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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8741
한자 壽安洞
영어의미역 Suan-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기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동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동래군 동래면 수안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2년 - 동래군 동래면 수안리에서 부산부 동래출장소 관할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57년 - 부산부 동래출장소 관할에서 부산시 동래구 수안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부산시 동래구 수안동에서 부산직할시 동래구 수안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부산직할시 동래구 수안동에서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으로 개편
법정동 수안동 -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

수안동(壽安洞)은 조선 시대 동래 읍치의 동헌이 있던 곳이다. ‘수안(首安)’ 또는 ‘수안(水安)’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수안(首安)은 동래 부사가 집무하던 동헌이 있어서 비롯되었으며, 수안(水安)은 땅 밑을 조금만 파도 물이 나온다 하여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수안동은 조선 후기 동래부의 읍내면에 속하였던 곳으로, 1914년 평남동(平南洞)·안민동(安民洞)·장남동(壯南洞)·안국동(安國洞)·서호동(西豪洞)을 합하여 수안리가 되며 동래군 동래면(東萊面)에 편입되었다. 1942년 부산부(釜山府) 동래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57년 구제(區制)가 시행되면서 부산시 동래구가 되었고, 1963년 부산직할시 동래구 수안동, 1995년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이 되었다.

[자연 환경]

수안동 일대는 조선 시대 동래읍성 남문 일대와 성 바깥쪽에 해당한다. 서쪽과 남쪽은 온천천에 접한다. 대부분이 평지이나, 지금의 부산동래경찰서 자리에는 농주산(弄珠山)이 있었다. 풍수지리상 동래읍성의 안산(案山)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 시대에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 등 임진왜란 때 순절한 사람들을 모신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착평되어 사라지며 평지가 되었다. 남문에서 세병교로 이어지는 도로 일대는 지대가 낮아 일제 강점기까지만 하더라도 농사짓기 어려운 저지대였다. 온천천을 따라 제방이 축조되며 현재와 같이 변화되었다.

[현황]

수안동동래구의 중앙에 위치한다. 서쪽과 남쪽은 사직동연제구, 동쪽은 낙민동, 북쪽은 명륜동과 접한다. 관내에 동래읍성의 동헌이 있으며, 이곳의 망미루 일대는 과거에 매 2·7일 동래 읍내장이 열린 곳이다. 수안 로터리에서 세병교를 거쳐 이어지는 도로는 조선 시대 부산진성으로 연결되는 간선 도로였다. 현재는 부산동래경찰서·부산광역시 동래소방서 등 행정 기관이 밀집되어 있고, 해운대 방면으로 통하는 충렬 대로, 부산광역시청 방면으로 이어지는 중앙 대로 등과 연결된 교통의 요지이다.

충렬 대로 지하로는 미남 로터리와 반송을 연결하는 도시 철도 4호선이 개통되어 있다. 한편 수안역의 지하철 공사 중 임진왜란 당시의 유물이 발굴되어 이곳 역사에서 전시되고 있다. 온천천 유역은 동래구 관내에서 아파트가 가장 많이 형성된 곳이다. 행정동으로는 수민동[법정동인 수안동낙민동을 총괄하며 두 동명의 합성어]의 일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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