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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특정한 성씨가 모여서 대대로 세거한 지역. 세거지는 집성촌, 동족 부락, 동족 촌락과 거의 유사한 의미로 사용된다. 집성촌은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란 의미이며, 특정 성씨가 마을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지역성을 형성하는 데 크게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특정 성씨가 마을의 이름이 되는 경우도 있다. 동족 부락(同族部落), 동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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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성씨 세거지. 영도의 옛 이름은 절영도로서 일찍이 주변 바다는 청어, 오징어, 멸치 등의 청정 어장이었다. 이러한 자연 조건으로 일찍부터 사람들은 들어와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동삼동 조개더미는 이러한 정황을 가장 잘 반영하는 유적지이다. 또 후삼국 시대부터 이 지역에 국마를 기르는 목마장이 있어서 마정(馬政) 조직이 주둔하였으며,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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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에 있는 성씨 세거지. 원도심인 중구 지역은 1678년(숙종 4)까지만 해도 사람이 거의 살지 않은 초지였으나 1678년 이후 1876년(고종 13)까지 초량 왜관이 설치, 운영되면서 부산 안에 있는 일본인 마을로 기능하였다. 1876년 개항으로 이 일대는 일본인 전관 거류 지역으로 조선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은, 일본인의 치외 법권이 적용되는 곳이 되었다...
강서구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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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성씨 세거지. 강서구 지역은 대부분 낙동강 하구에 형성된 삼각주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구의 동쪽을 흐르는 낙동강은 크게 낙동강 본류와 서낙동강으로 구분된다. 원래 커다란 유로가 2개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농지 개량 사업의 일환으로 이곳 낙동강 본류의 우안에 제방을 쌓고 대저 수문과 녹산 수문을 설치하면서 서낙동강이 지류가 되었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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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봉림 마을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 남평 문씨(南平文氏) 대동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신해보[1732년 발간]에 의하면, 남평 문씨 시조인 문다성(文多省)은 통일 신라 말에 태어나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개국 공신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다성의 아들 문탁(文倬)이 문하시랑 찬성사 상주국 태사 태부(門下侍郞贊成事上柱國太師太傅)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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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송산 마을에 있는 분성 배씨 세거지. 배씨(裵氏)는 신라 6부 촌장 중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 지타(祗陀)를 원조로 하였으나 고증할 자료가 실전되어 고려 개국 공신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분성 배씨(盆城裵氏) 시조 배원룡(裵元龍)은 고려 개국 1등공신인 배현경의 4세손인 가락군(駕洛君) 배사혁(裵斯革)의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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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김해 김씨(金海金氏) 도총관(都摠管) 경신파(敬臣派)는 김수로왕의 후손으로 고려 때 도총관(都摠管)을 지낸 김경신(金敬臣)을 중조(中祖)로 모시는 계파이다. 이 집안은 고려 때 광정대부 첨의평리 상호군 영부사(匡靖大夫僉議評理上護軍領府事)를 지낸 2세 김원현(金元鉉)을 비롯하여 4세 축은(築隱) 김방려(金方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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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죽동 마을에 있는 분성 배씨 세거지. 배씨(裵氏)는 신라 6부 촌장 중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 지타(祗陀)를 원조로 하였으나 고증할 자료가 전하지 않아 고려 개국 공신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분성 배씨(盆城裵氏)의 시조 배원룡(裵元龍)은 배현경의 4세손인 가락군(駕洛君) 배사혁(裵斯革)의 큰아들이며, 공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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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죽림 마을에 있는 분성 배씨 세거지. 배씨(裵氏)는 신라 6부 촌장 중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 지타(祗陀)를 원조로 하였으나 고증할 자료가 전하지 않아 고려 개국 공신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분성 배씨(盆城裵氏)의 시조 배원룡(裵元龍)은 배현경의 4세손인 가락군(駕洛君) 배사혁(裵斯革)의 큰아들이며, 공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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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 북정 마을에 있는 단양 우씨 세거지. 우씨(禹氏)는 중국에서 생긴 성씨로,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후손이라 하지만 문헌이 전하지 않아 그 선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우현(禹玄)이 고려 전기 중국에서 건너와 단양(丹陽)에 정착하였으며, 그 후 우현의 l0세손 우현보(禹玄寶)가 단양 부원군에 봉하여져 우현을 득관조(得貫祖)로 하고 본관을 단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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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 남평 문씨(南平文氏)의 대동보(大同譜)로 가장 오래된 신해보[1732, 영조 3]에 의하면, 남평 문씨의 시조인 문다성(文多省)은 통일 신라 말에 태어나 왕건(王建)을 도와 개국 공신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다성의 아들 문탁(文倬)이 문하시랑(門下侍郞) 찬성사(贊成事) 상주국(上柱國) 태사(太師) 태부(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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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 제도 마을에 있는 거제 반씨 세거지. 반씨(潘氏)는 중국에서 생긴 성씨로, 『조선 씨족 통보(朝鮮氏族統譜)』에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여섯 번째 아들인 반계손(潘繼孫)이 반(潘) 땅에 봉해지고 식읍을 하사받아 반씨 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반씨 대동보(潘氏大同譜)』에 따르면, 시조 반부(潘阜)는 반계손의 9세손으로 고려 원종(元宗) 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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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던 경주 최씨 세거지. 경주 최씨(慶州崔氏)는 신라 6부 촌장 중 돌산고허촌장인 소벌도리(蘇伐都利)의 후손으로 800여 년을 이어 오다가 신라 말 유학자인 문창후(文昌候)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을 중시조로 하여 고려 시대에 명문 거족으로 이름을 떨쳤다.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정착한 계통은 정랑공파로, 파조(派祖) 최호(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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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구랑 마을에 있던 동래 정씨 세거지.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신라의 6부 촌장 가운데 자산진부촌장 지백호(智白虎)의 후손이다. 시조는 신라 때 안일 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으로 전해지나 문헌 기록이 없어 고려 때 보윤 호장(甫尹戶長)을 지낸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하고 그 후 안일 호장을 지낸 정문도(鄭文道)를 중시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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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는 남양 홍씨 세거지. 610년경 출생으로 추정되는 홍천하(洪天下)는 643년에 고구려 보장왕의 주청에 따라 당 팔학사(八學士)의 수장으로 고구려에 파견되어 당성(唐城)[남양(南陽)의 옛 이름]에 정착하였다. 645년 신라와 당나라 전쟁으로 지리산 덕산촌(德山村)으로 피난하니 신라에서 덕산 촌주(德山村主)로 봉하여 머물게 하였다. 홍천하가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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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는 경주 이씨 세거지. 경주 이씨(慶州李氏)는 신라 6부 양산촌(楊山村) 표암공(瓢巖公) 알평(謁平)을 비조로 삼고, 신라 말 진골 출신 알평의 36세손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로 한다. 이거명을 1세조로 한 경주 이씨는 그로부터 17세손에서 8개의 큰 파로 갈라졌는데, 녹산동 마음 마을 경주 이씨는 그중 고려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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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는 밀양 손씨 세거지. 손씨(孫氏)는 신라의 개국 공신인 6부 촌장 중에 대수촌장 구례마(俱禮馬)를 득성 시조로 한다. 밀양 손씨(密陽孫氏)는 구례마의 후손인 문효공 태자사 손순(孫順)을 시조로 하는데, 손순은 월성군 진천읍 모량리 출신으로 효행이 지극하여 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때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월성군 손순의 손자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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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는 밀양 박씨 세거지. 신라 경명왕의 첫째 아들 박언침(朴彦沈)이 밀성[밀양(密陽)] 대군에 봉해졌고,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본관을 밀양으로 하였다. 밀양 박씨(密陽朴氏)에서 10여 개의 본관으로 나누어지고, 밀양 박씨 내에서도 여러 개로 분파되었다. 강서구 녹산동 방근 마을에 입향한 파는 규정공파(糾正公派)[파조 박현(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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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분절 마을에 있던 창녕 조씨 세거지. 창녕 조씨(昌寧曺氏)의 시조 조계룡(曺繼龍)은 신라 진평왕의 사위이다. 조계룡의 어머니는 한림학사(翰林學士) 이광옥(李光玉)의 딸 이예향(李禮香)으로 창녕현(昌寧縣) 고암촌(鼓岩村)에서 태어났다. 이예향이 자라서 혼기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뱃속에 병이 생겨 화왕산 용지(龍池)에 가서 목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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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분절 마을에 있던 함안 조씨 세거지. 함안 조씨(咸安趙氏) 시조인 조정(趙鼎)은 당나라 사람으로 두 동생 조부(趙釜)와 조당(趙鐺)을 데리고 절강성(浙江省) 사람인 장길(張吉)과 함께 고려에 귀화하였다. 이후 왕건(王建)을 도와 고창성에서 견훤(甄萱)을 대파하고 공을 세워 개국 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으로 대장군 도원수에 올랐다.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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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던 남원 양씨 세거지. 남원 양씨(南原梁氏)의 시조 양을나(良乙那)는 제주도에 탐라국(耽羅國)을 세웠다고 전한다. 양씨는 모두 제주 양씨(濟州梁氏)에서 분관되었는데, 양을나의 후손 양탕(良宕)이 광순사(廣巡使)로 신라에 들어오자 559년 진흥왕이 벼슬을 내리고 ‘양(良)’을 ‘양(梁)’으로 고치게 하였다. 이후 757년(경덕왕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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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는 밀양 박씨 세거지. 박씨(朴氏)의 세계(世系)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증손인 신라 제5대 파사왕과 제7대 일성왕에서 갈라졌는데, 파사왕계는 뒤에 영해(寧海)·면천(沔川)·강릉(江陵) 등으로 분관하였고, 비안(比安)·우봉(牛峰)·이산(尼山)·해주(海州) 등으로도 갈라져 나왔다. 한편 일성왕계는 25세인 신라 제54대 경명왕과 제55대 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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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산양 마을에 있는 분성 배씨 세거지. 배씨(裵氏)는 신라 6부 촌장 중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 지타(祗陀)를 원조로 하였으나 고증할 자료가 없어 고려 개국 공신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분성 배씨(盆城裵氏)의 시조 배원룡(裵元龍)은 배현경의 4세손인 가락군(駕洛君) 배사혁(裵斯革)의 큰아들로 공민왕 때 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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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는 분성 배씨 세거지. 배씨(裵氏)는 신라 6부 촌장 중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 지타(祗陀)를 원조로 하였으나 고증할 자료가 전하지 않아 고려 개국 공신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분성 배씨(盆城裵氏)의 시조 배원룡(裵元龍)은 배현경의 4세손인 가락군(駕洛君) 배사혁(裵斯革)의 큰아들로 공민왕 때 병부 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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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신호 마을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김수로왕이 즉위 7년에 아유타국[인도 중부 지방의 고대 국가]의 공주인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이하여 10남 2녀를 낳았는데 맏아들은 김씨로 왕통을 잇고 두 아들은 왕비의 간곡한 요청으로 왕비의 성인 허씨(許氏)[태인 허씨]를 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일곱 아들은 불가에 귀화하여 하동 7불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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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는 영월 엄씨 세거지. 시조 엄임의(嚴林義)는 당나라 사람으로 신라 경덕왕 때 당나라 현종의 파락사(波樂使)로 영월 신씨(寧越辛氏)의 시조인 신시랑(辛侍郞)과 함께 우리나라에 왔다고 한다. 그러나 본국인 당나라에 정변이 일어나자 지금의 영월인 내성군에 안주하여 우리나라 엄씨의 시원이 되었다. 고려 때 엄임의를 내성군(奈城君)에 추봉하고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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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지사 마을에 있던 분성 배씨 세거지. 배씨(裵氏)는 신라 6부 촌장 중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 지타(祗陀)를 원조로 하였으나 고증할 자료가 전하지 않아 고려 개국 공신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분성 배씨(盆城裵氏)의 시조 배원룡(裵元龍)은 배현경의 4세손인 가락군(駕洛君) 배사혁(裵斯革)의 큰아들이며, 공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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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지사 마을에 있는 평산 신씨 세거지. 평산 신씨(平山申氏)는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를 개국한 신숭겸(申崇謙)을 시조로 하며, 태조(太祖)가 내려준 본관과 성씨이다. 장절공(壯節公) 신숭겸의 공으로 그 아들 2세 신보장(申甫藏)이 정2품 원윤을 받고, 3세 신홍상(申弘尙)은 삼한 벽상 공신 개국공 성제자가 되었다. 4세 신경(申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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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탑동 마을에 있던 분성 배씨 세거지. 배씨(裵氏)는 신라 6부 촌장 중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 지타(祗陀)를 원조로 하였으나 고증할 자료가 없어 고려 개국 공신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분성 배씨(盆城裵氏)의 시조 배원룡(裵元龍)은 배현경의 4세손인 가락군(駕洛君) 배사혁(裵斯革)의 큰아들로 공민왕 때 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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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는 파평 윤씨 세거지. 