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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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坡平尹氏 |
영어의미역 | Papyeong Yoonsi|Papyeong Yoo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부산광역시 |
집필자 | 김연지 |
[정의]
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경문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윤씨(尹氏)의 본관은 문헌에 149본으로 전해지지만 파평·해평·남원·칠원·무송·함안·해남·해주·예천·야성·기계·경주·양주·현풍·죽산·고창·평산·영천·여주·신녕·덕산 등 20여 본을 제외한 나머지는 알 수 없다. 해평 윤씨(海平尹氏)·무송 윤씨(茂松尹氏)·칠원 윤씨(漆原尹氏)를 제외한 나머지 본관은 모두 파평 윤씨(坡平尹氏)의 분적종이라고 하며, 그중 남원 윤씨(南原尹氏)·함안 윤씨(咸安尹氏)·야성 윤씨(野城尹氏)·신녕 윤씨(新寧尹氏) 등은 이미 파평 윤씨로 환보(還譜)했다고 한다. 윤씨는 파평 윤씨의 분적종을 포함한 파평계가 전체 윤씨 인구 중에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해평 윤씨이다.
[연원]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고려조에 벽상삼한 익찬공신(壁上三韓翊賛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태사(太師)를 지냈다. 윤신달의 출생에 관하여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893년(진성여왕 7) 파평산(坡平山) 아래 큰 못에 옥함이 떠 있는 것을 윤온(尹媼)이란 할머니가 건져 가지고 와서 열어 보니 기이한 사내아이가 있었다. 할머니는 아이를 거두어 기르고 자기의 성을 윤씨라 하고 파평산 아래 못에서 나왔다 하여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파평 윤씨가 본관을 가지게 된 것은 고려 예종 때의 명장 윤관(尹瓘)[?~1111]이 여진 정벌의 공으로 영평현(鈴平縣) 개국백(開國伯)에 봉해지게 되면서부터이다. 영평은 파평(坡平)의 별호이므로 후손들이 파평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게 되었다.
[입향 경위]
파평 윤씨는 15파로 나누어진다. 그 가운데 부산의 입향은 소정공파에서 비롯된다. 소정공파는 15세손 윤곤(尹坤)에서 시작되며, 윤곤의 현손 명은공(溟隱公) 윤황(尹堭)[19세손]에서 명은공파가 분파된다. 1600년대 중기 윤황의 7세손 윤경문(尹慶文)[26세손]은 경상북도 청송에서 동래로 왔다.
[현황]
1934년 조선 총독부에 발행된 『朝鮮の姓』의 동래군조에는 파평 윤씨가 구포 화명리에 73호, 서면 용호리에 35호가 있다고 하였으며,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파평 윤씨가 우거(寓居)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2000년 인구 조사에서 파평 윤씨는 1만 7284가구에 5만 6620명[남자 2만 8234명, 여자 2만 8386명]이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평 윤씨는 부산진구 당감동, 남구 용호동, 북구 화명동·구포동, 금정구 선동, 강서구 녹산동, 연제구 거제동 등지에 세거지를 이루었으며, 현재는 도시 개발로 적은 호수만 살고 있다.
[관련 유적]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동에 1987년 선동재(仙東齋)를 건립하여 7위의 위패를 모시고 양력 11월 둘째 일요일에 향사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