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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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梅鶴里海平金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Haepyeong Gim Clan in Maehak-r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매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진봉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매학리에 있는 해평 김씨 세거지.
[명칭 유래]
매학리는 이곳에 있는 매곡(梅谷) 마을의 매(梅) 자와 상곡 마을 뒤에 솟아 있는 소학대(巢鶴臺)[백운산 자락의 매바위를 일컫는 것으로 기장 8경 중 하나]의 학(鶴) 자를 합성하여 붙인 지명이다.
[형성 및 변천]
해평 김씨(海平金氏) 시조는 고려 전기 김훤술(金萱述)이다. 18세 김양설(金良說)[1709~1754]이 부산 지역 입향조로 통정대부 공조 참의에 증직되었다. 19세기 후반 22세 김영식(金永植)[1833~1891] 대에 기장군 정관읍 매학리로 들어왔다. 23세 해창(海蒼) 김병훈(金秉勳)은 1848년(헌종 14)생으로 의금부 도사를 지냈다. 부산대학교 도서관에 기증한 많은 고서가 해창 문고라는 이름으로 보관 중이다. 그의 묘는 매학리 뒷산에 있었지만 정관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철마면 이곡리 산23번지로 이장하였다. 24세 김재교는 고종(高宗) 대 진사였고, 사위 정지모(鄭智謨)는 기장군 장안면 좌천장에서 일어났던 3·1 운동 당시 주창자로 참여하여 징역 10월형을 받아 복역, 출옥하였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서거하였다. 1996년 건국 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다. 25세 김종복(金種復)은 3·1 운동 당시 거사 모의 장소를 제공하기도 하고, 주동자 보호역을 맡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자연 환경]
매학리는 남쪽으로 문래봉[507m], 서쪽으로 망월산[522m]이 있어 이들 두 산을 잇는 산줄기가 서남쪽을 둘러싸고 있다. 동쪽에는 철마면으로 연결되는 곰내재가 자리한다.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북동쪽으로 흘러 좌광천에 유입한다. 중류에 상곡 저수지가 축조되어 있으며, 좌광천 주변으로 평지가 발달하였다.
[현황]
2013년 현재 매학리에는 해평 김씨 2가구가 산다. 특히 종가인 김동욱 고택은 화재와 퇴락 등으로 안채만 남아 있지만, 이전에는 행랑채와 사랑채 등을 갖춘 규모가 큰 고택이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집이다. 뒤편 문래봉을 주산으로 삼아 내외의 좌청룡 우백호가 장대하고 함박산과 그 줄기를 안산과 조산으로 삼았으며, 멀리 좌광천이 휘돌고 집 앞에는 삼합수가 만나는 풍수상 길지의 형세를 갖추었다. 대문 밖 오른편에는 천원지방의 모양을 갖춘 연못도 있었지만 지금은 신도시 조성 등으로 풍수 형태가 많이 바뀌었다. 최근 김동욱이 고향을 지키려고 고택 옆에 집을 신축하였다. 기장군 정관읍 매곡길 3-15에 해평 김씨 부사공파 제실인 숭모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