파평 윤씨(坡平尹氏)의 시조는 윤신달(尹莘達)이다. 윤신달은 고려 태조인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삼한 벽상 공신(三韓壁上功臣)에 올랐다. 『조선 씨족 통보(朝鮮氏族統譜)』와 『용연 보감(龍淵寶鑑)』 등의 문헌에 따르면, 윤신달은 파주 파평산 기슭에 있는 용연지라는 연못 가운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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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등구 마을에 있는 여흥 민씨 세거지. 부산의 구포 대교를 건너 공항로를 타고 김해 공항 방향으로 3㎞쯤 가면 나오는 강서구 대저동 등구 마을에는, 대저동에서는 유일하다고 알려진 여흥 민씨(驪興閔氏) 세거지가 있다. 등구 마을의 민씨는 여흥 민씨 12세손 유수공(留守公) 민심언(閔審言)을 중시조로 하는 일파이다. 마을 형성 초기에는 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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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에 있는 밀양 박씨 세거지. 박씨(朴氏)의 세계(世系)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증손인 신라 제5대 파사왕(婆娑王)과 제7대 일성왕(逸聖王)에서 갈라졌는데, 파사왕 계보는 뒤에 영해·면천·강릉 등으로 분관하였고, 비안·우봉(牛峰)·이산(尼山)·해주(海州) 등으로도 갈라져 나왔다. 한편 일성왕 계보는 25세인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과 제5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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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상방 마을에 있는 김해 허씨 세거지. 김해 허씨(金海許氏)는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이 시조(始祖)이다. 허 왕후의 두 아들로 하여금 허씨(許氏)의 성을 계승하게 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세계(世系)가 이어지지 않아 고려 시대 중엽 후손들이 각기 사는 곳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김해(金海), 하양(河陽), 태인(泰仁), 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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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평강 마을에 있는 진주 강씨 세거지. 우리나라 강씨(姜氏)는 고구려 때 도원수를 지낸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지만 이후 통일 신라와 고려 중엽까지 문헌이 실전되어 그 계보를 밝힐 수 없다. 이에 따라 시조 강이식의 원손을 각각 중시조로 하여 박사공파, 소감공파, 시중공파, 은열공파, 인헌공파로 구분한다. 대저동 평강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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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 중신 마을에 있던 남평 문씨 세거지. 남평 문씨(南平文氏)의 대동보(大同譜)로 가장 오래된 신해보[1732년, 영조 3]에 의하면, 남평 문씨의 시조인 문다성(文多省)은 통일 신라 말에 태어나 왕건(王建)을 도와 개국 공신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다성의 아들 문탁(文倬)이 문하시랑(門下侍郞) 찬성사(贊成事) 상주국(上柱國) 태사(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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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에 있는 경산 전씨 세거지. 경산 전씨(慶山全氏)의 시조는 백제의 개국 공신이자 전국 전씨(全氏)들의 도시조(都始祖)인 전섭(全攝)의 27세손 전영령(全永齡)이다. 전영령은 고려 신종(神宗) 때 신호위 대장군(神號衛大將軍)으로 공을 세워 옥산군(玉山君)에 봉해졌다. 옥산(玉山)은 경산(慶山)의 옛 지명이다. 그 뒤 후손들이 전영령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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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 천성 마을과 대항 마을에 있는 신안 주씨 세거지. 주씨(朱氏)의 본관은 여럿 있지만 모두 신안 주씨(新安朱氏) 분파로서 능성파, 웅천파, 전주파로 분류한다. 시조는 송나라 신안현 사람인 주잠(朱潛)으로, 대성리학자인 주문공(朱文公) 주희(朱熹)의 증손자이다. 주씨의 원류는 중국 전욱제(顓顼帝)[BC 2999~BC 1000?)로부터 시작하여 32...
금정구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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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있는 성씨 세거지. 금정구는 북쪽에 계명봉, 서쪽에 금정산, 동쪽에 공덕산·개좌산을 잇는 능선이 구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 남쪽으로 열린 분지 지형을 이룬다. 울산 구조선에 위치한 두구동-동래까지 이어지는 평지는 주택지와 도로로 이용되고, 동쪽에 수영강[동천] 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다. 상류는 주로 논밭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하류는 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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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에 있는 은진 송씨 세거지. 구서동은 조선 시대에 구세리(仇世里)로 불렸다. 부산 동래 고지도를 비롯한 여러 고지도에 지명이 수록되어 있다. 구세(仇世)는 ‘구세동거(仇世同居)’에서 따온 말로 중국 당나라의 장공예(張公藝) 9대가 한 집안에서 살았다는 고사에서 집안이 화목한 것을 이르는데, 이곳이 바로 그러한 지역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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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 구서 마을에 있는 동래 정씨 세거지.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안일 호장이던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보윤 호장(甫尹戶長)을 지냈던 정지원(鄭之遠)을 중시조로 기세(起世)하고 있다. 3세 정목(鄭穆)이 문과를 거쳐 상서 좌복사(尙書左僕射)에 오르고, 그의 네 아들이 모두 문과에 오름으로써 명족이 되기 시작하였다. 고려조에 이미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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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 구서 마을에 있었던 죽산 박씨 세거지. 죽산 박씨(竹山朴氏)의 시조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이며, 신라 경명왕(景明王)의 넷째 아들인 죽성 대군(竹城大君) 박언립(朴彦立)의 아들 박기오(朴寄悟)를 중시조로 한다. 고려 태조(太祖) 때 삼한 벽상 공신 태보 삼중대광(三韓壁上功臣太保三重大匡)에 올라 죽주백에 봉해지고 식읍으로 죽산(竹山)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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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사동 사천 마을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 남평 문씨(南平文氏) 시조는 삼한 벽상 공신 문다성(文多省)이다. 문다성은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지고 무성(武成)의 시호를 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관향을 남평으로 하였다. 남평 문씨 분파는 충혜공파(忠惠公派), 헌납공파, 순질공파, 의안공파(毅安公派), 시중공파, 성숙공파, 남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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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에 있는 해주 오씨 세거지. 1410년 오선경(吳先敬)이 우리나라 최초로 만든 『해주 오씨 족도(海州吳氏族圖)』에 따르면, 해주 오씨(海州吳氏)의 시조는 고려조 군기감을 지낸 오인유(吳仁裕)라고 한다. 세보 고증 자료를 보면 오인유는 지절과 덕망, 학식을 고루 갖춘 송나라의 학사로 우리나라에 와 해주에 살았다고 한다. 오인유는 시중 이총섬(李寵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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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에 있는 전주 이씨 세거지. 전주 이씨(全州李氏)의 시조 이한(李翰)은 신라 문성왕(文聖王) 때 사공(司空) 벼슬을 지냈으며, 그의 5세손 이경휴(李競休)는 고려조에서 사공을 지냈다. 17세손 이안사(李安社)[목조(穆祖)]는 대대로 전주에서 살아온 호족이었는데, 당시 전주에 새로 부임해 온 수령의 탐학과 방만을 규탄하니, 수령이 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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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에 있는 강릉 김씨 세거지. 남산동(南山洞)이란 지명은 이곳의 남산(南山)[165m]에서 비롯되었다. 남산은 금정산 동쪽 기슭 아래에 솟은 구릉성 산지이다. 지명은 이곳에 범어사의 사전(寺田)을 소작하는 농민들이 많았는데, 범어사에서 보면 이 지역이 남쪽 산등성이에 해당하므로 남산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다른 유래로는 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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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남산 마을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가락계 김씨의 종통으로 가락국의 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한다. 가락국이 멸망하고 11세손 김무력(金武力)이 신라에서 각간(角干)에 이르고, 그 아들 김서현(金舒玄)은 진흥왕의 아우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과 혼인하여 김유신(金庾信)을 낳았다. 김해 김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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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신암 마을에 있는 은진 송씨 세거지. 은진 송씨(恩津宋氏)는 고려 판원사부군 송대원(宋大原)이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은진 고을에 세거지를 정한 뒤, 그의 증손자인 집단공 송명의(宋明誼)가 회덕 땅에 은거하면서 후손이 번창하였다. 송대원의 5세손 쌍청당 송유(宋愉)는 송계사(宋繼祀)·송계중(宋繼中) 형제를 두었는데, 그중 송계사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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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에 있는 강릉 김씨 세거지. 노포(老圃)란 오래된 채전(菜田)[채소밭]을 뜻하며, 노포동은 농사를 잘 짓는 마을이란 말이다. 다른 유래로는 노포동 뒤쪽 당산이 쥐가 채소밭에 먹이를 구하러 내려오는 형상을 하고 있어서 ‘늙을 노’와 ‘채전 포’를 쓴 것이라고 한다. 노포동 강릉 김씨 세거지(老圃洞江陵金氏世居地)는 조선 초부터 금정구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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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 대룡 마을에 있는 남원 양씨 세거지. 양씨(梁氏)는 모두 탐라국[현 제주특별자치도] 삼성혈 설화의 양을라(良乙那)를 단일 시조로 하는 동계 혈족이다. 양을라는 태고에 제주도 한라산 북록 모흥혈(毛興穴)에서 태어났고, 그곳에 탁라국(乇羅國)을 개국하여 양씨의 연원을 이루었다. 374년 양탕(良宕)이 광순사(廣巡使)로 신라에 들어가자 내물왕이 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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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대두 마을에 있는 죽산 박씨 세거지. 죽산 박씨(竹山朴氏)의 시조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이며, 신라 경명왕(景明王)의 넷째 아들인 죽성 대군(竹城大君) 박언립(朴彦立)의 아들 박기오(朴寄悟)가 중시조다. 고려 태조(太祖) 때 삼한 벽상 공신 태보 삼중대광(三韓壁上功臣太保三重大匡)에 올라 죽주백에 봉해지고 식읍으로 죽산(竹山)을 하사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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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죽전 마을에 있는 진주 강씨 세거지. 진주 강씨(晋州姜氏)의 시조 강이식(姜以式)은 고구려 사람으로 병마 도원수(兵馬都元帥)를 지냈다. 영양왕 9년 병마 도원수로 5만 군사를 이끌고 요서(遼西) 지방에 출정하였고, 뒤이어 수(隋) 문제(文帝)의 30만 대군을 임유관(臨渝關)에서 크게 무찔렀다. 신라 말 대중대부 판내의령(大中大夫判內議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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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 472년(자비왕 5) 2월에 전라남도 남평현 동쪽 장자지(長者池)에 자색의 서기가 있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다. 신하가 가서 보니 큰 바위 위에 석함(石函)이 있고, 그 속에 아이가 있었는데 함 면에 ‘문(文)’ 자가 씌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비왕이 그 아이를 문씨로 사성(賜姓)하여 문다성(文多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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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서동 섯골 마을에 있는 청도 김씨 세거지. 청도 김씨(淸道金氏)의 시조 김지대(金之岱)는 신라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8세손이다. 김지대는 1217년(고종 4) 거란군의 침입과 몽골군의 북변 침입을 막는 데 공을 세웠고, 1241년(고종 28)에는 진주 촉석루를 창건하였다. 원종 즉위 초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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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서동 섯골 마을에 있는 경주 김씨 세거지. 경주 김씨(慶州金氏)는 대보공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를 총망라한 신라 김씨의 대종으로, 그 세계의 내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1세조를 달리하는 5개 파가 있다.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인 김명종(金鳴鐘)을 1세로 하는 영분공파와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을 1세로 하는 대안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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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서동 안골 마을에 있는 밀양 박씨 세거지. 밀양 박씨(密陽朴氏) 족보에는 신라 제34대 경명왕(景明王)의 아홉 아들 중 첫째인 밀성 대군 박언침(朴彦忱)이 시조라고 기록되어 있다. 경명왕은 아홉 아들 중 여덟 명을 계림 팔도[신라 전국]에 봉군하였는데, 밀양[옛 이름 밀성]은 박언침이 봉군 받은 고을 이름이다. 고려 문종 때 최충(崔沖)과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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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동에 있었던 강릉 김씨 세거지. 조선 전기 동래부(東萊府)의 대표적인 유력 성씨였던 강릉 김씨(江陵金氏) 충순공(忠順公) 동래파가 조선 문종(文宗) 이후 금정구 선동으로 옮겨 와 선동 강릉 김씨 세거지를 이루었다. 이후 충순공 산저파(山底派)와 여고파(余古派) 등으로 분파되었다. 선동(仙洞)이라는 지명은 지역에 선돌이 있어 유래되었다는 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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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동 상현 마을에 있는 파평 윤씨 세거지. 파평 윤씨(坡平尹氏)의 시조는 윤신달(尹莘達)이다. 918년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을 도와 삼한 통합에 공을 세워 통합 삼한 벽상 익찬 공신 삼중대광 태사(統合三韓壁上翊贊功臣三重大匡太師)에 이르렀고, 소양(昭襄)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5세손 윤관(尹瓘)이 고려 문종 때 문과에 올라 여진을 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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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회동동에 있는 여산송씨 세거지. 당나라에서 호부 상서를 지낸 송주은(宋柱殷)의 7세손인 송자영(宋自英)은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첫째 아들이 여산송씨(礪山宋氏)의 시조인 송유익(宋惟翼)이다. 송유익은 고려 숙종(肅宗) 때 진사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여산공에 봉하여졌으며, 은청광록대부 추밀원 부사(銀靑光祿大夫樞密院副使)에 추증되었다.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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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회동동 동대 마을에 있는 김해김씨 세거지. 김해김씨(金海金氏)는 가락계 김씨의 종통으로 가락국의 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한다. 가락국이 멸망하고 11세손 김무력(金武力)이 신라에서 각간(角干)에 이르고, 그 아들 김서현(金舒玄)은 진흥왕의 아우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과 혼인하여 김유신(金庾信)을 낳았다. 김해김씨의 파계...
