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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동 월성 박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338
한자 安樂洞月城朴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Wolseong Bak Clan in Alrak-dong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로 99-5[안락동 산19-3]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승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15가구
세거지 안락동 월성 박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 산19-3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에 있는 월성 박씨 세거지.

[형성 및 변천]

월성 박씨(月城朴氏)는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여덟째 아들로 월성 대군(月城大君)에 봉해진 박언의(朴彦儀)를 시조로 한다. 안락동 월성 박씨는 현감공파(縣監公派) 동래 문중으로, 현감공파는 통훈대부(通訓大夫) 당진 현감 박숭겸(朴崇謙)의 후손을 말한다. 16세기 초 박숭겸의 아들인 어모장군(禦侮將軍) 박건(朴建)이 연산군의 학정을 피하여 동래에 입향하였다. 이후 그가 급서하고 두 아들이 3년간 시묘한 후 계속 살다가 세거지를 형성하였다.

현감공파 동래 문중의 내력은 월성 대군 13세손 박구(朴龜)와 14세손 박간(朴幹), 15세손 박휘(朴徽), 16세손 박숭겸(朴崇謙)으로 내려온다. 박구는 고려 후기 중군 사정과 부령을 지냈으나 고려가 망하자 인천 장아산으로 은신한 후 그곳 정상에 망경대를 세우고 삭망일에 개경을 향해 통곡하였다는 충신이다. 박간은 조선 태종(太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대사성과 이조 참판, 판의금부사,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월성 박씨 가문은 동래에 입향한 후 어모장군, 절충장군(折衝將軍), 별시위(別侍衛), 찰방 등을 역임한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그 가운데 훈련원 부정 박경립(朴擎立)과 그의 아들 절충장군 중추부사(中樞府使) 박득화(朴得和), 박경립의 손자 가선대부(嘉善大夫) 용양위(龍驤衛) 절충장군 박진성(朴震成)이 잇달아 동래 향안에 올라 향반으로서 자리를 굳히고 부산 지역 유림의 요직을 차지하였다. 특히 박경립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무 원종공신에 올랐던 인물이다. 또 내주 축성비(萊州築城碑) 기문(紀文)에 4명이 공사 임원으로 참가한 것이 확인되는데, 경상 우후 박민성(朴敏聖), 좌수 박취하(朴就夏), 일소장 박시한(朴始漢), 평구도 찰방 박계륵이 그들이다.

[자연 환경]

동래구 안락동의 북서쪽은 마안산과 접하는 동래읍성 터 동쪽에 해당하는데, 이곳 산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평지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에서는 수영강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남쪽에서는 온천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등 이곳은 하천의 합류 지점에 해당한다. 매년 홍수 피해가 잦았으나 제방이 축조된 후 주거지로 이용되고 있다.

[현황]

번성할 때는 40여 가구가 살았으나, 2013년 현재 화전 연립 주택, 화전 아파트 등지에서 입향조의 19세손까지 15여 가구가 살고 있다. 동래 문중은 재실인 화전재(花田齋)에서 1년에 한 번 음력 9월 20일에 제사를 지낸다.

[참고문헌]
  • 화전재 내부 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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