 전한다. 또는 문산의 동쪽에 있어 문동으로 불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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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에 있는 법정리. 문중리(文中里)는 문오동의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오동은 기장현 시기에 중북면의 문동, 문상[해창 마을], 문중, 문하[칠암 마을]와 문서[동면 동백 마을]를 합쳐 불렀던 지명이다. 문중리는 기장 구포 중 하나인 독이포에 속한 지역이다. 1599년(선조 32) 울산군에 합속되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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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에 있는 법정리. 삼성(三聖)이란 이름은 삼성대에서 유래하였다. 삼성대의 명칭 유래는 여러 설이 있다. 『양산군지』[1989]에는 신라의 원효(元曉), 의상(義湘), 윤필 세 성인이 다녀가 삼성대라 하였다고도 하고, 고려 시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를 비롯한 이색(李穡)·이숭인(李崇仁) 세 성현이 찾아와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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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에 있는 법정리. 신평리(新平里)의 옛 이름은 ‘새들’로, 이를 한자로 표기한 지명이다. 평탄한 들 가운데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새들은 새버든, 새버들이라고도 하며 새각단이라고도 불렀다. 신평리 지역은 조선 후기 기장현 중북면 독이리(禿伊里)에 속하였으나, 『기장현읍지(機張縣邑誌)』[1831]에서는 지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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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천리(龍川里)의 옛 이름은 취정동(鷲井洞)이다. 이는 이곳을 흐르는 취정천(鷲井川)[일광천 상류 부분의 명칭]에서 비롯되었다. 용천은 취정천의 옛 이름인 미리내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미리내를 한자로 표기하면 미리 용(龍), 내 천(川)이 되어 붙여진 지명이라고 전하는 바가 있고, 다음으로는 그 근처에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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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리(院里)는 원동(院洞)이라고도 불렀다. 지명의 의미상 공해[官廳]의 하나인 원(院)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599년 원리를 경계로 울산군에 편입되면서 고을 간 경계 지점이 되면서 관원들의 숙박을 위한 원이 설치되는 관행으로 보아 이곳에 원이 설치되어 지명이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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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천리(伊川里)의 옛 이름은 ‘일개’이다. 개는 갯가를 뜻하는 포(浦)로, 개를 이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 “이을포(伊乙浦)는 현에서 동쪽 6리에 있다. 어량(魚梁)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어량[강물의 물살을 막은 뒤 통발을 놓아 고기를 잡는 시설]을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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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청광리(靑光里)는 막뱉골과 관련된 지명이다. 이곳을 흐르는 동백천의 계곡을 뱉골[陽谷, 光谷-동쪽으로 흐르는 계곡이라서 양지 쪽]로 불렀다. 임진왜란 이후 뱉골에 강둑을 막고 경지를 정리하는 동막이를 하며, 막뱉골이라 불렀다. 막뱉골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청광동(淸光洞)이 되었다. 실제로는 한자로 차양동(遮陽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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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칠암리(七岩里)의 지명은 마을 앞 해안가에 있는 바위와 관련이 있다. 마을 앞에는 옻바위[색깔이 옻을 칠한 것처럼 검어 붙여진 이름]가 있었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 칠암(漆岩)이 된다. 칠암의 칠(漆) 자가 쓰기 어려워 일곱 칠(七) 자로 바뀌었다고도 하고, 마을 앞 검은 바위가 7개라서 ‘일곱 칠’ 자를 썼다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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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학리(鶴里)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먼저 해안의 지형이 황학(黃鶴)과 닮았다는 풍수설에 따라 붙여진 지명이라는 견해와 마을 남쪽 산에 있는 해송에 학이 서식하였기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또한 마을 동쪽의 산마루가 잘록하여 예부터 이곳을 황새목이라 불렀으며, 학리의 옛 이름이 항곶이[項串]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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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전리(花田) 명칭은 땅의 형태에서 유래한다. 