기장군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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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있는 성씨 세거지. 기장군은 선사 시대부터의 오랜 거주 역사를 알 수 있다. 이 지역의 행정명도 갑화양곡현, 기장군, 기장현 등으로 개칭되면서 양주와 울산 등지에 속하였다가 1995년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또 기장군은 동쪽은 동해와 접하고 나머지 면은 모두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그 산지가 뻗어 내리면서 다양한 하천을 함께 이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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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에 있는 동래 정씨 세거지.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안일호장이던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보윤호장(甫尹戶長)을 지냈던 정지원(鄭之遠)을 중시조로 기세(起世)한다. 2세(二世)인 정문도(鄭文道)의 묘가 화지산 아래에 있다. 동래 정씨는 41계파로서, 기장 철마 지역 동래 정씨는 전서공파(典書公派), 참의공파, 동지공파로 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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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에 있는 함안 조씨 세거지. 고촌리의 옛 이름은 돋골이다. 고촌은 돋골의 본 마을, 오래된 마을이라는 의미로 보기도 한다. 또한 마을 앞 화산등(花山嶝)에 진달래꽃이 만발하면 마을 가득 꽃이 핀다고 하여 꽃촌이라 하였다가 후에 고촌으로 변하였다는 설도 있다. 함안 조씨(咸安趙氏)는 본래 후당(後唐) 사람이었으나 신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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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구칠리에 있는 동래 정씨 세거지.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안일호장이었던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보윤호장을 지냈던 정지원(鄭之遠)을 중시조로 기세(起世)하고 있다. 2세(二世)인 정문도(鄭文道)의 묘가 화지산 아래에 있다. 동래 정씨는 41계파로서, 철마에는 크게 전서공파, 참의공파, 동지공파가 있다. 철마면 구칠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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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구칠리에 있는 진주 강씨 세거지. 구칠리의 한자 표기를 처음에는 구칠리(仇柒理)라고 하였다가 뒤에 구칠리(九七里)라고 하였다. 이칭으로 구칠(九柒)·구칠(邱漆) 등을 사용한다. 이 다양한 표기에 대해 주민들은 이곳에 큰 옻나무 아홉 그루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구칠(九漆)이라 하였고, 그 옻나무가 언덕 위에 자생하고 있으므로 구칠(邱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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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 기룡 마을에 있는 월성 이씨 세거지. 장안읍 기룡리 기룡 마을의 기(奇)는 ‘키’, ‘크’의 차음 표기로 ‘크다’라는 의미이다. 장안천이 옛날에는 ‘건천(乾川)’, ‘용천(龍川)’이라 하여, 장안천변의 마을 이름은 대부분 용(龍) 자나 건(乾) 자가 사용되었다. 이에 기룡은 장안천변의 큰 마을이라는 뜻이다. 기룡리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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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기룡리(奇龍里)의 기(奇)는 ‘키’, ‘크’의 차음 표기로 ‘크다’라는 의미이다. 장안천이 옛날에는 ‘건천(乾川)’, ‘용천(龍川)’이라 하여, 장안천 변의 마을 이름은 대부분 용(龍) 자나 건(乾) 자가 사용되었다. 이에 기룡은 장안천 변의 큰 마을이라는 뜻이다.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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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에 있는 전주 이씨 세거지. 기룡리(奇龍里)의 기(奇)는 ‘키’, ‘크’의 차음 표기로 ‘크다’라는 의미이다. 장안천이 옛날에는 ‘건천(乾川)’, ‘용천(龍川)’이라 하여, 장안천변의 마을 이름은 대부분 용(龍) 자나 건(乾) 자가 사용되었다. 이에 기룡은 장안천변의 큰 마을이라는 뜻이다. 전주 이씨(全州李氏) 점동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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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에 있는 충주 지씨 세거지. 충주 지씨(忠州池氏)는 중국계 귀화 성씨로 본관은 충주가 단본이다. 시조는 고려 전기 중국에서 귀화한 지경(池鏡)이다. 지경은 중국 홍농(弘農) 사람으로, 송나라가 건국된 해인 960년(광종 11) 당시 태학사로서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정착, 벼슬이 금자광록대부 태보 평장사(金紫光祿大夫太保平章事)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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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 독점 마을에 있는 부여 백씨 세거지. 달산리에 있는 독점[陶店] 마을은 옹기를 파는 가게라는 뜻의 이름으로, 이곳에서 도공들이 옹기를 만들어 장사꾼들에게 팔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 그대로 읽으면 ‘도점’이 되지만 현재도 독점으로 부른다. 부여 백씨(夫餘白氏)는 780년(혜공왕 16) 당(唐)나라에서 신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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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에 있던 은진 송씨 세거지. 달산리는 마을 남쪽에 있는 달음산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은진 송씨(恩津宋氏) 시조는 송대원(宋大原)이다. 14세손 서호(西湖) 송시호(宋時豪) 대인 1637년(인조 15)경 지금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로 이주하였다. 송시호는 1604년(선조 37)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사한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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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덕선리 내덕 마을에 있는 경주 최씨 세거지. 덕선리 내덕 마을은 덕산의 안[內]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 기장 향토지에 의하면, 이곳 사람들은 산기슭의 둔덕을 둔덕뫼[산] 또는 둔덕밭으로 부르고, 마을은 앞글자인 둔자를 빼고 덕뫼나 덕밭 마을로 불렀다. 내덕 마을은 둔덕산 기슭에 있어 덕뫼, 한자로는 덕산(德山)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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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덕선리 선암 마을에 있는 김녕 김씨 세거지. 덕선리 선암 마을 남쪽 산지에 선암(仙岩)[신선 바위]이라는 바위가 있어 선암 마을이라고 불렀다. 김녕 김씨(金寧金氏)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이다. 의성(義城)에서 출생하여 고려 인종(仁宗) 때 묘청(妙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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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동백리에 있는 능성 구씨 세거지. 동백리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확인되는 동백포(冬栢浦)에 인접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하고, 이곳에 있던 동백정[옛날 송씨와 남씨가 정착하여 마을 입구에 세웠다는 정자]에서 비롯되었다고도 전한다. 능성 구씨(綾城具氏) 시조는 고려 때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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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두명리에 있는 울산 박씨 세거지. 두명리는 두전 마을과 부명 마을의 합성 지명이다. 두전 마을 옛 이름은 말밭이었다. ‘말’은 산마루로 솟음산을 뜻한다. 말밭은 솟음산 남쪽에 있는 밭이라는 뜻이 된다. 말을 차훈하여 끝 말(末)로 표기하다가 말 두(斗)로 풀이되는 오류로 전혀 다른 의미의 두전(斗田)이 되었다고 본다. 부명 마을 옛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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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매학리에 있는 동래 정씨 세거지. 매학리는 이곳에 있는 매곡(梅谷) 마을의 매(梅) 자와 상곡 마을 뒤에 솟아 있는 소학대(巢鶴臺)[백운산 자락의 매바위를 일컫는 것으로 기장 8경 중 하나]의 학(鶴) 자를 합성하여 붙인 지명이다.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안일호장이던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보윤 호장(甫尹戶長)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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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매학리에 있는 해평 김씨 세거지. 매학리는 이곳에 있는 매곡(梅谷) 마을의 매(梅) 자와 상곡 마을 뒤에 솟아 있는 소학대(巢鶴臺)[백운산 자락의 매바위를 일컫는 것으로 기장 8경 중 하나]의 학(鶴) 자를 합성하여 붙인 지명이다. 해평 김씨(海平金氏) 시조는 고려 전기 김훤술(金萱述)이다. 18세 김양설(金良說)[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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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에 있는 부여 백씨 세거지. 반룡은 장안천과 관련한 지명으로 보인다. 장안천은 옛날에 ‘건천(乾川)’, ‘용천(龍川)’이라 하였다. ‘건천’은 ‘마르내’이고 ‘용천’은 ‘미리내’이다. 모두 큰 내 또는 으뜸가는 내라는 뜻이다. 이에 마을이 장안천(龍川)의 굴곡 지점에 위치하여 ‘선회할 반(盤)’ 자와 ‘용 룡(龍)’ 자를 써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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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에 있는 울산 박씨 세거지. 반룡은 장안천(長安川)과 관련한 지명으로 보인다. 장안천은 옛날에 ‘건천(乾川)’, ‘용천(龍川)’이라 하였다. ‘건천’은 ‘마르내’이고 ‘용천’은 ‘미리내’이다. 모두 큰 내 또는 으뜸가는 내라는 뜻이다. 이에 마을이 장안천[龍川]의 굴곡 지점에 위치하여 ‘선회할 반(盤)’ 자와 ‘용 룡(龍)’ 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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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백길리에 있는 경주 최씨 세거지. 백길리의 옛 이름은 박길리(朴吉里)이다. 박(朴)은 박실(朴谷)·배미산·배산·바리산 등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밝다’의 옛말이고, 길(吉)은 ‘길 영(永)’의 뜻을 받아 ‘밝은 고개의 긴 안쪽’, 즉 양지의 안쪽 마을이란 의미가 된다고 본다. 실제 백길리는 와여리에서 웅천리로 통하는 긴 협곡의 안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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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백길리에 있는 우봉 김씨 세거지. 백길리의 옛 이름은 박길리(朴吉里)다. 박(朴)은 박실[朴谷]·배미산·배산·바리산 등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밝다’의 옛말이고, 길(吉)은 ‘길 영(永)’의 뜻을 받아 ‘밝은 고개의 긴 안쪽’, 즉 양지의 안쪽 마을이란 의미가 된다고 본다. 실제 백길리는 와여리에서 웅천리로 통하는 긴 협곡의 안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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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병산리에 있는 곡부 공씨 세거지. 공자(孔子)의 53세손 연성공 공완(孔浣)의 첫째 아들인 공사회(孔思晦)는 중국에서 세거를 계승하고, 둘째 아들인 공소(孔昭)는 원나라 순제(順帝)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로 노국 공주(魯國公主)를 수행하여 고려에 와서 귀화하였다. 공민왕은 공소를 문하시랑 평장사로 회원군에 봉하고 창원(昌原)을 본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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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후동 마을에 있는 청도 김씨 세거지.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후동(後洞) 마을은 기장 향교(機張鄕校) 뒤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후동은 우리말로 뒷동네 또는 뒷마을을 뜻한다. 임진왜란 직전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후동 마을에 적산공파 15세 김연석(金鍊碩)이 입향하였다. 이 가문의 인물로는 기장 향안(鄕案)에 등재된 통정대부 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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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 입석 마을에 있는 경주 배씨 세거지. 기장의 산천 경계를 노래한 「차성가(車城歌)」 하서면(下西面) 편에 “선여사 깊은 골에 고적을 찾아 드니, 은은한 석경(石磬) 소리 망일암(望日庵)이 분명하다.”라고 노래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여사를 창건하고 그 배의 돛대로서 선돌[입석]을 세웠다고 전한다. 선돌의 높이 3m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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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 입석 마을에 있는 순흥 안씨 세거지. 기장의 산천 경계를 노래한 「차성가(車城歌)」 하서면(下西面) 편에 “선여사 깊은 골에 고적을 찾아 드니, 은은한 석경(石磬) 소리 망일암(望日庵)이 분명하다.”라고 노래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여사를 창건하고 그 배의 돛대로서 선돌[입석]을 세웠다고 전한다. 선돌의 높이 3m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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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 마지 마을에 있는 월성 박씨 세거지. 오래전 연구리 마지 마을에 삼밭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마지(麻旨)의 마(麻)는 삼, 지(旨)는 재(峙)[고개]라는 뜻이다. 삼티가 삼지로 바뀌면서 마지가 된 것 같다. 한편, 말이 머무는 곳인 말 터[馬趾]가 있었는데 마지(麻旨)로 잘못 적혔다는 설도 있다. 월성 박씨(月城朴氏)는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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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에 있는 부여 백씨 세거지. 연구리는 이곳의 연봉리(蓮峰里) 마을과 구림리(龜林里) 마을이 합쳐지며 만들어진 합성 지명이다. 연봉리는 마을의 산이 연꽃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구림은 구칠재에서 따온 명칭이라고 한다. 또한 이곳 주민들은 옛날 연구리 본동에 연못[蓮池]이 있었고, 이곳에 거북이 살아서 유래된 지명이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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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에 있는 여산 송씨 세거지. 시조 송유익(宋惟翊·宋有翼)[일명 송수익(宋收益)]은 고려조의 진사로 상계(上系)와 자세한 사적은 알 수 없으나 벼슬하기를 꺼려해서 고향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송유익의 아들 송숙문(宋淑文)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오름으로써 그에게 은전이 내려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에 추증되었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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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에 있는 연안 차씨 세거지. 연구리는 이곳의 연봉리(蓮峰里) 마을과 구림리(龜林里) 마을이 합쳐지며 만들어진 합성 지명이다. 연봉리는 마을 산이 연꽃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며, 구림리는 구칠재에서 따온 명칭이라고 한다. 또한 이곳 주민들은 옛날 연구리 본동에 연못[蓮池]이 있었고, 이곳에 거북이 살았기 때문에 지명이 유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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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예림리 서편 마을에 있는 순흥 안씨 세거지. 예림리의 지명 유래는 명확하게 전하는 바가 없다. 