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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동 파평 윤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343
한자 龍湖洞坡平尹氏世居地
영어의미역 Yongho-dong Papyeong Yun Clan Hometow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영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150여 가구
세거지 용호동 파평 윤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 있는 파평 윤씨 세거지.

[명칭 유래]

용호동은 조선 시대에 분개라고 불렀던 곳이다. 분개가 용호동으로 바뀐 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이곳 염전을 수탈하고 통감부에서 이곳에 ‘시험 제염 용호 출장소(試驗製鹽龍湖出張所)’를 설치한 때를 전후한 시기로, 인근 용당동 이름을 참고하여 큰 염전의 호수라는 뜻으로 이름 지었다. 이 호수에 하늘에 오르지 못한 용이 살았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형성 및 변천]

파평 윤씨(坡平尹氏) 소정공파(昭靖公派) 용호 문중(龍湖門中) 입향조는 윤성룡(尹成龍)이다. 윤성룡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 현곡에서 생활하다가 임진왜란 때 격전지인 부산 다대포 전투에서 죽은 아버지 윤은좌(尹殷佐)의 시신을 거두어 가려고 내려왔다가 서면 용당동[현 남구 용당동]에 기거하였고, 1671년경 용호동에 터를 잡았다. 증손자 윤천백(尹天伯)[1710∼ ?]은 동래부 관리였으며 용호동으로 이주하여 현재 15대를 이어 오고 있다.

입향조 윤성룡의 7대조 소정공(昭靖公)과 고조할아버지 영은공(永隱公)은 용호동 자손들의 현조(顯祖)이다. 윤씨 세계도는 1세 윤란(尹蘭)… 15세 윤곤(尹坤)[소정공(昭靖公)], 16세 윤희제(尹希齊)[한성공(漢城公)], 17세 윤경(尹坰)[백천공(白川公)], 18세 윤흥상(尹興商)[영은공(永隱公)], 19세 윤전(尹傳), 20세 윤극온(尹克溫), 21세 윤은좌(尹殷佐), 22세 윤성룡[용호동 입향조], 23세 윤계탕(尹戒湯), 24세 윤석지(尹碩只), 25세 윤천백(尹天伯), 26세 윤세흥(尹世興), 27세 윤수강(尹守康), 28세 윤인신(尹仁臣), 29세 윤영취(尹英就), 30세 윤도은(尹道殷), 31세 윤기수(尹基守), 32세 윤영봉(尹永鳳), 33세 윤승태(尹承泰), 34세 윤득민(尹得珉)·윤정민(尹庭珉) 등으로 이어진다.

[자연 환경]

용호동의 동남쪽으로 장자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산 너머 바닷가에 이기대가 자리한다. 용마산 줄기가 남북으로 자리 잡고, 동쪽으로 오륙도가 있다.

[현황]

1904년 발간된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에는 용호동파평 윤씨 12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고, 1936년 발간된 『조선의 성(姓)』에는 35가구가 사는 것으로 나타난다. 2013년 현재 파평 윤씨용호동의 대성(大姓)으로 15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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