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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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朴氏 |
영어의미역 | Milyang Baksi|Milyang Bak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부산광역시 |
집필자 | 주영택 |
[정의]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양화·박익문·박말생·박견춘·박익용 등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밀양 박씨의 시조 박언침(朴彦枕)은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서 밀성[밀양] 대군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이를 연유로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밀양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고려 문종 때 태사 중서령을 지낸 8세손인 박언부(朴彦孚)를 중시조로 한다. 은산부원군 박영균(朴永均)의 맏아들인 송은(松隱) 박익(朴翊)[박천익은 초명: 1332~1398]은 고려 말기 팔은(八隱)의 한 사람으로 예부 시랑 중서령이었으나 신하로서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하여 조선 태조가 5번의 부름에도 나아가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오면서 시중공파를 비롯하여 도평의사사공파 등 12파로 분파하였다.
[입향 경위]
부산에 다양한 파가 입향하였다. 먼저 부산에 가장 먼저 입향한 것은 동래 쪽이다. 사문진사공파(四門進士公派)의 임진왜란 공신으로 동래 충렬사에 배향된 박귀희(朴貴希)의 아들인 박말생(朴末生)이 17세기 중엽에 김해(金海)에서 모라동으로 이거하였다. 기장군 정관읍에 입향한 것은 공간공파(恭簡公派)이다. 18세기 초엽 60세손 박양화(朴陽和) 대에 울산에서 지금의 정관읍 용수리 가동 마을에 터를 잡아 이주했다.
강서구에 제일 먼저 입향한 곳은 녹산동으로 규정파이다. 1720년(숙종 46) 무렵 밀양 박씨 고려 시대 사헌부(司憲府) 규정(糾正) 박현(朴鉉)의 20세손 박익문(朴益文)이 양산(梁山)으로부터 녹산(菉山) 사암(四岩) 마을로 이거하였다. 밀직부원군파는 1800년(숙종 46) 무렵 박견춘(朴見春)이 양산에서 수영으로 이거하였다. 참봉공파(參奉公派)는 1720년 박익용(朴翼龍)이 경북 청도에서 금정구 서동으로 입향하였다.
[현황]
1934년 조선 총독부에서 발행된 『朝鮮の姓』의 동래군조에는 밀양 박씨가 사상면 모라리에 37호, 주례 학장에 35호, 남면 중리에 29호, 일광면 학리에 22호, 장안면 임랑리에 21호가 거주한다고 했다.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밀양 박씨가 세거(世居) 성씨와 우거(寓居)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2000년 통계청 통계표에 의하면 밀양 박씨는 8만 7257가구에 28만 3130명[남 14만 841명, 여 14만 2289명]이 부산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밀양 박씨는 부산 지역의 많은 곳에서 세거하고 있는데, 남구 용호동, 사상구 학장동·주례동·모라동, 수영구 수영동, 금정구 서동, 강서구 죽림동·녹산동·대저동, 기장군 일광면 학리, 장안읍 기룡리, 정관읍 용수리 등이 대표적인 세거지이다. 특히 수영구 수영동의 밀양 박씨는 좌수영어방놀이[중요 무형 문화재 제62호] 예능 보유자를 2대째 배출하고 있다.
[관련 유적]
밀양 박씨 학장동 문중은 경모사(敬慕祠)를 지어 31분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10월 첫 일요일에 제향을 지내고 있다. 밀양 박씨 참봉공파의 서동 문중은 송곡재(松谷齋)에 매년 음력 10월 셋째 주 일요일에 제향한다. 정관읍 용수리 가동 마을의 밀양 박씨 공간공파는 죽원당에서 해마다 조상을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