먼저 좌천에서 큰 고개를 넘어 형성된 마을이라서 ‘큰 고개 너머에 있는 마을’이란 의미로 ‘남아 마을’[너머 마을을 뜻하는 사투리]로 부르다가 마을 규모가 커지며 남을 여(餘)에 마을 리(里)를 써서 여리(餘里)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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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 신리 마을에 있는 남원 양씨 세거지. 400여 년 전 기장군 장안 지역에는 반룡·기룡·장안·명례 등에 여러 방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신리방(新里坊)[행정 지명]은 가장 늦게, 새롭게 만들어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것이 그대로 마을 이름으로 남게 된 것이다. 오리 신리 마을 남원 양씨(南原梁氏) 입향조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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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에 있는 광산 김씨 세거지. 와여리의 옛 이름은 애몰이며, 이후 한자로 아여(阿餘)라 하였다. ‘애몰’의 ‘애’는 작다라는 뜻이며 ‘몰’은 산마루로, 작은 산마루로 해석할 수 있다. 한자명 아여[언덕 아(阿), 남을 여(餘)]는 현재도 쓰이는 지명인데, 이때 여(餘)는 건너갈 월(越)을 표기한 것으로 ‘언덕 너머’ 또는 ‘작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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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와여리의 옛 이름은 애몰이며, 이후 한자로 아여(阿餘)라 하였다. ‘애몰’의 ‘애’는 작다라는 뜻이며 ‘몰’은 산마루로, 작은 산마루로 해석할 수 있다. 한자명 아여[언덕 아(阿), 남을 여(餘)]는 현재도 쓰이는 지명인데, 이때 여(餘)는 건너갈 월(越)을 표기한 것으로 ‘언덕 너머’ 또는 ‘작은 산마루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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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에 있는 해주 오씨 세거지. 와여리 해주 오씨 세거지(鐵馬面瓦余里海州吳氏世居地)는 판관공파(判官公派)[오필경(吳弼卿), ?~1525]로 동래 충렬사 별전 24공신인 연파(蓮坡) 오홍(吳鴻)[1566~?]과 죽강(竹崗) 오춘수(吳春壽)[1573~1595]의 후손들이 사는 마을이다. 와여리(瓦余里)는 옛날에 ‘애몰’이라고 불렸다.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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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 가동 마을에 있는 밀양 박씨 세거지. 용수리는 1914년 덕전동과 산막동 및 평전동·가동을 통폐합하여 붙인 명칭으로, 정확한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다만 4개 마을이 모두 조룡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어 조룡산의 ‘용(龍)’ 자와 산부리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뫼부리 수(岫)’ 자를 합하여 붙인 이름으로 추정한다. 박씨(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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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에 있는 경주 김씨 세거지. 용수리는 1914년 덕전동과 산막동 및 평전동·가동을 통폐합하여 붙인 명칭으로, 정확한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다만 4개 마을이 모두 조룡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어 조룡산의 ‘용(龍)’ 자와 산부리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뫼부리 수(岫)’ 자를 합하여 붙인 이름으로 추정한다. 경주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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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 용수리는 1914년 덕전동과 산막동 및 평전동·가동을 통폐합하여 붙인 명칭으로, 정확한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다만 4개 마을이 모두 조룡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어 조룡산의 ‘용(龍)’ 자와 산부리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뫼부리 수(岫)’ 자를 합하여 붙인 이름으로 추정한다. 남평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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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에 있던 영월 신씨 세거지. 용수리는 1914년 덕전동과 산막동 및 평전동·가동을 통폐합하여 붙인 명칭으로, 정확한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다만 4개 마을이 모두 조룡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어 조룡산의 ‘용(龍)’ 자와 산부리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뫼부리 수(岫)’ 자를 합하여 붙인 이름으로 추정한다. 영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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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용천리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용천리(龍川里)의 옛 이름은 취정동(鷲井洞)이었다. 이는 이곳을 흐르는 취정천(鷲井川)[일광천 상류의 부분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용천은 취정천의 옛 이름인 미리내에서 비롯되었다. 미리내는 한문으로 표기하면 미리 용(龍), 내 천(川)이 되어 붙여진 지명이라고 전하는 바가 있고, 다음으로는 그 근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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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 웅천리의 옛 이름은 ‘웅계’이다. 우리말로 곰내라고도 한다. 이곳 주민들에 따르면 거문산 계곡에 곰이 살고 있어서 웅계(熊溪) 또는 곰내라 하였다가 웅천(熊川)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전한다. 남평 문씨(南平文氏)는 신라 말기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에서 고려 건국 공신으로 남평 개국백으로 봉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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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에 있는 동래 정씨 세거지. 웅천리의 옛 이름은 ‘웅계’이다. 우리말로 곰내라고도 한다. 이곳 주민들에 따르면 거문산 계곡에 곰이 살고 있어서 웅계(熊溪) 또는 곰내라 하였다가 웅천(熊川)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전한다. 동래 정씨(東萊鄭氏) 동지공파 파조의 후손인 정내정(鄭乃貞)이 1800년대 말 웅천리에 입향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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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에 있는 부여 백씨 세거지. 웅천리의 옛 이름은 ‘웅계’이다. 우리말로 곰내라고도 한다. 이곳 주민들에 따르면 거문산 계곡에 곰이 살고 있어서 웅계(熊溪) 또는 곰내라 하였다가 웅천(熊川)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전한다. 부여 백씨(夫餘白氏)는 780년 당(唐)나라에서 신라로 귀화한 백우경(白宇經)을 시조로 한다. 중시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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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에 있는 압해 정씨 세거지. 웅천리의 옛 이름은 ‘웅계’이다. 우리말로 곰내라고도 한다. 이곳 주민들에 따르면 거문산 계곡에 곰이 살고 있어서 웅계(熊溪) 또는 곰내라 하였다가 웅천(熊川)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전한다. 압해 정씨(押解丁氏)는 당나라 사람으로 선종(宣宗) 때 직언을 하다 두 아들과 함께 853년(문선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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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에 있는 울산 박씨 세거지. 옛 이름은 웅계(熊溪)이고 우리말로 곰내라고 한다. 웅천리 울산 박씨 세거지(熊川里蔚山朴氏世居地) 주민들은 거문산의 계곡에 곰이 살고 있어서 웅계 또는 곰내라 하였다가 웅천(熊川)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전한다. 울산 박씨(蔚山朴氏)의 시조는 박윤웅(朴允雄)이고, 20세 통덕랑 박세구(朴世龜)가 기장 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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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 상리 마을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원리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상리(上里)라 하였다. 원리 상리 마을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감무공파의 일파인 도총관공파(都摠管公派)의 55세 서강(西岡) 김계금(金係錦)을 파조로 하는 서강파(西岡派)이다. 김계금은 김해로 이거하였고 그 아들 김보문이 1400년대에 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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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에 있는 영천 이씨 세거지. 원리는 원동(院洞)이라고도 불렀다. 지명의 의미상 공해(官廳)의 하나인 원(院)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599년(선조 32) 이 마을을 경계로 울산군에 편입되면서 고을 간 경계 지점이 되면서 관원들의 숙박을 위한 원이 설치되는 관행으로 보아 이곳에 원이 설치되어 지명이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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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원리에 있는 인동 장씨 세거지. 원리(元里)는 원동(院洞)이라고도 불렀다. 지명의 의미상 공해(官廳)의 하나인 원(院)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599년(선조 32) 이 마을을 경계로 울산군에 편입되면서 고을 간 경계 지점이 되면서 관원들의 숙박을 위한 원이 설치되는 관행으로 보아 이곳에 원이 설치되어 지명이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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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월평리에 있는 청주 한씨 세거지. 월평리는 옛날에 아월(阿月)이라 부르다가 신월(新月)이라 불렀고, 이후 월평(月坪)이 되었다고 한다. 월이 들어간 지명은 이곳에 있는 반월성이라는 토성과 관련한 것으로 보인다. 아월은 아반월성(阿半月成)의 약칭으로 언덕 아(阿)에 반월형 모양의 성을 뜻하는 월(月)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또 반월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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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이곡리에 있는 단양 우씨 세거지. 이곡리의 옛 이름은 구실(龜室)이다. 구칠재[구실제라고도 함]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구실이 이실이 된 과정을 국어학계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구(龜)’는 ‘귀’로도 발음하는데, 구실(龜室)이 귀실로 읽혀지며 ‘귀 이(耳)’ 자를 써서 이실(耳室)로 기록되어 이곡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마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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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에 있는 경주 이씨 세거지. 이천리의 옛 이름은 ‘일개’이다. 개는 갯가를 뜻하는 포(浦)로, 개를 이었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 “이을포는 현에서 동쪽 6리에 있다. 어량(魚梁)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어량[강물의 물살을 막아 놓고 그곳에 통발을 놓아 고기를 잡는 시설]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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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임기리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임기리의 옛 이름은 숲터라고 하였다. 임기천 협곡이 이곳에 이르러 넓은 평지를 이루면서 숲이 우거진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입석 마을과 송정 마을이 번창해지면서 이 숲을 농경지로 개간하였다고 한다. 개간한 농경지를 숲터라고 불렀는데, 한자로 ‘수풀 임(林)’, ‘터 기(基)’ 자를 써서 임기(林基)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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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임기리에 있는 밀양 손씨 세거지. 임기리(林基里)의 옛 이름은 숲터였다. 임기천 협곡이 이곳에 이르러 넓은 평지를 이루면서 숲이 우거진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철마면 송정리 입석 마을과 송정 마을이 번창하면서 이 숲을 농경지로 개간하였다고 한다. 개간한 농경지를 숲터라고 불렀는데, 한자로 ‘수풀 임(林)’, ‘터 기(基)’ 자를 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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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 대곡 마을에 있는 은진 송씨 세거지. 장전리 대곡은 한실이라고도 불린다. 한실 마을의 한은 크다[大], 실은 골[谷]의 뜻이므로 대곡 마을이라고 불렀다. 은진 송씨(恩津宋氏)는 여산 송씨(礪山宋氏) 시조인 송유익(宋惟翊·宋有翼)[일명 송수익(宋收益)]의 아우 되는 송천익(宋天翊)의 후손으로, 고려에서 판원사를 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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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에 있는 인천 이씨 세거지. 장전리(長田里)의 지명은 이곳에 있던 장전(長田)에서 비롯되었다. 장전은 역장(驛長)의 공비(公費)를 충당하기 위해 지급된 토지로 속칭 장밭이라고도 하였다. 이런 연유로 장전리의 옛 지명도 장밭이었다. 기장에는 신명역과 아월역이 있었는데, 장전리에 있던 장전은 가까운 신명역장에게 지급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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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화전리 당곡 마을에 있는 경주 최씨 세거지. 당곡 마을의 옛 이름은 당골이었다. 당곡 마을에는 수호신에게 제를 올리는 당사(堂祠)와 당목(堂木)이 있었는데, 이에 당곡(堂谷) 또는 골메기집[당사를 이르는 명칭]이라고 하였다. 당골, 당미기, 당소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하며 최진립(崔震立)을 파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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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화전리 화전 마을에 있는 동래 정씨 세거지. 화전리 화전 마을 명칭은 주변 땅의 형태에서 유래하였다. 화전 마을이 있는 지역은 일광천 본류와 항새목[꼬지매기]에서 흘러내린 냇물이 삼각형의 퇴적 지형을 만드는데, 그 모양이 곶(串)[물가 쪽으로 돌출된 지형]처럼 생겼다고 하여 곶밭[串田]이라고 하였다. 이후 곶은 ‘꽃 화(花)’ 자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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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화전리 화전 마을에 있는 순흥 안씨 세거지. 순흥 안씨(順興安氏)는 고려에서 보승 별장을 지낸 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하고 안종검(安從儉)을 중시조로 한다. 본관은 시조 이하 대대로 순흥에 세거하였기 때문에 순흥으로 하였다. 세계는 시조의 아들인 안영유(安永儒)[1파], 안영린(安永麟)[2파], 안영화(安永和)[3파]를 파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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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횡계리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횡계리는 본래 홍계동(洪界洞)이라고 불렀다. 마을이 일광산 기슭의 넓은 골짜기 아래에 있어, 이 넓은 골짜기를 널골[넓은 골] 또는 큰 골로 부르며 ‘넓을 홍(洪)’, ‘골 동(洞)’ 자를 써서 홍골[洪洞]로 표기하였다. 점차 시간이 흐르며 계곡을 흐르는 작은 개울을 홍계(洪溪)라고 부르게 되며,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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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횡계리에 있는 부여 백씨 세거지. 횡계리는 본래 홍계동(洪界洞)이라 불렀다. 마을이 일광산 기슭 넓은 골짜기 아래에 있어, 이 넓은 골짜기를 널골[넓은 골] 또는 큰골로 부르며 ‘넓을 홍(洪)’, ‘골 동(洞)’ 자를 써서 홍동(洪洞)으로 표기하였다. 점차 시간이 흐르며 계곡을 흐르는 작은 개울을 홍계(洪溪)라고 부르게 되며, 작은 개...