화전리가 있는 지역은 일광천 본류와 항새목[꼬지매기]에서 흘러내린 냇물이 퇴적한 땅의 형태가 곶(串)[또는 갑(岬), 물가 쪽으로 돌출된 지형]처럼 생겼다고 하여 곶밭(串田)[岬田]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후 ‘곶’을 ‘꽃’으로 풀어 화(花) 자와 전(田) 자로 차음(借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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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횡계리(橫溪里)는 본래 홍계동(洪界洞)이라 불렀다. 마을이 일광산 기슭의 넓은 골짜기 아래에 있어, 이 넓은 골짜기를 널골[넓은 골] 또는 큰 골로 부르며 ‘넓을 홍(洪)’ 자와 ‘골 동(洞)’을 써서 홍골(洪洞)로 표기하였다. 점차 시간이 흐르며 계곡을 흐르는 작은 개울을 홍계(洪溪)로 부르게 되며, 작은 개울을 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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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속하는 읍. 정관읍(鼎冠邑)의 명칭은 소두방이라는 지명을 ‘솥 정(鼎)’에 ‘갓 관(冠)’으로 한자화한 것이다. 정관읍의 중심인 덕산에서 매남산[매암산]을 바라보면 마치 솥을 엎어 놓은 듯도 하고 솥뚜껑을 덮어 놓은 듯도 하여 정관읍과 철마면 등 주변 주민들이 이곳을 소두방이라 하였다고 한다. 정관과 철마와 동래를 잇는 고갯길은 소두방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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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에 속하는 법정리. 달산리(達山里)의 명칭 유래는 리의 남쪽을 에워싸고 있는 달음산에서 비롯되었다. 달산리 지역은 임진왜란 이후 기장현 하북면 대전방에 속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는 기장현 하북면 대전방과 달산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1895년(고종 32) 동래부 기장군 하북면 달산동과 대전동이 되었다.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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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에 있는 법정리. 두명리(斗明里)란 이름은 두전 마을과 부명 마을의 합성 지명이다. 두전 마을의 옛 이름은 말밭이었다. ‘말’은 산마루로 솟음산을 뜻한다. 말밭은 솟음산의 남쪽에 있는 밭이라는 뜻이다. 말을 차훈해 끝 말(末)로 표기하다가, 말 두(斗)로 풀이되는 오류로 전혀 다른 의미의 두전(斗田)이 되었다고 본다. 부명 마을의 옛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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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에 있는 법정리. 매학(梅鶴)이란 이곳에 있는 매곡(梅谷) 마을의 매(梅)와 상곡 마을[매학리] 뒤에 솟아 있는 소학대(巢鶴臺)[백운산 자락의 매 바위를 일컫는 것으로 기장 팔경 중 하나]의 학(鶴)을 합성하여 붙인 지명이다. 매학리(梅鶴里)는 조선 후기 하북면 대전방에 속하였고,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는 기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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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에 있는 법정리. 옛 이름은 띠밭으로 띠[억새]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띠밭을 한자화하며 ‘띠 모(茅)’ 자에 ‘밭 전(田)’ 자로 표기해 모전(茅田)이 되었다. 모전리(茅田里)는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기장현 하북면 산막방의 모전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1895년(고종 32) 동래부(東萊府) 기장군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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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에 있는 법정리. 방곡리(芳谷里)의 지명은 주변 야산 곳곳에 솟은 바위에서 유래하였다. 방(芳)은 바위를 뜻하는 지역 방언인 방우의 차음 표기이며, 여기에 고을이라는 뜻의 곡(谷)이 붙은 것이다. 방우골을 한자명으로 표기하면 암곡(岩谷)이 되는데, 발음이 좋지 않아 방우를 방(芳)으로 차음하여 방곡으로 표현한 것이다. 옛 이름은 방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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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에 있는 법정리. 병산리(屛山里)의 옛 이름은 비단골로, 병산은 아름다운 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 쳐 놓은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차성가(車城歌)」에 “팔첩 병풍 둘렀던가 기묘한 병산이라.”라는 구절이 있다. 병산리는 조선 후기 기장현 하북면 산막방에 속하였으며,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는 동명이 확인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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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에 속하는 법정리. 예림리(禮林里)의 지명 유래는 명확하게 전하는 바가 없다. 