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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378
한자 押海丁氏
영어의미역 Aphae Jeongsi|Aphae Jeo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부산광역시
집필자 김연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씨시조 정덕성(丁德盛)
입향시조 정덕손(丁德孫)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502년연표보기 - 정덕손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570년연표보기 - 정덕손 사망
입향 시기/일시 1534년연표보기 - 기장 대곡 마을로 입향
본관 압해 - 전라남도 신안군
입향지 대곡 마을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
세거|집성지 웅천리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세거|집성지 재송동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송동

[정의]

정덕성을 시조로 하고, 정덕손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우리 나라에 현존(現存)하는 정씨(丁氏)는 나주(羅州)·창원(昌原)·영광(靈光)·의성(義城) 등의 4본이 있으나 모두 도시조(都始祖)인 정덕성(丁德盛)의 후손으로 전(傳)하며, 『정씨 대동 종안보(丁氏大同宗案譜)』에는 이들 모든 정씨를 압해 정씨(押海丁氏)로 통일하고 있다. 그러므로 압해(押海)는 곧 우리나라 정씨의 발상지가 되며, 앞의 4본은 모두 동원(同源)으로 그중에서 나주 정씨(羅州丁氏)가 전체 정씨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압해 정씨 외에도 동래에 입향한 정씨는 나주 정씨, 연일 정씨(延日鄭氏), 동래 정씨(東萊鄭氏) 등이 있다.

[연원]

압해 정씨의 시조 정덕성은 원래 중국 당(唐)나라 사람으로 문종(文宗) 때 대승상(大丞相)을 지냈고 무종(武宗) 때 대양군(大陽君)에 봉해졌으며, 선종(宣宗) 때 군국사(軍國事)로 바른말을 간언하다 853년 전라남도 압해도(押海島)에 유배(流配)되어 왔다. 그 후에 사면되었으나 돌아가지 않고 신라에 귀화하여 한국 정씨(丁氏)의 시조가 되었다. 압해 정씨는 후대에 나주 정씨, 영광 정씨, 의성 정씨, 창원 정씨로 분관되었으나 모두 같은 뿌리를 두고 있어 다시 압해 정씨로 통합되어 부른다. 인물로는 정극인(丁克仁)[1401~1481], 정약용(丁若鏞)[1762~1836] 등이 있다.

[입향 경위]

창원파인 정덕손(丁德孫)[1502~1570]은 예천에서 1534년(중종 29) 기장 대곡 마을로 입향하였다. 정덕손은 20세에 등과하여 청요직을 두루 거치다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실각으로 조정이 어지러울 때 직언을 하다 예천 군수로 축출되었다. 이후 사저(私邸)에서 은둔하다 기장으로 이거하여 정착하였다.

[현황]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압해 정씨가 세거(世居)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2000년 인구 조사에서 압해 정씨는 41가구에 128명[남자 78명, 여자 50명]이, 나주 정씨는 1,813가구에 5,954명[남자 3,044명, 여자 2,910명]이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이후에 나주 정씨와 압해 정씨는 합본하였다고 한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해운대구 재송동에서 세거하고 있다.

[관련 유적]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중리 마을에는 압해 정씨 문중의 재실 대곡재(大谷齋)가 있고, 해운대구 재송동에도 장산재(萇山齋)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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