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5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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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平金氏 |
영어의미역 | Haepyeong Gimsi|Haepyeong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
집필자 | 정진봉 |
[정의]
김훤술을 시조로 하고, 김양설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해평 김씨의 시조는 고려초 김훤술(金萱述)이다. 김훤술은 김알지의 후손이라고 전할 뿐 문헌이 실전(失傳)되어 선계를 상고할 수 없다. 그는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으나 그 후 다시 실전되어 고려조에 전직(殿直)을 지낸 김태(金兌)를 1세(世)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본관은 시조가 해평으로 사적(賜籍)되었고, 후손 김수(金銖)가 해평군에 봉해져서 본관을 해평이라고 했다. 해평은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의 지명이다.
[입향 경위]
17세 김언(金漹)은 군기시 판관(軍器寺判官)을 지냈으며, 묘가 칠산(七山)[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대황리]에 있다. 그의 아들 18세 김필설(金弼說)의 묘는 하점복(下占卜)[성주군 벽진면 지산리]에 있고, 둘째 김뇌설의 묘는 아버지와 함께 칠산에 있고, 셋째 김양설(金良說)[1709~1754]의 묘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청강리에 있다. 따라서 18세 김양설대에 경상북도 선산군 선산에서 부산 기장으로 이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입향 경위는 잘 알 수 없다. 김양설은 통정대부 공조 참의에 증직되었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부산에 해평 김씨는 모두 116가구, 406명[남 205명, 여 201명]이 살고 있다.
[관련 유적]
해평 김씨 재실 숭모재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매학리 152-2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