먼저 좌천에서 큰 고개를 넘어 형성된 마을이라서 ‘큰 고개 너머에 있는 마을’이란 의미로 ‘남아 마을’[너머 마을을 뜻하는 사투리]로 부르다가, 마을의 규모가 커지며 남을 여(餘)에 마을 리(里)를 써서 여리(餘里)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지역 주민들은 옛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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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에 속하는 법정리. 용수리(龍岫里)는 1914년 덕전동과 산막동, 평전동, 가동을 통·폐합하여 붙인 명칭으로 정확한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4개 마을이 모두 조룡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어 조룡산의 용(龍) 자와 산부리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뫼부리 수(岫) 자를 합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하고 있다. 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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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에 속하는 법정리. 월평리(月坪里)는 옛날에 아월(阿月)이라 부르다가 신월(新月)이라 불렀고, 이후 월평(月坪)이 되었다고 한다. 월이 들어간 지명은 이곳에 있는 반월성이라는 토성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아월은 아반월성(阿半月成)의 약칭으로 ‘언덕 아(阿)’에 반월형 모양의 성을 뜻하는 ‘월[月]’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또 반월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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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에 속하는 법정리. 임곡리(林谷里)의 옛 지명은 숲실이다. 주변에 숲이 울창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임곡(林谷)은 숲실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임곡리가 속한 지역은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서 기장현 하서면 말전리(末田里)로 확인되며, 1895년(고종 32) 동래부(東萊府) 기장군 하서면 임곡동이 되었다.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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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속하는 면. 철마면(鐵馬面)이라는 지명은 면에서 가장 높은 산인 철마산(鐵馬山)[604m]에서 비롯되었다. 철마산은 이 지역에 홍수가 나자 동해에 사는 용마(龍馬)라는 용이 나타나 물을 빼 주었는데 물이 없어지자 용마는 움직이지 못해 그만 철(鐵)로 굳어 버렸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일명 쇠말산이라고도 부른다. 철마면 지역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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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촌리[古村里]의 옛 이름은 돋골이다. 고촌은 돋골의 본 마을, 오래된 마을이라는 의미로 보기도 한다. 또한 마을 앞 화산등(花山嶝)에 진달래꽃이 만발하면 마을이 온통 꽃밭처럼 되어서 꽃촌이라 하였으며, 이런 연후로 후에 고촌으로 변하였다는 설도 있다. 고촌리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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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는 구칠리(仇柒理)라는 한자어를 사용하였으나 뒤에 구칠리(九七理)라고 하였다. 이칭으로 구칠(九柒)·구칠(邱漆) 등을 사용한다. 이 다양한 표기에 대해 주민들은 이곳에 큰 옻나무 아홉 그루가 있었기에 마을 이름을 구칠(九漆)이라 하였고, 그 옻나무가 언덕 위에 자생하고 있으므로 구칠(邱漆)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또 옻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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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 있는 법정리. 옛 이름은 박길리(朴吉里)이다. 박(朴)은 박실[朴谷]·배미산·배산·바리산 등의 예와 관련된 ‘밝다’의 옛 말이고, 길(吉)은 ‘길 영(永)’ 의 뜻을 받아 ‘밝은 고개의 긴 안쪽’, 즉 양지 안쪽 마을의 의미가 된다고 본다. 실제 백길리(栢吉里)는 와여리에서 웅천리로 통하는 긴 협곡의 안쪽에 위치한 양달의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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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 있는 법정리. 송정리(送亭里)는 동래·양산·울산으로 통하는 큰 길목에 있어, 계곡의 노송과 팽나무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쉬어 가는 정자나무가 되었고, 점차 정자나무 아래로 주막 등이 생겨났다고 한다. 인접한 고을의 관원들이 배웅을 할 때 이 정자나무까지 와서 배웅을 하였다. 이에 ‘보낼 송(送)’ 자에 ‘정자 정(亭)’ 자를 써서 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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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마을 앞에 신명역(新明驛)이 있어 신명리[신명역촌]라고 하고, 신명역 안쪽 들에 있는 마을을 따로 안평(安平)[신평(新平)이라고도 하였다]이라 구분하였다고 한다. 