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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칠리 진주 강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2932
한자 九七里晋州姜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Jinju Gang Clan in Guchil-ri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구칠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현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2~3가구
세거지 구칠리 진주 강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구칠리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구칠리에 있는 진주 강씨 세거지.

[명칭 유래]

구칠리의 한자 표기를 처음에는 구칠리(仇柒理)라고 하였다가 뒤에 구칠리(九七里)라고 하였다. 이칭으로 구칠(九柒)·구칠(邱漆) 등을 사용한다. 이 다양한 표기에 대해 주민들은 이곳에 큰 옻나무 아홉 그루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구칠(九漆)이라 하였고, 그 옻나무가 언덕 위에 자생하고 있으므로 구칠(邱漆)이라 하기도 하였다 한다. 또 옻독으로 원수 같은 나무라 하여 ‘원수 구(仇)’ 자를 사용해 구칠(仇漆)이라 하였으며, 후에 구칠(九七)로 표기가 변하였다고도 전하지만, 실제로는 인근의 갈치재와 관련된 지명으로 보고 있다. 기장군 철마면기장읍을 연결하는 큰 고개인 갈치재는 구칠재로도 불렀는데, 이 두 명칭 모두 거칠재의 변음으로 본다. 이때 거칠의 의미는 원래 ‘거칠 황(荒)’이 아니라 ‘클 대(大)’의 뜻을 담고 있어 큰 고개를 뜻한다고 국어학계에서는 해석한다.

[형성 및 변천]

진주 강씨(晋州姜氏)는 도원수를 지냈고 수나라와의 전투에서 많은 전공을 세운 고구려의 공신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한다. 조선 초에 금정구 두구동에서 기장군 철마면 구칠리로 이거하였다. 금정구 두구동의 입향조는 은열공파 14세 강위민(姜渭敏)으로, 그 후손이 기장군 철마면 구칠리로 이거하였다. 묘지명을 보면 강위민의 묘와 함께 아들인 강연방(姜連芳), 손자 강선득(姜善得)의 묘도 기장군 철마면 구칠리에 있다. 본래 강씨 묘소는 금정구 두구동 뒷산인 철마산(鐵馬山)에 있었는데 1970년대 초반 국방부 조병창(造兵廠)이 건립되면서 지금의 기장군 철마면 구칠리로 이장하였다고 한다. 다만 강연방과 강선득의 처음 묘소 위치가 다르다. 비슷한 지역이지만 강연방은 금정구 두구동 뒷산인 철마산 진주 강씨 무덤으로, 강선득은 철마산 하법으로 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강선득 대에 하법으로 이거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환경]

구칠리는 북동쪽에서 시작해 남동쪽과 남서쪽, 그리고 북동쪽까지 연결된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동남쪽에 갈치재가 있다. 사방의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구칠리의 중앙에서 모여 구칠천(九七川)을 이루며 좁은 북쪽의 골짜기를 따라 흘러 철마천에 합류한다.

[현황]

2013년 현재 철마면 구칠리에는 진주 강씨 2~3가구가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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