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83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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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奇龍里 |
영어의미역 | Giry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기혁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기룡(寄龍) 마을의 기(奇)는 ‘키’, ‘크’의 차음 표기로 ‘크다’의 의미이다. ‘용 룡(龍)’ 자는 ‘미리’로서 머리의 의미로 두 글자를 합하면 큰 머리를 뜻한다. 장안천 변의 마을 이름은 모두 용(龍) 자와 건(乾) 자가 들어가는데, 이에 기룡은 장안천 변의 큰 마을이라는 뜻이다.
[형성 및 변천]
기룡 마을은 경주 이씨(慶州李氏) 알평 후손(謁平後孫) 11세손 이재덕(李在德)이 처음 들어온 것으로 보아 신라 시대부터 형성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경주 이씨 원성군파 기룡 문중 재실, 전주 이씨(全州李氏) 시조 이한(李翰)의 43세손 이길부(李吉夫)의 재실, 김해 김씨(金海金氏) 달해 후손(達瀣後孫) 8세손 김석만(金石滿)의 재실, 충주 지씨(忠州池氏) 기룡종문회의 재실 등이 있고, 이외에도 순흥 안씨(順興安氏) 자미 후손(子美後孫) 4세손 안평준(安平俊), 영천 이씨(永川李氏) 문학 후손(文學後孫) 5세손 이진우(李鎭佑), 밀양 박씨(密陽朴氏) 언부 후손(彦孚後孫) 4세손 박영호(朴永浩)가 정착하여 대를 이어 거주하고 있어 마을의 오랜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 기룡리는 기장현에 속하였다. 1599년(선조 32) 기장현이 폐지되며 울산군에 합속되었고, 1681년(숙종 7) 다시 기장현으로 복귀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는 기장현 중북면 기룡리로 기록되어 있다. 1895년(고종 32) 기장군 상북면 기룡동이 되었고, 1914년 동래군 장안면 기룡리가 되었다. 1973년 동래군이 폐군되면서 경상남도 양산군에 통합되었다. 1985년 10월 1일 양산군 장안읍이 되었다가, 1986년 양산군 동부출장소가 설치되며 이 지역을 관할했다. 1995년 부산광역시에 통합되면서 기장군이 복군되어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 환경]
장안읍의 중앙에 위치하여 북쪽으로는 장안리와 명례리, 동쪽으로는 오리와 반룡리, 남쪽으로는 용소리, 서쪽으로는 장안리와 접하고 있다. 서쪽에는 삼각산을 중심으로 산지가 발달하고 동쪽에는 고도 100~200m의 저산성 산지가 남북으로 달리고 있다. 동서로 발달한 두 산지 사이로는 북쪽 장안리에서 발원한 장안천이 흐르며, 동서의 두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은 장안천으로 합류한다. 소하천과 장안천의 합류 지점에 소규모 분지가 발달해 주거지를 이루고 있다.
[현황]
2023년 12월 현재 면적은 6.19㎢이며, 인구는 203가구에 총 356명으로 남자가 191명, 여자가 165명이다. 법정리인 기룡리에는 행정리인 하근, 기룡이 있다. 동쪽과 서쪽의 산지 사이로 부산 울산 고속 도로와 기장 대로가 지나가며, 장안사 계곡으로 가는 장안로가 있다. 자연 마을로 기룡 마을과 하근 마을이 있다. 기룡 마을은 장안천 유역에 있으며 농산물 직판장과 대선주조의 공장이 입지하고 있다. 하근 마을에는 수령 300년 이상이 된 팽나무가 서식하고 있다. 법정리인 기룡리의 행정리는 하근리와 기룡리이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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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5 | 현행화 | [상세정보] 가구수, 인구 변경, [현황] 인구 변경 |
2021.03.22 | 현행화 | 2020년 12월 현재 면적은 6.19㎢이며, 인구는 202가구에 총 397명으로 남자가 209명, 여자가 188명이다 |
2020.07.09 | 현행화 | 2019년 12월 현재 면적은 6.19㎢이며, 인구는 204가구에 총 395명으로 남자가 203명, 여자가 192명이다 |
2019.05.08 | 2019년 현행화 | 현황(인구 등) 현행화 |
2018.03.09 | 2018년 현행화 | 2018년 현행화(‘2017년 최신 통계정보 현행화 자료’ 참조) 인구, 가구수 현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