역촌이 사라지며 안평이 되었다고도 한다. 한편 임진왜란 때 마을 주민들이 뒷산에 산성을 쌓고 왜적을 방비하여 마을이 안전하고 편하게 되었다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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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 속하는 법정리. 연구리(蓮龜里)는 이곳의 연봉리(蓮峰里)와 구림(龜林) 마을이 합쳐지며 만들어진 합성 지명이다. 연봉리는 마을의 산이 연꽃처럼 생겼다 하여 불러진 지명이며, 구림은 구칠재에서 따온 명칭이라고 한다. 또한 이곳 주민들은 옛날 연구리 본동에 연못[蓮池]이 있었고 이곳에 거북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지명이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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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 속하는 법정리. 와여리(瓦余里)의 옛 이름은 애몰이며, 이후 한자명으로 아여(阿餘)라 하였다. 애몰의 ‘애’는 작다는 뜻이며, ‘몰’은 산마루로 작은 산마루로 해석할 수 있다. 한자명 아여도 현재 쓰이고 있는 지명인데, 이때 ‘여(餘)’는 ‘건너갈 월(越)’을 표기한 것으로 ‘언덕 너머’ 또는 ‘작은 산마루 너머’라는 뜻이 된다고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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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 속하는 법정리. 웅천(熊川)의 옛 이름은 웅계이고, 우리말로 곰내라고 한다. 이곳 주민들은 거문산[543m]의 계곡에 곰이 살고 있어서 웅계(熊溪) 또는 곰내라 하였다가 웅천(熊川)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전한다. 웅천리(熊川里)는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기장현 상서면 웅천리로 기록되어 있으나, 『기장현읍지(機張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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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곡(耳谷)의 옛 이름은 구실(龜室)이다. 구칠재[구실재라고도 함]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구실이 이실이 된 과정을 국어학계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구(龜) 자는 ‘귀’로도 발음하는데, 구실(龜室)이 귀실로 읽히며 ‘귀 이(耳)’ 자를 써서 이실(耳室)로 기록되어 이곡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마을 주민들은 마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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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 속하는 법정리. 임기리(林基里)의 옛 지명은 숲터였다. 임기천 주변의 넓은 평지 주변에 우거진 숲이 있었는데, 이 숲을 개간하여 취락이 형성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숲터를 차훈 표기하여 임기(林基)가 되었다. 조선 후기 기장현 하서면에 속하였으나 『기장현읍지(機張縣邑誌)』[1831]에는 마을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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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전리(長田里)는 이 지역에 있던 장전(長田)에서 비롯되었다. 장전은 역장(驛長)의 공비(公費)를 충당하기 위해 지급된 토지로 속칭 장밭이라고도 하였는데, 이 지역의 옛 지명도 장밭이다. 기장에는 신명역(新明驛)과 아월역이 있었는데, 장전리에서 가까운 신명역에 지급된 장전이 이곳에 있었다. 한편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행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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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속하는 행정동. 가락동(駕洛洞)은 기원 전후부터 562년까지 낙동강 하류 지역에 있던 가락국(駕洛國)이 자리했던 지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는 김해군 가락면(駕洛面)에 속한 지역으로 식만리(食滿里)·죽림리(竹林里)·죽동리(竹洞里)·봉림리(鳳林里)를 관할하였다. 1989년 부산직할시 강서구로 편입되며 가락동이 되었다.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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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는 행정동. 복산동은 법정동인 복천동(福川洞)과 칠산동(漆山洞)을 병합한 동으로, 두 동명을 합쳐 명칭을 확정하였다. 복산동은 조선 후기 동래부 읍내면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동래군 동래면(東萊面)에 편입되었다. 1942년 부산부 동래출장소 관할이 되었고, 1957년 구제가 실시되면서 동래구에 속하며 복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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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는 행정동. 수민동(壽民洞)은 법정동인 수안동(壽安洞)과 낙민동(樂民洞)을 병합한 동으로 두 동명을 합쳐 명칭을 확정하였다. 수민동은 부산 동래 패총[사적 192호]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취락 형성의 역사가 비교적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동래부 읍내면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동래군 동래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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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속하는 행정동. 천성면과 가덕면을 병합하면서 첫 글자를 따 천가면(天加面)으로 하였는데, 이후 천가동(天加洞)이 되었다. 2015년 가덕도의 이름을 따서 가덕도동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가덕도동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패총]와 고인돌에서도 알 수 있듯 오랜 거주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지역이다. 가덕도동이 속한 지역은 조...
