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90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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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橋洞一-二街 |
영어의미역 | Daegyo-dong 1-ga, 2-ga |
이칭/별칭 | 대교동,대교동 1가,대교동 2가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교동 1가|대교동 2가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진숙 |
성격 | 법정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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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시기/일시 | 1944년 - 부산부 사중면 영선정에서 부산부 사중면 대교통 4정목·대교통 5정목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7년 - 부산부 사중면 대교통 4정목·대교통 5정목에서 부산부 사중면 대교동 4가·대교동 5가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9년 - 부산부 사중면 대교동 4가·대교동 5가에서 부산시 사중면 대교동 4가·대교동 5가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51년 - 부산시 사중면 대교동 4가·대교동 5가에서 부산시 영도출장소대교동 4가·대교동 5가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57년 - 부산시 영도출장소대교동 4가·대교동 5가에서 부산시 영도구 대교동 4가·대교동 5가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63년 - 부산시 영도구 대교동 4가·대교동 5가에서 부산직할시 영도구 대교동 4가·대교동 5가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2년 - 부산직할시 영도구 대교동 4가·대교동 5가에서 부산직할시 영도구 대교동 1·2가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부산직할시 영도구 대교동 1·2가에서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교동 1·2가로 개편 |
법정동 | 대교동 1·2가 -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교동 1·2가 |
[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대교동(大橋洞)은 일제 강점기 부산항의 발달로 급격히 성장하여 2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으나, 이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대평동 1·2가, 남항동 1·2·3가와 합쳐져 행정동인 남항동의 관할 하에 있다.
[명칭 유래]
일제 강점기 초기 용미산을 기준으로 북쪽 해안에 자리하여 북빈(北濱)으로 불렀고, 마주 보는 자갈치 시장 부근은 남쪽에 있어 남빈(南濱)이라 하였다. 1934년 영도 대교가 개통되며 다리와 접한 지역이라 하여 대교(大橋)라는 지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영도 대교 가설[1931년 3월 착공하여 1934년 11월 개통]과 함께 주변 바닷가의 매축[현재 토지의 60%가량이 매축지에 해당]으로 개발이 이루어진 곳이다. 처음 개발이 이루어질 당시에는 부산부 사중면 영선정(瀛仙町)에 속하였으며, 영도 다리 양쪽 지역은 대교통으로 불렀다. 1944년 영선정이 6개 정(町)으로 분할되며 대교통(大橋通) 4정목·대교통 5정목[대교통 1정목·대교통 2정목·대교통 3정목은 현 중구 중앙동 지역이며, 영도구에 속한 지역은 대교통 4정목·대교통 5정목이 됨]으로 개편되었다. 1947년 광복으로 일본식 동명을 다시 우리나라 명칭으로 바꿀 때 대교동 4가·대교동 5가로 개칭되었다.
1949년 부산부가 부산시로 개칭되었으며, 1951년에는 영도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57년 영도출장소가 영도구로 승격하였으며, 1963년 부산시가 부산직할시로 승격하였다. 1982년 중구에 속한 대교동 1·2·3가가 중앙동 5·6·7가로 개칭되며 영도구에 속한 대교동 4·5가가 대교동 1·2가로 개칭되었다. 1995년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교동 1·2가가 되었으며, 1998년 대교동 1·2가는 행정적으로는 인구 5,000명 이하의 과소 동 통폐합 정책에 따라 대평동과 함께 남항동에 통합되어, 현재 행정동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법정동으로만 실재한다.
[자연 환경]
본래 해안가였으나, 일제 강점기 매축되어 조성된 평지로 동의 북쪽은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구 해안과 마주 보고 있다.
[현황]
영도구의 북쪽 해안가에 위치하여 영도 대교를 통해 중구와 연결되는 관문이다. 이 지역에는 경찰서, 우체국을 비롯한 관공서와 금융업이 밀집해 있고, 각종 선구점과 음식점 등 상가도 밀집한 영도구의 중심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