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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535
한자 溫泉洞達北-廣州金氏世居地
영어의미역 Oncheon-dong Gwangju Gim Clan Hometow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달북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영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세거지 온천동 달북 마을 광주 김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달북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달북 마을에 있는 광주 김씨 세거지.

[개설]

광주 김씨(廣州金氏) 시조는 신라 56대 경순왕(敬順王)의 다섯째 아들 김석(金錫)[의성 김씨 시조]의 6세손 김언미(金彦美)의 셋째 아들 김녹광(金祿光)이다. 김녹광은 1236년(고종 23) 상장군으로 몽골군을 격파하는 데 공을 세우고 광주군(廣州君)에 봉하여졌다. 이후 후손들이 의성 김씨에서 분적하여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광주로 하였다.

광주 김씨는 후에 영남계와 황해계로 구분된다. 영남계는 다시 동래파와 밀양파로 나누어진다. 영남계 파조가 김남물(金南物)이다. 김남물의 할아버지는 김굉(金閎), 아버지는 김훤(金晅)이다. 김남물은 20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내직과 외직을 거쳐 안동 부사를 지내고 만년에 안동으로 낙향하였다. 그의 아우가 원 간섭기 중요 관직을 거친 김개물(金開物)이다. 김남물의 셋째 아들 김차문(金次文)이 동래 입향조다.

광주 김씨 문중은 동래 지역 원오향가(原五鄕家) 중의 한 가문인데, 해수(海叟) 김우정(金禹鼎)[1551∼1630]과 재종제 호수(湖叟) 김기(金琦)로 인해 대표적 향반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자손들은 동래 향교(東萊鄕校)에서 중요 직임을 맡으며 동래의 으뜸 사족(士族)이 되었다.

[명칭 유래]

온천동 지명은 이곳에 있는 동래 온천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은 『삼국유사』에 “재상 충원공이 장산국(萇山國)의 온정(溫井)에서 목욕을 하고 경주로 돌아오던 길에….”라는 기록에서 처음 등장하며, 이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여러 사료에 등장한다.

[형성 및 변천]

온천동 달북 마을에 입향한 광주 김씨 인물은 김남물의 7세손인 김우정(金禹鼎)[1551∼1630]으로, 시기는 임진왜란 이전이다. 김우정의 자는 자진(子珍)이며, 호는 해수(海叟)다. 성균생원 김국평(金國平)과 남평 문씨(南平文氏)[문맹효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41세 때 임진왜란을 만나 포로로 일본 교토[京都] 후시미에 끌려갔다가 『간양록(看羊錄)』을 쓴 강항(姜沆)을 만나 도의로 사귀고, 봉소(奉疏) 한 통을 왕건초(王建初)에게 맡겨 체찰사 이덕형(李德馨)에게 전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하다가 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한강(寒岡) 정구(鄭逑) 문하에서 수학하며 학문적 요체를 얻어 배우는 사람이 문하에 가득 찼다. 천거로 돈령부 도정에 올랐다. 묘소는 미남의 달북 고개에 있다.

김우정은 생원 이성번의 딸[영천 이씨]과 결혼하였으나 문중의 족자(族子) 김세인(金世仁)을 후사(後嗣)로 삼았고, 다시 주씨(朱氏)와 사이에 아들 김이룡(金二龍)을 두었다. 김세인은 김시집(金時集), 김시술(金時述), 김시간(金時侃)을 낳았고 김이룡은 김여구, 김여근, 김여찬을 두었다. 강항의 후손인 강로(姜㳣)가 1863년(철종 14) 동래 부사로 부임하자 그는 선대의 교분을 잊지 않고 온천동 달북 마을향경재(鄕敬齋)를 지어 친필 현판을 걸고 김우정을 제향하였으며, 1852년 동래부의 최초 문집인 『해수 선생 문집(海叟先生文集)』을 발간하였다. 또한 1865년(고종 2) 봄 「향경재기(鄕敬齋記)」와 「묘갈명(墓碣銘)」을 짓는 등 김우정의 선양 사업을 펼쳤다.

1937년에 발행된 『동래군지』에 파조인 김남물을 비롯하여 김국평(金國平)[선조 때 생원], 김우정(金禹鼎), 김상규(金相奎)[온천 거주], 김재원(金載源), 김호영(金浩榮)[운봉 거주], 김용순(金容淳), 김두창(金斗昌)[개금 거주], 김수맹(金水孟)[초읍 거주] 등이 기록되어 있다.

[자연 환경]

온천동의 북서쪽으로는 금정산맥이 뻗어 있고 서쪽에는 쇠미산이 자리한다. 마을은 쇠미산 동쪽 사면 경사지에 있으며, 남동 방향으로 평지가 나타난다. 멀리 온천천이 흐른다.

[현황]

2013년 현재 온천동에는 광주 김씨 20가구가 살며, 해운대구 반송동 운봉에 50가구, 금정구 선동에 20가구, 기장군 정관읍에 20가구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문중 재실인 향경재에는 「향경재 영건기(鄕敬齋營建記)」 기문이 현판으로 걸려 있다. 1979년 2월 의수사(義叟祠)를 건립하여 김우정을 독향(獨享)하다 1991년부터 재종제인 호수(湖叟) 김기(金琦)[충렬사 별전 공신]를 함께 모시고 유림이 주관하여 지금도 춘추로 향사한다. 향경재 옆에 월복당(月伏堂)이 있다. 후손으로 안락 서원 원장과 동래 향교 전교 김재연(金載演), 전교 김인규(金仁奎)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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