신도시·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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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에 조성된 신도시. 명지 국제 신도시는 동북아시아의 경제 중심지이자 관문에 위치한 부산·진해 경제 자유 구역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되었다. 부산·진해 경제 자유 구역은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최적의 산업과 경영 및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국제 비즈니스의 전진기지로 조성되고 있다. 총 83.1㎢ 면적에 24만 3,000명을 수용하는 지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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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일원에 조성되는 미래 도시. 센텀시티는 부산의 밀레니엄 프로젝트 중 가장 핵심 사업이다. 센텀시티(Centum City)란 라틴 어로 100을 뜻하는 센텀과 시티의 합성어로 100% 완벽한 첨단 도시를 의미한다. 첨단 기술과 자연이 결합된 미래 복합형 도시, 즉 정보·업무·관광·상업·주거·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복합 기능을 갖춘 도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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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일원에 조성된 신시가지. 신시가지는 도시 내 형성되는 구역이며 신도시는 독립된 행정 구역으로 개발된다는 개념으로 구분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두 개념은 큰 구분 없이 혼용된다. 신도시의 개발 배경은 첫째 도시 인구 증가와 세대수 증가로 주택 공급의 필요성에 의해 도시 정책적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둘째는 생활 수준 향상에 따른 생활 환경의 질적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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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 일대에 새롭게 조성된 계획 시가지. 신시가지는 도시 내 형성되는 구역이며 신도시는 독립된 행정 구역으로 개발된다는 개념으로 구분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두 개념은 큰 구분 없이 혼용된다. 신도시의 개발 배경은 첫째 도시 인구 증가와 세대수 증가로 주택 공급의 필요성에 의해 도시 정책적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둘째는 생활 수준 향상에 따른 생활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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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일대에 새롭게 조성된 계획 시가지. 신시가지는 도시 내 형성되는 구역이며 신도시는 독립된 행정 구역으로 개발된다는 개념으로 구분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두 개념은 큰 구분 없이 혼용된다. 신도시의 개발 배경은 첫째 도시 인구 증가와 세대수 증가로 주택 공급의 필요성에 의해 도시 정책적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둘째는 생활 수준 향상에 따른 생활 환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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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 일대 도심부를 관용적으로 부르는 이름. 서면(西面)은 부산광역시의 옛 행정 구역인 동래의 한 면이었다.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따르면 현재의 서면 일대는 동래부의 7개 면 중 하나인 서면에 속하였다. 서면은 현재 부산진구의 초읍동·연지동·전포동·양정동과 연제구 거제동 및 북구 만덕동 일대에 속하였다. 서면의 지명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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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옛 조선방직 앞 지역을 부르는 지명. 조선방직은 독점적 자본의 우위를 이용해 국내 농산물을 수탈해 방직 공장에서 가공해 다시 국내 공장에 비싸게 판매함으로써 이중 착취를 하였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부터 1968년까지 현재의 범일 2동 대부분 지역을 조선방직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밤마다 조선방직 정문 앞에 회사 이름이 네온사인으로 번쩍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