남구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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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에 있는 성씨 세거지. 부산광역시 남구 지역은 삼한 시대 변한에 속하였으며, 삼국 시대에는 대증현에 속하였다. 통일 신라 시대에 동래군에 속하였다가 고려 시대에 양주군에 편입되었고, 조선 전기 동래진에 소속되었다.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는 남촌면 상단(上端)[숭정리·동부리·서부리·북문외리·남문외리·축산리·감포리·칠포리]과 하단(下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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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못골 마을에 있는 죽산 박씨 세거지. 죽산 박씨(竹山朴氏)의 시조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이며, 신라 경명왕(景明王)의 넷째 아들인 죽성 대군(竹城大君) 박언립(朴彦立)의 아들 박기오(朴寄悟)를 중시조로 한다. 고려 태조(太祖) 때 삼한 벽상 공신 태보 삼중대광(三韓壁上功臣太保三重大匡)에 올라 죽주백에 봉해지고 식읍으로 죽산(竹山)을 하사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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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 있는 개성 왕씨 세거지. 용호동은 조선 시대에 분개라고 불렀던 곳이다. 분개가 용호동으로 바뀐 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이곳 염전을 수탈하고 통감부에서 이곳에 ‘시험 제염 용호 출장소(試驗製鹽龍湖出張所)’를 설치한 때를 전후한 시기로, 인근 용당동 이름을 참고하여 큰 염전의 호수라는 뜻으로 이름 지었다. 1664년(현종 5) 왕대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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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 있는 김녕 김씨 세거지. 용호동은 조선 시대에 분개라고 불렀던 곳이다. 분개가 용호동으로 바뀐 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이곳 염전을 수탈하고 통감부에서 이곳에 ‘시험 제염 용호 출장소(試驗製鹽龍湖出張所)’를 설치한 때를 전후한 시기로, 인근 용당동 이름을 참고하여 큰 염전의 호수라는 뜻으로 이름 지었다. 용호동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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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 있던 담양 전씨 세거지. 용호동에는 작은 호수가 있었는데, 그 호수에 하늘에 오르지 못한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담양 전씨(潭陽田氏)의 용호동 입향조와 입향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담양 전씨 후손 가운데 동래 향교(東萊鄕校) 유계원(儒契員)으로 기록된 전제준(田齊畯)[1863년생, 자 자안(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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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 있던 밀양 박씨 세거지. 용호동은 조선 시대에 분개라고 불렀던 곳이다. 분개가 용호동으로 바뀐 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이곳 염전을 수탈하고 통감부에서 이곳에 ‘시험 제염 용호 출장소(試驗製鹽龍湖出張所)’를 설치한 때를 전후한 시기로, 인근 용당동 이름을 참고하여 큰 염전의 호수라는 뜻으로 이름 지었다. 이 호수에 하늘에 오르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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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 있는 파평 윤씨 세거지. 용호동은 조선 시대에 분개라고 불렀던 곳이다. 분개가 용호동으로 바뀐 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이곳 염전을 수탈하고 통감부에서 이곳에 ‘시험 제염 용호 출장소(試驗製鹽龍湖出張所)’를 설치한 때를 전후한 시기로, 인근 용당동 이름을 참고하여 큰 염전의 호수라는 뜻으로 이름 지었다. 이 호수에 하늘에 오르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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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 우암동에 있는 인동 장씨 세거지. 우암동 지역 포구 언덕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모양이 소와 같다고 하여 ‘소 우(牛)’에 ‘바위 암(岩)’ 자를 써서 우암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인동 장씨(仁同張氏) 우암 문중은 중리파로, 입향조 장승숙이 1900년경 현 남구 용당에서 우암동으로 이거하여 세거지를 형성하였다. 우암동 북동쪽...
해운대구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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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있는 성씨 세거지. 해운대구의 자연 마을은 농업과 어업을 주업으로 하는 마을로 구분된다. 먼저 전자는 석대천 유역과 수영강의 좌안, 춘천 유역 분지에 주로 입지하고 있다. 하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퇴적 지형이 형성되고 계류천 유역에 곡저 평야를 끼고 있어 마을 형성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다. 후자는 수영만과 송정 일대 해안에 입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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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에 있는 광주 이씨 세거지. 반송동은 본래 지경리로도 불렸다가 이후 명칭이 변경되었다. 지경리는 당시 기장현과 동래부의 경계를 이루는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보인다. 반송동은 지금의 운봉초등학교 앞에 수령이 200여 년 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반송 나무굴이라 칭하면서 비롯되었다. 광주 이씨(廣州李氏) 시조는 이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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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에 있는 남원 양씨 세거지. 남원 양씨(南原梁氏) 시조 양을나(良乙那)는 제주도에 탐라국을 세웠다고 전한다. 양씨는 모두 제주 양씨에서 분관했는데, 양을나의 후손 양탕(良宕)이 광순사로 신라로 들어오자 559년(진흥왕 20) 왕이 벼슬을 내리고 ‘양(良)’을 ‘양(梁)’으로 고치게 하였다. 이후 757년(경덕왕 16) 양우량(梁友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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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 운봉 마을에 있는 광주 김씨 세거지. 광주 김씨(廣州金氏)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다섯째 아들인 의성군 김석공의 7세손인 광주군(廣州君) 김녹광(金祿光)을 관조로 한다. 김녹광은 고려 중기 몽골군이 침입할 때 상장군으로 전공을 크게 세워 광주군으로 봉해졌고, 이후 후예들이 광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김녹광의 손자는 문하찬성사 김훤(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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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에 있는 동래 정씨 세거지.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본래 신라 6부촌의 진지촌장(珍支村長) 지백호(智白虎)의 후손이다. 『경신보(庚申譜)』 총록에 따르면 32년(신라 유리왕 3) 지백호가 정씨(鄭氏)로 사성(賜姓)한 후 경주를 본관으로 하다 뒤에 동래로 분적하였다고 한다. 시조 정회문(鄭會文)은 안일 호장(安逸戶長)을 지냈다. 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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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 삼어 마을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 남평 문씨(南平文氏) 시조는 삼한 벽상 공신 문다성(文多省)이다. 문다성은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지고 무성(武成)의 시호를 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관향을 남평으로 한다. 남평 문씨 분파는 충혜공파(忠惠公派), 헌납공파, 순질공파, 의안공파(毅安公派), 시중공파, 성숙공파, 남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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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 4동 삼어 마을에 있는 여산 송씨 세거지. 당나라에서 호부 상서를 지낸 송주은(宋柱殷)의 7세손인 송자영(宋自英)이 아들 셋을 두었는데, 그중 첫째 아들 송유익(宋惟翊)이 여산 송씨(礪山宋氏) 시조다. 송유익은 고려 숙종(肅宗) 때 진사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여산군에 봉하여졌으며, 은청광록대부 추밀원 부사(銀靑光祿大夫樞密院副使)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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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 1동 상리 마을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 반여동은 지형이 소반(小盤)[작은 밥상]처럼 동그랗다는 풍수설의 영향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상리 마을은 반여동의 자연 마을 중 가장 위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남평 문씨(南平文氏) 순평부원군파(順平府院君派) 문중위(文重緯)[19세]가 1600년 초반 경상남도 합천에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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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 1동 상리 마을에 있는 여산 송씨 세거지. 당나라에서 호부 상서를 지낸 송주은(宋柱殷)의 7세손인 송자영(宋自英)이 아들 셋을 두었는데, 그중 첫째 아들 송유익(宋惟翊)이 여산 송씨(礪山宋氏) 시조다. 송유익은 고려 숙종(肅宗) 때 진사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여산군에 봉하여졌으며, 은청광록대부 추밀원 부사(銀靑光祿大夫樞密院副使)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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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 1동 중리 마을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 반여동은 지형이 소반(小盤)[작은 밥상]처럼 동그랗다는 풍수설의 영향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1550년 남평 문씨(南平文氏) 문서이(文徐彛)[17세]가 현 동래구 명장동에서 반여동 중리 마을로 입향하여 남평 문씨 의안공파 반여 문중을 형성하였다. 반여동은 해운대구 서부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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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 1동에 있는 청도 김씨 세거지. 반여동은 지형이 소반(小盤)[작은 밥상]처럼 동그랗다는 풍수설의 영향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청도 김씨(淸道金氏)의 시조 김지대(金之岱)는 신라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8세손이다. 영헌공 김지대의 12세손으로 1500년경 연산군(燕山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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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석대동에 있는 영양 천씨 세거지. 영양 천씨의 시조인 천암(千巖)이 중국 서촉(西蜀) 종북산(終北山) 천고봉(千古峰) 만인암(萬仞巖)에서 태어났으므로 천(千)을 성씨로 하였다. 천만리(千萬里)의 증조 할아버지 천일하(千一河)가 노(魯)나라 영양 사람이어서 영양을 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한국에 영양 천씨의 뿌리를 내린 사람은 중시조인 천만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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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석대동에 있는 창원 구씨 세거지. 석대(石臺)란 지명은 일찍이 사용하여 왔으나 정확한 연원은 알 수 없다. 대(坮)는 대(臺)의 고어로, 지역 내에 지명처럼 돌로 쌓은 높은 곳이나 이에 준하는 넓은 반석(盤石) 등의 지형과 관련한 것으로 보이나 확인할 수는 없다. 석대동 앞으로 흐르는 석대천과 추마산 기슭 대리골에서 흘러온 하천이 석대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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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 송정 마을에 있는 광주 노씨 세거지. 광주 노씨(光州盧氏) 시조 노해(盧垓)는 도시조(都始祖) 노수(盧穗)의 첫째 아들로, 당나라에서 한림학사를 역임하고 신라로 와 광산백(光山伯)에 봉하여졌다. 후손들이 노해를 시조로 하고 광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그 후 계대가 실전되어 후손 중 고려 때 정승을 역임하고 광주군에 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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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가락계 김씨의 종통으로 가락국의 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한다. 후손들이 번창함에 따라 김수로왕의 13세손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하여 대강 148파로 분파되며, 그 가운데 김유신의 직계 종파는 고려 때의 51세손 김목경(金牧卿)을 증조로 하는 경파(京派)[일명 금령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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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가락계 김씨의 종통으로 가락국의 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한다. 가락국이 멸망하고 11세손 김무력(金武力)이 신라에서 각간(角干)에 이르고, 그 아들 김서현(金舒玄)은 진흥왕의 아우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과 혼인하여 김유신(金庾信)을 낳았다. 김해 김씨의 파계는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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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못안 마을에 있는 동래 정씨 세거지.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19세기 전반 재송 뒷골에서 우동 못안[지내리]으로 이주하여 세거한 가문이다. 동래부 동하면 우동 못골은 현 해운대도서관 자리이다. 동하면에 거주한 동래 정씨는 19세기 후반 이후 동래 향교와 서원 등에 출입하면서 동래 사족들과 교유하였다. 또한 경제적으로 매우 넉넉한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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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송동에 있는 압해 정씨 세거지. 압해 정씨(押海丁氏)의 시조는 대양군(大陽君) 정덕성(丁德盛)이다. 정덕성은 중국 당(唐)나라에서 대승상으로 있다가 853년(신라 문성왕 15) 나주 압해도(押海島)[현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면]로 망명하였다. 이에 정덕성의 무덤이 압해면에 있다. 이후 후손이 영광, 나주, 창원, 의성으로 분파하였다. 창원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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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송동 뒷골 마을에 있는 은진 송씨 세거지. 은진 송씨(恩津宋氏)는 고려 판원사부군 송대원(宋大原)이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은진 고을에 세거지를 정한 뒤, 그의 증손자인 집단공 송명의(宋明誼)가 회덕 땅에 은거하면서부터 후손이 번창하게 되었다. 송대원의 5세손 쌍청당 송유(宋愉)는 송계사(宋繼祀)·송계중(宋繼中) 형제를 두었는데, 그중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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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에 있는 김녕 김씨 세거지. 