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83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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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寄龍- |
영어의미역 | Giryong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 기룡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맹인섭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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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895년 - 기장군 상북면 기룡동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동래군 장안면 기룡리가 됨 |
변천 시기/일시 | 1973년 - 동래군이 폐군되며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면 기룡리 기룡 마을이 됨 |
변천 시기/일시 | 1985년 -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면 기룡리 기룡 마을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읍 기룡리 기룡 마을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부산광역시에 편입되며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 기룡 마을이 됨 |
자연 마을 | 기룡 마을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 기룡 마을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기룡(寄龍) 마을의 기(寄)는 ‘키’, ‘크’의 차음 표기로 ‘크다’라는 의미이다. ‘룡’ 자는 ‘미리’로서 머리의 의미로 두 글자를 합하면 큰 머리를 뜻한다. 장안천 변의 마을 이름은 모두 용(龍) 자와 건(乾) 자가 들어가는데, 기룡 마을은 장안천 변의 큰 마을이라는 뜻이다.
[형성 및 변천]
기룡 마을은 경주 이씨(慶州李氏) 알평 후손(謁平後孫) 11세손 이재덕(李在德)이 처음 들어온 것으로 보아 신라 시대부터 형성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경주 이씨 원성군파 기룡 문중 재실, 전주 이씨(全州李氏) 시조 이한(李翰)의 43세손 이길부(李吉夫)의 재실, 김해 김씨(金海金氏) 달해 후손(達瀣後孫) 8세손 김석만(金石滿)의 재실, 충주 지씨(忠州池氏) 기룡종문회의 재실 등이 있고, 이외에도 순흥 안씨(順興安氏) 자미 후손(子美後孫) 4세손 안평준(安平俊), 영천 이씨(永川李氏) 문학 후손(文學後孫) 5세손 이진우(李鎭佑), 밀양 박씨(密陽朴氏) 언부 후손(彦孚後孫) 4세손 박영호(朴永浩)가 정착하여 대를 이어 거주하고 있어 마을의 오랜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이지만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을미개혁으로 기장군 상북면 기룡동으로 처음 공식적인 지명이 확인된다. 『경상남도 기장군 가호안』[1904]에 상북면 기룡동에 55호가 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914년 3월 1일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동래군 장안면 기룡리가 되었다. 『조선의 성(朝鮮の姓)』[1936]에는 장안면 기룡리는 김해 김씨 36세대의 동족 마을로 나타난다.
1973년 7월 1일 동래군의 폐군으로 경상남도 양산군에 속하였다가, 1985년 10월 1일 장안면이 장안읍으로 승격하며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읍 기룡리 기룡 마을이 되었다. 1995년 3월 1일 부산광역시에 편입되며 기장군이 복군됨에 따라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 기룡 마을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 환경]
기룡 마을은 장안천의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장안 마을의 아래쪽에 있다. 서쪽에는 삼각산, 남쪽에는 방모산, 북쪽에는 양지사 소류지가 있으며, 남쪽에는 박천이 동류하여 장안천과 합류하며 남으로 흐른다. 마을 북쪽에 후아평, 남쪽에 짚안들이라는 들이 펼쳐져 있고, 동쪽에는 진배미[긴배미]라는 논이 있다.
[현황]
기룡 마을 동쪽으로 부산 울산 고속 도로와 기장 대로가 지나간다. 마을 입구 ‘신기솔배기’[소나무 숲으로 기룡리 509-3번지]에 1813년(순조 13)에 세워진 기장 현감 송재우(宋載遇)의 송덕비 등 비석 5기가 세워져 있으며, 기룡리 동편 제방 옆에는 1800년에 둑을 축조하고 23년 후 건립된 ‘장안제비(長安隄碑)’가 있다. 마을의 남쪽 10m 지점의 밭 가운데 고래 고씨 할배 당산과 골매기 할매 당산[기룡리 768-1번지]이 있어, 현재도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 자정경 제를 올린다. 최근에는 기룡리 고래 일원에 도예촌이 건립되고 대선 소주 공장[기룡리 22-4번지]도 들어와 급속한 변화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