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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리 압해 정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479
한자 熊川里押解丁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Aphae Jeong Clan in Ungcheon-ri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개설 시기/일시 1534년
세거지 웅천리 압해 정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에 있는 압해 정씨 세거지.

[명칭 유래]

웅천리의 옛 이름은 ‘웅계’이다. 우리말로 곰내라고도 한다. 이곳 주민들에 따르면 거문산 계곡에 곰이 살고 있어서 웅계(熊溪) 또는 곰내라 하였다가 웅천(熊川)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압해 정씨(押解丁氏)는 당나라 사람으로 선종(宣宗) 때 직언을 하다 두 아들과 함께 853년(문선왕 15) 압해도[전라남도 무안군 압해면]에 귀양 온 뒤 신라에 망명한 정덕성(丁德盛)을 시조로 한다. 고려에서 상장군을 지낸 창원파(昌原派)의 정연방(丁衍邦)이 중시조다. 웅천리에 입향조는 정덕손(丁德孫)이다. 정덕손은 세종 대에 문과를 거쳐 직제학 중추부 판사를 지낸 정세영(丁世榮)의 아들로, 어머니는 좌의정을 지낸 반남 박씨(潘南朴氏) 금천군(錦川君) 박은(朴訔)의 딸이다. 정덕손은 20세에 등과하여 청직과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실각으로 조정이 어지러울 때 직언을 하다가 경상북도 예천 군수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이 벼슬을 받지 않고 병을 핑계로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사저에서 은둔하였다.

정덕손은 조선 중종(中宗) 대인 1534년(중종 29) 연고가 없는 웅천리로 입향하였고, 1570년(선조 3) 69세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후 그의 행적이 조정에 알려져 1600년(선조 33) 보국숭록대부에 증직되었다. 또한 1533년(중종 28) 출생한 아들 정필숭(丁弼崇)은 군공주부납송보공장군, 손자 정후인(丁厚仁)은 통정대부, 증손자 정문룡(丁文龍)은 통정대부로 각각 증직되었다. 정덕손의 묘는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 대곡 마을에 있다.

[자연 환경]

웅천리 북쪽에 문래봉[507m]과 함박산[457m]을 잇는 산지가 뻗어 있고, 리의 동쪽 경계부에 함박산에서 아홉산[360m]으로 연결된 산줄기가 있다. 서쪽 경계부에는 거문산[543m]이 자리한다. 거문산문래봉 사이에서 발원한 소하천과 문래봉함박산 사이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남쪽으로 흐르며 합류하여 철마천의 상류를 이룬다. 북서쪽에서 발원한 소하천 중류에 홍연 폭포가 있으며, 홍류동 소류지와 도덕곡 소류지가 축조되어 있다. 소하천이 철마천에 합류하는 주변은 비교적 넓은 평지를 이루어 농경지와 취락이 발달하였다.

[현황]

2013년 현재 웅천리에는 압해 정씨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대곡재(大谷齋)가 있어 음력 10월 첫 일요일에 입향조부터 35대까지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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