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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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盤松洞雲峰-廣州金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Bansong-dong Unbong-maeul Gwangju Gim Clan Hometow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 운봉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영택 |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 운봉 마을에 있는 광주 김씨 세거지.
[개설]
광주 김씨(廣州金氏)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다섯째 아들인 의성군 김석공의 7세손인 광주군(廣州君) 김녹광(金祿光)을 관조로 한다. 김녹광은 고려 중기 몽골군이 침입할 때 상장군으로 전공을 크게 세워 광주군으로 봉해졌고, 이후 후예들이 광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김녹광의 손자는 문하찬성사 김훤(金喧), 증손자는 안동 부사 김개물(金開物)이다. 7세손 공조 참판 김차문(金次文)이 동래로 입향하여 광주 김씨 동래 문중을 형성하였다.
[명칭 유래]
반송동 운봉 마을은 운봉산[465m] 기슭에 자리 잡아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 운봉산은 반송의 진산으로 옛날 옥황상제 일곱 딸이 내려와 목욕을 하던 연못[운봉사 터가 본래 연못이 있던 자리로 전해짐]이 있었는데,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마다 구름이 산봉우리를 가려서 운봉(雲峰)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신비스러운 영산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담안골로도 불리는데, 이는 산지 사이에 자리한 모양이 마치 담처럼 둘러싸여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반송동 운봉 마을 광주 김씨는 1715년(숙종 41) 동래에서 운봉 마을로 이주하였다. 입향조는 18세손 김진국(金振國)이다. 김진국의 자는 성보(聖輔)고, 임진왜란 때 왜군에 포로가 되어 적지에서 8년 만에 돌아와 유풍 진작과 문교(文敎)를 크게 일으킨 김우정(金禹鼎)[11세손]의 7세손이다. 그는 선조들이 임진왜란으로 거의 순절 또는 몰살당하자 동래 온천동으로 옮겨 와 자식 8명을 두었다. 1775년(영조 51)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인은 여산 송씨(礪山宋氏) 송참인(宋參仁)의 딸이다. 종문의 제도를 손질하여 가통을 이루고 동래 지역 10촌 이내 약 120여 가구라는 성세를 이루는 명문 세거지를 이루었다.
[현황]
『부산 지역 동성 마을 조사 보고서』[1976]에 “운봉 마을에는 29호의 광주 김씨의 동성 마을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13년 현재 반송동 운봉 마을에는 광주 김씨 10여 가구가 살며, 선동과 양산 등지에 3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운봉 마을에 광주 김씨 종중 해수공파 진국공 문회의 재실인 운봉사(雲峰祠)가 있다. 운봉사는 1984년에 건립했고, 입향조 김진국을 비롯한 47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향사는 음력 10월 첫 일요일이며, 후손 100여 명이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