김녕 김씨(金寧金氏)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경주 김씨(慶州金氏) 시조 김알지(金閼智)의 39세손이며,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이다. 김시흥의 아버지는 동정공 김봉기(金鳳麒)의 넷째 아들로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났다. 의성(義城)에서 출생하여 고려 인종(仁宗)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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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좌동은 장산에서 흘러내리는 춘천의 왼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는 ‘왼 좌(左)’ 자를 썼으나 지금은 ‘도울 좌(佐)’ 자로 변경되었는데, 그 연유는 알 수 없다. 좌동 마을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삼현파(三賢派)로 입향조는 김치봉(金致鳳)[1576년생]이다. 그는 형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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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미포 마을에 있는 인동 장씨 세거지. 인동 장씨(仁同張氏) 시조는 고려 전기 삼중대광 신호위 상장군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이다. 그로부터 현재 40세까지 세계가 이어진다. 조선 시대에 들어 인동 장씨는 정승 1명, 왕비 1명, 문과 급제자 141명을 배출하였다. 중동 미포 마을은 미포(尾浦)에 자리하고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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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오산 마을에 있는 동래 정씨 세거지.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본래 신라 6부촌의 진지촌장(珍支村長) 지백호(智白虎)의 후손들이다. 『경신보(庚申譜)』 총록에 따르면 32년(유리왕 3) 지백호가 정씨(鄭氏)로 사성(賜姓)하여 경주를 본관으로 하다가 뒤에 동래로 분적하였다고 한다. 안일 호장이었던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보윤 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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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오산 마을에 있는 밀양 박씨 세거지. 밀양 박씨(密陽朴氏) 시조 박언침(朴彦枕)은 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 밀성 대군(密城大君)에 봉하여졌다. 후손들이 이에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밀양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8세손 박언부(朴彦孚)를 파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를 비롯하여 도평의사공파[8세 박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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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온천 마을에 있는 신안 주씨 세거지. 신안 주씨(新安朱氏) 시조는 중국 송(宋)나라 신안현 사람인 주잠(朱潛)으로, 고려 고종(高宗) 때 우리나라로 건너와 전라남도 나주(羅州)에 정착한 후 후손들이 계대를 이어 오고 있다. 주잠은 주자(朱子)의 증손자로 송나라 사직이 위태롭게 되자 아들 주여경(朱餘慶)을 데리고 바다를 건너 망명해 와...
사상구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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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에 있는 성씨 세거지. 사상구 지역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모라동 조개더미와 학장동 조개더미 흔적, 김해식 토기 파편 등이나 북구 금곡동 율리 조개더미와 알터 바위 등 낙동강 유역의 유적 및 유물들을 살펴볼 때 삼한 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부분 본관과 성을 가지게 된 것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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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에 있던 경주 최씨 세거지. 감전동(甘田洞)은 감동(甘東)과 서전(西田)을 합해 지은 이름이다. 감동은 감동도(甘東島) 혹은 감도(甘島)라 불렸던 낙동강 하구 모래톱 섬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고, 서전은 서쪽 낙동강변의 모래톱에 의한 펄이 있어 ‘서발’[서쪽 펄] 혹은 ‘새뻘’[새로 생긴 펄]이라 불렸다가 이후 이곳이 점차 논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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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에 있던 창원 황씨 세거지. 감전동은 감동(甘東)과 서전(西田)을 합하여 붙인 지명이다. 감동은 감동도(甘東島) 혹은 감도(甘島)라 불렸던 낙동강 하구 모래톱 섬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다. 서전은 서쪽 낙동강 변의 모래톱에 뻘이 있어 ‘서발[서쪽 뻘이란 의미]’ 혹은 ‘새뻘[새로 생긴 뻘이란 뜻]’이라 불렀고, 이후 이곳이 점차 논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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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에 있는 경주 이씨 세거지. 괘법동은 괘내리(掛乃里)와 창법리(昌法里)를 합치면서 형성된 합성 지명이다. 괘내리는 원래 마을 앞 나루터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가 동내였다. 냇물이 괴어 있는 동네라는 뜻에서 ‘괸내’라 부르던 것이 괘내가 되었다고 한다. 혹은 일찍이 사상 일대 중심 구실을 하여 깃대를 걸던 냇가 동네라고 하여 ‘걸 괘(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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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에 있는 창원 황씨 세거지. 사상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가문인 창원 황씨(昌原黃氏)는 각기 다른 문중이 이곳에 자리 잡은 것으로 나타난다. 사상 지역에 거주한 창원 황씨에 관한 기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회산 부원군(檜山府院君) 황상(黃裳)의 5세손 황복(黃福)의 여러 대 묘소가 사상 대천곡과 죽전곡에 있었으나, 15세기의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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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덕포동에 있는 창원 구씨 세거지. 덕포의 옛 이름은 ‘덕개’다. ‘덕(德)’은 언덕·두덕·부(阜)의 차자(借字)[한자의 뜻과는 관계없이 음이나 훈만을 빌려다 쓰는 글자]다. 즉 언덕개라는 말로, 언덕에 있는 포구를 뜻한다. 한편 이 일대가 큰 배가 닿을 수 있는 큰 포구여서 크다는 의미의 덕(德)을 붙여 덕포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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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에 있는 김녕 김씨 세거지. 나이 든 어른들에 의하면, 모라동(毛羅洞)의 ‘모라’를 ‘모란’으로 변음하여 불렀으며, 옛날에는 모라동의 뒷산 기슭에 모란[牧丹] 꽃이 많이 피어 동리 이름을 모란이라 불렀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한편 ‘모라’라는 말은 ‘마을’이라는 우리말의 고대어(古代語)라는 설도 있다. 모라동 김녕 김씨 세거지(毛羅洞金寧金氏世居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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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에 있던 달성 서씨 세거지. 달성 서씨(達成徐氏)는 사상의 구동계 향안에 5명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의 오래된 성씨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임진왜란 전후 이곳에 정착한 서씨들은 그 가계를 알 수 없고 후손들도 모두 이곳을 떠났다. 그 가운데 일제 강점기까지 그 흔적을 알 수 있는 것이 모라동 달성 서씨 집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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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에 있는 밀양 박씨 세거지. 나이 든 어른들에 의하면, 모라동(毛羅洞)의 ‘모라’를 ‘모란’으로 변음하여 불렀으며, 옛날에는 모라동의 뒷산 기슭에 모란[牧丹] 꽃이 많이 피어 동리 이름을 모란이라 불렀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한편 ‘모라’라는 말은 ‘마을’이라는 우리말의 고대어(古代語)라는 설도 있다. 모라동 밀양 박씨 가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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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삼락동에 있는 김녕 김씨 세거지. 부산광역시 사상구 삼락동(三樂洞)은 삼차수(三叉水)의 ‘삼’과 즐거울 ‘락(樂)’[삼차수의 물길을 보며 즐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합쳐진 이름이다. 낙동강 하류는 일찍부터 을숙도·명호도·대저도 등 삼각주가 발달하여 강물이 세 줄기로 나뉜다 하여 삼차수로 불렸는데, ‘삼락’은 소요저도가 낙동강 삼차수의 물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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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에 있는 경주 이씨 세거지. 주례동(周禮洞)의 지명은 농민들이 농번기에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하여 마을이나 마을 단위로 만든 조직인 두레를 한자로 옮기면서 생겼다고 한다. 또 주례의 지형이 동평현에서 서쪽으로 돌아 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두루’라는 어원과 낙동강 변의 변두리로 ‘두리’라는 말의 토속어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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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에 있는 경주 최씨 세거지. 주례동은 조선 시대에는 주례리(周禮里)로, 『동래부지(東萊府志)』[1740]에 사천면 상단 관내에 위치하며, 관문에서 21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04년 발간된 『경상남도 동래부 가호안』에는 주례동에 총 61가구가 있었는데, 이 중 경주 최씨 6가구가 거주한 것으로 확인된다. 주례동 경주 최씨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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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 골새 마을에 있는 여산 송씨 세거지. 주례동 골새 마을은 골짜기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골새란 ‘골짜기 사이’의 준말이다. 여산 송씨(礪山宋氏) 동래 입향조는 송극명(宋克明)[8세]이다. 그는 단종(端宗)의 비인 정순 왕후(定順王后) 숙부로 수양 대군(首陽大君)의 왕위 찬탈에 반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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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에 있던 남평 문씨 세거지. 남평 문씨(南平文氏) 충선군 문익점(文益漸)이 거주하였던 곳이 강성[단성 혹은 산청]이어서 사후에 강성군(江城君)으로 봉하여졌다. 이후 그 후손들이 강성을 본관으로 하는 강성 문씨 충선군파, 혹은 남평 문씨 충선군파로 불리기도 하였다. 원래 남평 문씨 일족이었기 때문이다. 남평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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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에 있던 밀양 박씨 세거지. 주례(周禮)의 지명은 공동으로 농사를 짓던 두레를 한자로 옮기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또 주례의 지형이 동평현에서 서쪽으로 돌아 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두루’라는 어원과 낙동강변의 변두리로 ‘두리’라는 말의 토속어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주례동 밀양 박씨 세거지(周禮洞密陽朴氏世居地)는 사상구 학장동 ‘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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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에 있는 분성 배씨 세거지. 주례(周禮)의 지명은 공동으로 농사를 짓던 두레를 한자로 옮기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또 주례의 지형이 동평현에서 서쪽으로 돌아 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두루’라는 어원과 낙동강변의 변두리로 ‘두리’라는 말의 토속어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주례동 분성 배씨 세거지(周禮洞盆城裵氏世居地)는 참판공파의 후손인 입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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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과 주례동에 있는 함안 조씨 세거지. 함안 조씨(咸安趙氏) 가승(家乘)에 의하면 조선조 단묘(端廟)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이던 어계 은자(漁溪隱者) 조여(趙旅)의 현손인 조근(趙墐)이 1500년대 중반 밀양 삼랑촌을 거쳐 임진왜란 전 양주 고을 사천 땅에 이거하였으며, 조근의 큰아들 조원도(趙元道)는 백부에게 출계(出係)하고, 둘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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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에 있는 해주 오씨 세거지. 주례(周禮)의 지명은 공동으로 농사를 짓던 두레를 한자로 옮기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또 주례의 지형이 동평현에서 서쪽으로 돌아 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두루’라는 어원과 낙동강변의 변두리로 ‘두리’라는 말의 토속어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사상구 주례동에 살고 있는 해주 오씨(海州吳氏)는 오태중(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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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에 있는 밀양 박씨 세거지. 학장동(鶴章洞)이란 명칭은 동서로 자리한 학성리(鶴城里)와 장문평(場門坪)의 마을을 합치면서 최근에 지어진 이름이다. 장문평은 장문 시장이 생긴 뒤 시장이 유명해지면서 동리명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에 ‘장(場)’을 ‘장(章)’으로 바꾸어 학장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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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에 있는 영산 신씨 세거지. 학장동(鶴章洞)이란 명칭은 동서로 자리한 학성리(鶴城里)와 장문평(場門坪)의 마을을 합치면서 최근에 지어진 이름이다. 장문평은 장문 시장이 생긴 뒤 시장이 유명해지면서 동리명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에 ‘장(場)’을 ‘장(章)’으로 바꾸어 학장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학장동 영산 신씨 세거지(鶴章洞靈山辛氏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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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에 있는 진주 강씨 세거지. 학장동은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 때 학성리, 장문리, 구덕리 등을 합치면서 학성리와 장문리에서 한 자씩 떼어 형성된 지명이다. ‘학성(鶴城)’은 엄광산 기슭에 위치한 학성[고려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 조성된 성으로 방어를 목적으로 쌓은 성을 후에 목장성으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에서 유래하였다....
