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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9147
한자 昌新洞一-二街
영어의미역 Changsin-dong 1-ga, 2-ga
이칭/별칭 창신동,창신동 1가,창신동 2가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창신동 1가|창신동 2가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홍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동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부산부 행정 1·2·3정목
변천 시기/일시 1947년 - 부산부 행정 1·2·3정목에서 부산부 창신동 1·2·3가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49년 - 부산부 창신동 1·2·3가에서 부산시 창신동 1·2·3가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51년 - 부산시 창신동 1·2·3가에서 부산시 중부출장소 창신동 1·2·3가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57년 - 부산시 중부출장소 창신동 1·2·3가에서 부산시 중구 창신동 1·2·3가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부산시 중구 창신동 1·2·3가에서 부산직할시 중구 창신동 1·2·3가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부산직할시 중구 창신동 1·2·3가에서 부산광역시 중구 창신동 1·2가로 개편
법정동 창신동 1·2가 - 부산광역시 중구 창신동 1·2가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창신동(昌新洞)은 1876년(고종 13) 일본인 전관 거류지가 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2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다. 이후 부산의 도심으로 성장하며 상업 및 업무 기능이 집중함에 따라 인구 감소가 발생하여 행정 구역이 통폐합되며 행정동인 광복동에 속하게 되었다.

[명칭 유래]

창신동은 1947년 일제식 동명 개칭 때 붙여진 이름인데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형성 및 변천]

1678년(숙종 4) 이전된 초량 왜관의 동관이 있던 장소로,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면서 초량 왜관이 폐쇄되고 일본인 전관 거류지가 되었다. 1914년 부산부 행정(幸町)이었고, 1947년 해방 후 일본식 동명을 한국식 동명으로 변경하며 행정(幸町) 1·2·3정목이 창신동 1·2·3가로 개칭되었다. 1949년 부제가 폐지되어 부산시로 승격하였고, 1951년 중부출장소가 설치되어 그 관할이 되었다. 1957년 구제 실시에 따라 중부출장소가 승격하여 중구가 되었다. 1963년 부산시가 부산직할시로 승격하였으며,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며 부산광역시 중구 창신동 1·2가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 환경]

동쪽은 대청동·동광동, 남쪽은 중앙동, 서쪽은 남포동, 북쪽은 부평동·보수동과 접한다. 동쪽에 용두산이 있다. 남쪽으로 중앙동을 지나 남해안과 인접해 있다.

[현황]

중앙동과 접하여 중앙 대로와 부산 도시 철도 1호선이 지나며, 남포역이 있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관내에 부산에서 가장 큰 만물 시장인 국제 시장이 있다. 이곳은 1884년(고종 21) 부산전신국을 개설하여 업무를 시작한 곳으로 광복 이후 일본인들이 철수한 자리에 6·25 전쟁을 거치면서 지금의 국제 시장 공터에 ‘돗떼기 시장[일본어로 경매를 뜻하는 돗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고, 물건을 도거리, 곧 따로따로 나누지 않고 한꺼번에 떼어 흥정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함]’이라는 노점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국제 시장에는 해방 이후 일제가 철수하면서 이른바 전시 통제 물자가 쏟아져 나왔고, 일본인에게 압수한 짐 보따리가 경매를 통해 무더기로 거래되기도 하였다. 이후 6·25 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미군에서 흘러나온 군수 물자와 온갖 밀수입 상품을 팔았다고 한다. 현재는 수입 물품은 물론 보세 물품을 파는 시장으로 부산 시민뿐 아니라 해외 관광객까지 찾아드는 중요한 관광 코스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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