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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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明洞昌原丁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Changwon Jeong clan in Hwamyeon-dong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대천리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이성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에 있는 창원 정씨 세거지.
[개설]
창원 정씨(昌原丁氏)는 원래 당나라에서 대승상에 올라 태양군에 봉하여졌다가 신라에 귀양 온 후 귀화한 정덕성(丁德盛)을 시조로 한다. 화명동에 세거한 창원 정씨는 죽사공파(竹史公派) 문중으로, 중시조는 고려 시대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한 정연방(丁衍邦)이다.
[명칭 유래]
대천리(大川里)란 대천(大川) 유역에 형성된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천은 하상이 넓어 ‘큰내’로 부르다가 한자 이름인 ‘대천’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창원 정씨 문중이 대천리에 자리 잡게 된 것은 18세기 중반이다. 원래 창원 진동에 살았던 입향조[정남수(丁南壽)]의 선친이 이곳에 와 보고 금정산성 아래 큰 내가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가는 산 좋고 물 좋은 최고의 명당자리라고 판단하여 이주하려다 오지 못하였다. 이후 아들 정남수가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살았는데, 그 아들 5형제 가운데 큰아들과 셋째 아들이 대천리 마을에 정착하고 나머지 아들들은 옆 마을인 북구 금곡동 율리 마을에 분산하여 살게 되었다. 창원 정씨 대천리 문중에서는 근세에 와서 지역 사회를 위해 공헌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부산 지역 고고학계(考古學界)의 대가인 동아대학교 정중환 박사 등이 대천리 문중 사람이다.
[자연 환경]
대천리 마을 북쪽에는 부산의 진산(鎭山)인 금정산(金井山)이 자리하고 있다. 금정산에서 발원한 대천이 흘러내려 서쪽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대천에는 전설이 깃든 애기소 폭포와 웅덩이가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대천리 마을은 대천 계곡을 중심으로 주변에 모두 아파트 단지로 변하였지만 창원 정씨 문중에서 개발 사업에 동의하지 않아 화명초등학교 주변의 옛 집터와 죽사재(竹史齋) 재실은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창원 정씨는 현재 10가구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