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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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菉山洞生谷-盆城裵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Noksan-dong Bunseong Bae Ancestral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생곡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기 |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는 분성 배씨 세거지.
[개설]
배씨(裵氏)는 신라 6부 촌장 중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 지타(祗陀)를 원조로 하였으나 고증할 자료가 전하지 않아 고려 개국 공신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분성 배씨(盆城裵氏)의 시조 배원룡(裵元龍)은 배현경의 4세손인 가락군(駕洛君) 배사혁(裵斯革)의 큰아들로 공민왕 때 병부 상서 겸 도원수로 분성군(盆城君)에 봉해졌다. 가문의 인물로 분성군 배원룡의 큰아들 배서(裵署)가 감무 어사(監務御使) 전객령(典客令)을 지냈고, 둘째 아들 배종주(裵宗柱)는 전리 판서(典理判書), 배서의 아들 배단(裵端)은 평장사(平章事)에 오르는 등 가문의 명성을 떨쳤다.
[명칭 유래]
생곡(生谷) 마을의 옛 이름은 생활리(生活里)로 남쪽 봉화산(烽火山)의 본래 이름인 성화례산(省火禮山)에서 ‘성화례’가 변하여 ‘생활리’가 되었다고 전한다. 중곡리와 병합하며 생곡리가 되었고, 그 명칭을 따서 생곡 마을이 되었다.
[형성 및 변천]
녹산동 생곡 마을 분성 배씨 세거지는 1750년경 분성군 배원룡의 18세손인 장사랑(將仕郞) 배민언(裵敏言)의 5세손 18세 배진해(裵晉楷)[1715~1775]가 탑동(塔洞)에서 생활(生活) 마을로 와서 정착하여 입향조가 되며 형성되었다. 배진해의 후손 22세 배정문(裵禎紋)이 유학자로서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지냈고, 배정문의 손자 24세 배종택(裵鍾澤)이 탁지부(度支部) 주사(主事)로 근무하면서 을축년 홍수 때 바닷가 백성들을 구하여 나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배종택의 조카 25세 배문한(裵文漢)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로마교황청에서 신학 박사를 받고 수원 교구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근무 중 동해안에서 물에 빠진 교우를 구하고 순교한 뒤 성인으로 추대되어 수원 천주교 성인 묘역에 안장되었다.
[자연 환경]
생곡 마을 남쪽에는 봉화산이 솟아 있고, 봉화산에서 연결된 천마산이 북서쪽으로 감싸고 있으며 북동쪽은 트여 있다. 봉화산과 천마산 사이의 남서쪽 산지인 한적골에서 흘러내린 생곡천(生谷川)이 북동쪽으로 흘러 지사천(智士川)에 합류한다. 마을은 봉화산의 북쪽 비탈면에 자리한다.
[현황]
녹산동 생곡 마을 분성 배씨는 생곡 마을에 25가구 넘게 살았으나, 2013년 현재는 20가구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