수영구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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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수영구에 있는 성씨 세거지. 수영구 지형은 북쪽으로 병풍을 친 듯한 배산(盃山)이 있고 남쪽으로 수영동과 망미동, 민락동이 있어 배산임수의 아늑한 요새를 이루고 있다. 또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수영강은 비옥한 농토를 마련해 주고, 민물과 바닷물이 합수되어 풍부한 어자원을 제공해 예부터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수영구 지역에 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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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동에 있던 밀양 박씨 세거지. 금련산에서 발원하여 지금의 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 쪽으로 흘러내리는 하천이 남천(南川)이다. 이 남천의 동쪽에 형성된 마을이라서 남천동(南川洞)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37년 발간된 『동래군지(東萊郡誌)』에는 남천동 밀양 박씨(密陽朴氏) 입향조는 좌랑 박성인(朴聖仁)으로, 경상북도 청도에서 이주하였다고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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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수영구 망미동 구락리 마을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옛날 수영강변에 모래가 많아 수많은 갈매기[鷗]들이 날아와 즐겁게[樂] 놀았다고 하여 구락리(鷗樂里)라고 불렀다고 한다. 『동래부읍지(東萊府邑誌)』[1871] 등의 기록에는 ‘구락리(求樂里)’라고 기록되어 있다. 1700년 후반 김도안(金道安)[57세]이 경상남도 김해에서 망미동 구락리 마을로 이거 입향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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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가락계 김씨의 종통으로 가락국의 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한다. 가락국이 멸망하고 11세손 김무력(金武力)이 신라에서 각간(角干)에 이르고, 그 아들 김서현(金舒玄)은 진흥왕의 아우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과 혼인하여 김유신(金庾信)을 낳았다. 김해 김씨의 파계는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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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남수 마을에 있는 청주 태씨 세거지. 청주 태씨(淸州太氏)는 고대 주(周)나라 태전(太顚)의 후예라고 전하며, 일설에는 발해 국왕 대조영(大祚榮)의 10세손 대광현(大光顯)이 발해가 망하자 수만 명의 유민을 이끌고 934년(태조 17 고려로 망명하니, 태조(太祖)가 그를 예우하고 태씨를 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씨의 본관은 『증보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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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달성 서씨 세거지. 달성 서씨(達城徐氏) 시조 서진(徐晋)은 고려 시대 봉익대부 판도판서 등에 오르고 나라에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하여지며 달성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세거하게 되었다. 서진뿐만 아니라 아들 서기준(徐奇俊)과 손자 서영(徐潁)까지 3대가 달성군에 봉하여졌다고 한다. 후손들이 달성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달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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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밀양 박씨 세거지. 밀양 박씨(密陽朴氏) 시조 박언침(朴彦枕)은 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 밀성 대군(密城大君)에 봉하여졌다. 후손들이 이에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밀양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8세손 박언부(朴彦孚)를 파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를 비롯하여 도평의사공파[8세 박언상], 좌복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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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함안 조씨 세거지. 함안 조씨(咸安趙氏) 시조 조정(趙鼎)은 중국 후당(後唐) 사람으로 신라 말에 아우 조부(趙釜)와 조당(趙鐺)을 데리고 우리나라에 왔다. 조정은 고려 개국 공신인 신숭겸(申崇謙), 배현경(裵玄慶), 복지겸(卜智謙),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등과 교유가 두터웠다고 한다. 왕건(王建)을 도와 합천에서 군대...
북구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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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지역에 있는 성씨 세거지. 세거지는 성씨(姓氏)와 본관(本貫)이 같은 부계(父系)의 혈족들이 한 마을에 대대로 살아오면서 마을의 인적 구성이나 운영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마을이다. 이를 동족촌, 집성촌이라고도 한다. 마을을 주도하는 성씨가 상대적으로 결속하면서 세거 성씨가 중심이 된 동족 마을이 발달하게 되었다. 집성촌의 구성원들은 조상 전래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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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대리 마을에 있는 파평 윤씨 세거지. 파평 윤씨(坡平尹氏)는 고려 시대 공신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며, 조선 숙종(肅宗) 때 여진을 징벌한 윤관(尹瓘)의 후손으로 파평을 본관으로 하는 문중이다. 파평 윤씨는 고려조에서 조선조까지 문과 급제자 418명, 정승 11명을 배출한 명문 거족이다. 부산 지역에 정착한 입향조 윤성익(尹聖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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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 있는 함양 오씨 세거지. 함양 오씨(咸陽吳氏)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가이다. 고려 시대 좌복사 상장군(左僕射上將軍)을 역임한 오광휘(吳光輝)를 시조로 한다. 함양 오씨 가운데 모와공파(茅窩公派)는 경상남도 산청군 지리산 자락에 정착하였으며, 중시조 오경원(吳慶遠)은 성균관 경주 교수를 역임하였다. 오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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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상리 마을에 있는 남양 홍씨 세거지. 남양 홍씨(南陽洪氏)는 고려 시대부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충신들을 다수 배출한 문중으로 고려 개국 공신 대사공(大使公)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한다. 고려 충혜왕(忠惠王)과 공민왕(恭愍王)의 외조부 홍규(洪奎)가 남양 부원군에 봉해져서 남양군파의 계보가 생겨났는데, 북구 만덕동 상리 마을의 홍씨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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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사기 마을에 있는 남원 양씨 세거지. 양씨(梁氏)는 모두 탐라국[현 제주특별자치도] 삼성혈 설화의 양을라(良乙那)를 단일 시조로 하는 동계 혈족이다. 양을라는 태고에 제주도 한라산 북록 모흥혈(毛興穴)에서 태어났고, 그곳에 탁라국(乇羅國)을 개국하여 양씨의 연원을 이루었다. 374년 양탕(良宕)이 광순사(廣巡使)로 신라에 들어가자 내물왕이 성주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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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중리 마을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 남평 문씨(南平文氏)는 신라 말기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에서 고려 건국 공신으로 남평 개국백으로 봉해졌던 문다성(文多省)을 시조로 한다. 만덕 문중의 계파는 의안공파(毅安公派)로, 고려 후기 역사적 발자취를 남긴 문익점(文益漸)이 선조이다. 북구 만덕동은 고려 시대 절터로서 부산광역시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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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사기 마을에 있는 밀양 손씨 세거지. 밀양 손씨(密陽孫氏)는 신라 흥덕왕 때의 효자로 유명한 손순(孫順)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손순은 신라 개국 당시 6부 촌장의 한 사람인 대수촌장 구례마(俱禮馬)의 후손이다. 성씨 손(孫)은 구례마가 받았다. 손순은 경주 모량리 출신으로, 지극한 효성으로 왕에게까지 알려져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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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중리 마을에 있는 월성 박씨 세거지. 월성 박씨(月城朴氏)는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여덟째 아들로 월성 대군(月城大君)에 봉해진 박언의(朴彦儀)를 시조로 한다. 만덕 문중 입향조 박인한(朴寅漢)은 유학자로서 동래 향교 운영에 헌신적으로 앞장서는 등 신라 왕족의 후손으로서 명예를 지키며 살았던 인물이다. 후대에 국가와 사회에 공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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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대천리 마을에 있는 경주 최씨 세거지. 경주 최씨(慶州崔氏) 문중은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에 전하는 신라 개국 당시 6촌[6부]의 한 곳인 소벌도리(蘇伐都利)의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한다. 최치원의 2세손부터 7세손에 이르기까지 분파가 되며 많은 파종으로 나누어졌다. 그중 7세손 이후 생겨난 사성공파(司成公派)의 후손이 북구 화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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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수정 마을에 있는 김해 허씨 세거지. 금정산 상계봉에서 함박봉으로 뻗어 내린 언덕 위에 수령이 500여 년 된 정자[포구]나무가 있어 수정(水亭)이란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정자나무 부근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수정(水亭) 마을이라 불렀다. 김해 허씨(金海許氏)는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부인 허황후(許皇后)의 후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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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대천리 마을에 있는 안동 권씨 세거지. 안동 권씨(安東權氏)는 원래 신라의 왕실 성씨인 경주 김씨(慶州金氏)에서 갈라져 나온 성씨이다. 시조 권행(權幸)은 원래 김씨였으나 고려 태조(太祖)와 함께 후백제를 격파한 고려 창업 공신으로, 태조가 그 공적을 치하하여 권씨 성을 내리고 태사(太師)의 벼슬을 내리면서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자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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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대천리 마을에 있는 인동 장씨 세거지. 인동 장씨(仁同張氏)는 일찍이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로, 고려 전기 인동현의 옥산 땅에 살면서 신호위 상장군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한다. 13세손 장백(張伯)이 고려 우왕(禑王) 때 문하시중으로서 옥산군(玉山君)에 봉해지면서 옥산을 본관으로 하였다. 이후 조선 후기 옥산이 인동으로 지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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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대천리 마을에 있는 창원 정씨 세거지. 창원 정씨(昌原丁氏)는 원래 당나라에서 대승상에 올라 태양군에 봉하여졌다가 신라에 귀양 온 후 귀화한 정덕성(丁德盛)을 시조로 한다. 화명동에 세거한 창원 정씨는 죽사공파(竹史公派) 문중으로, 중시조는 고려 시대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한 정연방(丁衍邦)이다. 대천리(大川里)란 대천(大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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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화잠 마을에 있는 청주 양씨 세거지. 조선 시대 이 지역은 양산군 좌이면 와석리로 불렸다. 현재의 북구 화명동의 상징인 화산은 신선덤이라는 암봉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형상이 신선이 누워 있는 것같이 보여 와석(臥石)이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 화산의 묏부리라는 뜻으로 화잠(華岑)이라 개칭하였다. 화잠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 화잠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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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대천리 마을에 있는 파평 윤씨 세거지. 파평 윤씨(坡平尹氏)는 고려 시대 공신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며, 조선 숙종(肅宗) 때 여진을 징벌한 윤관(尹瓘)의 후손으로 파평을 본관으로 전래된 문중이다. 파평 윤씨는 고려조에서 조선조까지 문과 급제자 418명, 정승 11명을 배출한 명문거족이다. 대천리(大川里)란 대천(大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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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화잠 마을에 있는 평택 임씨 세거지. 조선 시대 이 지역은 양산군 좌이면 와석리로 불렸다. 현재의 북구 화명동의 상징인 화산은 신선덤이라는 암봉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형상이 신선이 누워 있는 것같이 보여 와석(臥石)이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 화산의 묏부리라는 뜻으로 화잠(華岑)이라 개칭하였다. 화잠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 화잠 마을로...
