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402 |
---|---|
한자 | 江東洞北亭-丹陽禹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Gangdong-dong Danyang U Ancestral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 북정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기 |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에 있는 단양 우씨 세거지.
[개설]
우씨(禹氏)는 중국에서 생긴 성씨로,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후손이라 하지만 문헌이 전하지 않아 그 선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우현(禹玄)이 고려 전기 중국에서 건너와 단양(丹陽)에 정착하였으며, 그 후 우현의 l0세손 우현보(禹玄寶)가 단양 부원군에 봉하여져 우현을 득관조(得貫祖)로 하고 본관을 단양으로 하였다. 문헌에는 단양 외에 예안(禮安)·영천(榮川)·강주(剛州) 등 4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단양 우씨만이 전한다.
[명칭 유래]
입향조인 우예적(禹禮績)이 만년에 후학들에게 글을 가르쳐 덕화(德化)하였다고 하여 이곳의 명칭을 덕도(德島)라고 하였다. 덕도 북정 마을은 마을 내 덕도산의 북쪽 자락에 위치하며, 예로부터 큰 정자가 있어 북정이라 불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순조(純祖) 대인 1760년대 후반 단양 우씨 시조 우현(禹玄)의 19세손 통정대부 우예적이 영산(靈山)에서 김해 남포(南浦) 외딴섬에 옮겨 와 정착해 살면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이 집안의 내력은 시조 우현이 고려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내고, 2세 전법령(典法令) 우신(禹臣), 3세 양주 목사 우인가(禹仁可), 4세 관찰사 우잉순(禹仍順), 5세 도사(都事) 우경절(禹慶節), 6세 문하시중 우중대(禹仲大), 7세 문하시중 우천석(禹天錫), 8세 밀직사 좌대언(左代言) 우칭(禹偁)과 고려 유학의 거유(巨儒) 역동 선생(易東先生) 우탁(禹倬), 9세 이조 판서 우국진(禹國珍), 10세 형조 판서 우신(禹愼), 11세 성균관 진사 우사명(禹思明) 등 고려 8대 명문 집안으로 올랐다.
조선 왕조가 들어선 뒤에도 12세 도사 우승하(禹勝河), 13세 이조 참의 우현규(禹玄圭), 14세 진사 우세훈(禹世勳), 15세 장예원 습독(掌隸院習讀) 우종인(禹宗仁), 19세 우예적, 20세 가선대부(嘉善大夫) 우순단(禹舜壇) 등 많은 인재를 배출한 명문 집안이다.
[자연 환경]
입향조가 들어올 당시에는 김해 남포의 외딴섬이었으나 1800년대 후반부터 주위의 바다가 농토로 개발되면서 차츰 섬의 영역이 넓어지고 들판에 산이 만들어지고, 주위의 하천에 다리가 놓여서 지금은 왕복 4차선으로 육지와 닿아 있다. 지리적으로 서낙동강과 평강천 사이에 위치한 삼각주상의 마을로 남쪽으로는 덕도산[38.3m]이 자리 잡고, 마을의 북쪽과 서쪽으로 서낙동강이 남류하고 있다. 마을 주변에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현황]
강동동 북정 마을 단양 우씨 세거지는 비록 대단위 세거지는 아니지만 250년 가까이 내려오면서 한창 번성할 때에는 20여 가구가 넘게 살았다. 젊은 세대들이 직장 등으로 외지로 진출함에 따라 2013년 현재는 10여 가구 남짓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