부산진구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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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 있는 성씨 세거지. 부산진구 일대는 삼한 시대에 거칠산국이었고, 757년(신라 경덕왕 16) 동래군 동평현에 속하였다가 1021년(현종 12) 양주 동평현이 되었다. 이후 1519년(중종 14) 동래현에 귀속되었다. 1547년(명종 2) 동래현이 동래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914년 동래군 서면에 소속되었다가 1936년에 부산부에 편입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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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동에 있는 달성 서씨 세거지. 달성 서씨(達城徐氏)는 영남의 거족으로서 고려 멸망 후 경파(京派)와 향파(鄕派)로 크게 나누어졌다. 경파는 서한(徐閈)을 시조로 하며, 조선조 벼슬에 나아가 중앙 조정에 출사한 계통을 말하며, 뒤에 흔히 ‘대구 서씨(大丘徐氏)’로 부르게 되었다. 향파는 서진(徐晉)을 시조로 하며, 절의를 지켜 출사(出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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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에 있던 여양 진씨 세거지. 여양 진씨(驪陽陳氏)는 본래 중국 성씨로서 송(宋)나라 때 우윤(右尹)을 지낸 진수(陳琇)가 국란(國亂)을 피하여 우리나라에 건너와 여양현, 곧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덕양산 아래에 정착 세거하였다. 그의 후손인 진총후(陳寵厚)가 고려 인종(仁宗) 때 신호위 대장군(神號衛大將軍)을 지내고 이자겸(李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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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에 있는 파평 윤씨 세거지. 파평 윤씨(坡平尹氏)는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명문 거족(名門巨族)으로, 조선 시대에도 많은 학자·정치가를 배출하고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명문가이다. 아울러 그 세거지나 집성촌을 살펴보면 북한 지역은 물론이고 남한의 경기와 호남, 영남을 막론하고 두루 분포되어 있는 대성(大姓)이다. 『동래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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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에 있던 강릉 김씨 세거지. 강릉 김씨(江陵金氏) 시조는 신라 혜공왕(惠恭王) 때 시중(侍中)을 지낸 김주원(金周元)이다. 선덕 여왕이 죽자 김주원이 왕으로 추대되었는데, 홍수 때문에 입궐하지 못하여 상대등(上大等) 김경신(金敬信)이 원성왕이 되었다. 이후 김주원은 강원도 명주[현재의 강원도 강릉]로 물러났고, 2년 후 조정에서 명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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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시조를 달리 하는 세 갈래가 있다. 대부분의 김해 김씨는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지만, 신라 김씨, 즉 경주 김씨 한 갈래로 금녕군(金寧君) 김시흥(金始興)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가 있다. 과거에는 가락 김씨(駕洛金氏)와 구별하려고 선김(先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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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던 청도 김씨 세거지. 청도 김씨(淸道金氏) 시조 김지대(金之岱)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이다. 고려 고종(高宗) 때 문과에 급제하고 정당문학(政堂文學), 이부 상서 등을 거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내고 오산 부원군(鰲山府院君)[오산(鰲山)은 청도의 옛 이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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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동에 있던 김녕 김씨 세거지. 김녕 김씨(金寧金氏)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이다. 의성(義城)에서 출생하여 고려 인종(仁宗) 때 묘청(妙淸)의 난을 평정하여 금주군(金州君)에 봉하여졌으며, 명종 때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토평하는 데 공을 세워 식읍을 하사받고 상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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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 남평 문씨(南平文氏) 충선군 문익점(文益漸)이 거주하였던 곳이 강성[단성 혹은 산청]이어서 사후에 강성군(江城君)으로 봉하여졌다. 이후 그 후손들이 강성을 본관으로 하는 강성 문씨 충선군파, 혹은 남평 문씨 충선군파로 불리기도 하였다. 원래 남평 문씨 일족이었기 때문이다. 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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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에 있는 밀양 손씨 세거지. 밀양 손씨(密陽孫氏)가 세력을 가지게 된 것은 삼중대광 사도(三重大匡司徒)에 추증되고 광리군(廣理君)에 봉해진 7세 손긍훈(孫兢訓)에 이르러서이다. 손긍훈은 태조(太祖) 19년(936) 후백제의 신검군(神劍軍)을 대파하고 후삼국을 통일할 때 왕식렴(王式廉) 등과 함께 기병(騎兵)을 거느리고 장수로 출전하여...
동래구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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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는 성씨 세거지. 동래구의 서쪽은 금정산맥이 북동에서 남서로 뻗어 있고 동쪽은 장산의 서쪽 말단부에 위치한다. 수영강의 지류인 온천천이 북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며, 하천 연변의 침식 분지에 시가지가 발달하여 전체적으로 볼 때 남북으로 열린 분지 지형을 이룬다.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는 당시 동래부 행정 구역이 7개 면[읍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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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여고 마을에 있던 김녕 김씨 세거지. 사직동의 지명은 이곳에 있었던 사직단에서 유래하였다. 사직단의 사(社)는 토지신을 말하고, 직(稷)은 곡물 신으로 임금을 비롯한 지방 수령이 토지신과 곡물 신에게 제사를 드려 나라의 풍요와 지방의 안녕을 비는 곳이다.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1640년(인조 18) 처음 사직단을 쌓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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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에 있던 청주 한씨 세거지. 동래 토박이들에 의하면 수안동은 수안(首安) 또는 수안(水安)으로 쓰였다. 수안(首安)은 동래부의 수장이던 동래 부사가 집무하던 동헌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어 가장 으뜸 되는 관아 안이라는 뜻이며, 수안(水安)은 당시 땅 밑을 조금만 파내려 가면 물이 나오는 등 물이 흔해 붙여진 이름으로 풀이한다. 또한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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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에 있는 추계 추씨 세거지. 추계 추씨(秋溪秋氏) 시조인 추엽(秋饁)은 남송에서 예부 상서를 역임하고 우리나라 함흥 연화도에 정착하였다. 3세 추적(秋適)은 고려에서 민부 상서, 문하시중을 역임하였고, 『명심보감(明心寶鑑)』을 배열, 편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8세 우천(愚川) 추익한(秋益漢)은 한성 부윤에서 물러난 후 영월에서 단종(端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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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에 있는 월성 박씨 세거지. 월성 박씨(月城朴氏)는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여덟째 아들로 월성 대군(月城大君)에 봉해진 박언의(朴彦儀)를 시조로 한다. 안락동 월성 박씨는 현감공파(縣監公派) 동래 문중으로, 현감공파는 통훈대부(通訓大夫) 당진 현감 박숭겸(朴崇謙)의 후손을 말한다. 16세기 초 박숭겸의 아들인 어모장군(禦侮將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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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달북 마을에 있는 광주 김씨 세거지. 광주 김씨(廣州金氏) 시조는 신라 56대 경순왕(敬順王)의 다섯째 아들 김석(金錫)[의성 김씨 시조]의 6세손 김언미(金彦美)의 셋째 아들 김녹광(金祿光)이다. 김녹광은 1236년(고종 23) 상장군으로 몽골군을 격파하는 데 공을 세우고 광주군(廣州君)에 봉하여졌다. 이후 후손들이 의성 김씨에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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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 있는 현풍 곽씨 세거지. 온천동의 지명은 이곳의 동래 온천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재상 충원공이 장산국(萇山國)의 온정(溫井)에서 목욕을 하고 경주로 돌아오던 길에….”라는 기록에서 처음 등장하며, 이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여러 사료에서 등장하고 있다. 현풍 곽씨(玄風郭...
연제구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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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연제구에 있는 성씨 세거지. 연제구는 1995년 동래구에서 분구된 구로, 현재 거제 1동부터 거제 4동, 연산 1동부터 연산 9동까지를 관할하고 있다. 현재 연제구에는 2만여 명이 거주하는데, 부산광역시 인구의 6% 정도다. 거제동에서는 청동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고, 삼한과 삼국 시대 초기 유물이 많이 출토된 연산동 고분군의 존재로 일찍부터 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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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에 있는 남원 양씨 세거지. 남원 양씨(南原梁氏)는 본관이 전라북도 남원인 만큼 세거지는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지역에 많다. 부산에서는 현재 해운대구 반송동·반여동, 사상구 주례동, 연제구 거제동 등지에 모여 산다. 거제동, 특히 거제 2동에 사는 남원 양씨는 1세 병부공(兵部公) 양능양(梁能讓), 13세 문양공(文襄公) 양성지(梁誠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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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 거제동의 남평 문씨(南平文氏)는 동래에 처음 들어온 남평 문씨 의안공파(毅安公派) 문평(文苹)의 후손들이며, 거벌파(巨閥派), 거벌 문중이라고 불린다. 『남평 문씨 동래 거벌파보』에 따르면, 문평의 후손은 동래[부산] 각 지역에 흩어져 거주하는데 서원(書院)집, 성안(城案)집, 사상(沙上)집, 사하(沙下)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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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에 있는 은진 송씨 세거지. ‘거제(巨堤)’라는 지명은 이곳에 축조된 큰 제방에서 비롯되었다. 조선 시대 이곳의 지명은 거벌리(居伐里)였다. 거벌(巨伐)로도 표기되었으며, ‘큰 벌’을 뜻하는 평야를 의미한다. 지금의 거제동과 연산동 일대에 펼쳐 있는 넓은 들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상습 침수 지역이었던 이곳에 제방을 쌓으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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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에 있는 전주 이씨 세거지. 전주 이씨(全州李氏)의 시조는 이한(李翰)이다. 이한은 신라 태종 무열왕의 10세손 김은의의 딸과 결혼하였고, 문성왕 때 사공(司空)을 지냈다. 이후 조선 태종의 첫째 아들인 양녕 대군(讓寧大君) 이제(李禔)를 중시조로 하여 양녕대군파를 형성하였다.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 2동에 정착해 사는 전주 이씨는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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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에 있는 파평 윤씨 세거지. ‘거제(巨堤)’라는 지명은 이곳에 축조된 큰 제방에서 비롯되었다. 조선 시대 이곳의 지명은 거벌리(居伐里)였다. 거벌(巨伐)로도 표기되었으며, ‘큰 벌’을 뜻하는 평야를 의미한다. 지금의 거제동과 연산동 일대에 펼쳐 있는 넓은 들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상습 침수 지역이었던 이곳에 제방을 쌓으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한다....
사하구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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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하구에 있는 성씨 세거지. 사하구는 북쪽으로 금정산맥에서 이어진 산지가 발달하며 구덕산과 승학산 등으로 이어진다. 동쪽은 구덕산에서 시약산으로 이어지지만 산록 아래로 연결되어 있다. 남쪽은 바다와 접하며 대부분 급경사의 암석 해안을 이룬다. 서쪽은 낙동강 하류와 남해가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 하구로 삼각주 지형이 발달하였는데, 특히 대표적인 하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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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동에 있는 경주 이씨 세거지. 감천동의 옛 지명은 감내(甘內)다. ‘감(甘)’은 신(神)을 뜻하는 ‘’, ‘검’에서 유래되었다. ‘천(川)’은 ‘내’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천(川)·양(壤)·내(內)·군(郡)’ 등 마을을 뜻한다. 곧 감천은 ‘신성한 마을’이라는 의미다. 경주 이씨(慶州李氏)는 초기 신라의 6촌 중 알천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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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순흥 안씨 세거지. 순흥 안씨(順興安氏)는 고려에서 보승 별장을 지낸 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하고 안종검(安從儉)을 중시조로 한다. 본관은 시조 이하 대대로 순흥에 세거하였기 때문에 순흥으로 하였다. 세계는 시조의 아들인 안영유(安永儒)[1파], 안영린(安永麟)[2파], 안영화(安永和)[3파]를 파조로 한다. 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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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청주 한씨 세거지. 청주 한씨(淸州韓氏) 시조 한란(韓蘭)[?~?]은 고려 태조(太祖)가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정벌하기 위해 청주를 지날 때 군량미를 도와 삼한 통합에 공이 있으므로 개국 벽상공신으로 삼중대광 태위(三重大匡太尉)에 올랐다. 한란이 청주 방정리에 세거하였기 때문에 후손들이 청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동구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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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에 있는 성씨 세거지. 동구는 서쪽 일대가 수정산(水晶山)[315m], 엄광산(嚴光山)[504m], 구봉산(龜峰山)[408m] 등의 산지가 연속되어 있고, 남동쪽은 바다에 연하여 배산 임해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북서쪽의 산지에서 부산천·초량천·호계천 등의 하천이 발원하여 구의 중앙을 지나 부산만으로 유입하며, 수정산에서 발원한 범천은 북서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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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있던 진주 강씨 세거지. 우리나라 강씨(姜氏)의 본관은 문헌상으로는 114본이 전하나, 『조선 씨족 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시조가 분명한 진주(晋州)와 금천(衿川), 안동(安東), 배천(白川), 해미(海美), 동복(同福), 광주(光州) 등 7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강씨는 모두가 진주 강씨(晋州姜氏)에서 분적하였다고 보고 진주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