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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김해 김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429
한자 佑洞金海金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Gimhae Gim clan in U-dong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영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15여 가구
개설 시기/일시 1608년 - 김명배 입향
세거지 우동 김해 김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개설]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가락계 김씨의 종통으로 가락국의 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한다. 후손들이 번창함에 따라 김수로왕의 13세손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하여 대강 148파로 분파되며, 그 가운데 김유신의 직계 종파는 고려 때의 51세손 김목경(金牧卿)을 증조로 하는 경파(京派)[일명 금령군파(金寧君派)]와 김익경(金益卿)을 증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일명 감무공파(監務公派)], 그리고 49세손 김관(金管)을 증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가 주류를 이룬다.

부산에 세거하는 김해 김씨는 삼현파이다. 이 파는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라고도 하는데, 김관이 고려 후기 판도판서 벼슬을 하였기 때문에 그의 자손들을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삼현파는 5세 김극일(金克一), 7세 김일손(金馹孫), 8세 김대유(金大有) 등 한 집안에서 4대에 걸쳐 세 명현이 나왔다 하여 불린 이름이다.

[명칭 유래]

우동(佑洞)이란 지명은 조선 시대 사료에서도 나타난다. 당시 지명은 지금과 달리 우(右) 자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좌동의 대칭 지명이었음을 보여 준다. 우동춘천의 우안(右岸)에 위치한 데서 비롯되었다.

[형성 및 변천]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로 김일손(金馹孫)이 처형되자 김해 김씨 삼현파 일족은 화를 면하기 위하여 산간벽지로 들어갔다. 1608년 한림공용파(翰林公勇派) 김명배(金鳴背)[11세손]가 청도에서 동래 동하면 월전골(月田谷)[달밭골]로 이거하여 입향조가 되었다. 간비오산 못안 마을 앞 설븐 고개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김해 김씨 여러 부녀자가 순절을 지키다 숨진 한 맺힌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자연 환경]

우동 북쪽에 장산[634m]을 중심으로 산지가 발달하였으며 이곳에서 춘천이 발원한다. 남쪽은 수영만과 연한다. 춘천은 장산 계곡에서 발원하여 양운 폭포-폭포사-장원사-대천 공원 등 절골을 거쳐 남쪽으로 흐르다가 복개 구간을 거쳐 동백섬으로 흘러든다. 동백섬은 다리미를 닮았다 하여 ‘다리미 섬’이라고도 부른다. 퇴적 작용으로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는 육계도다.

[현황]

한때 우동에는 김해 김씨 한림공용파 30~50여 가구가 동족 마을을 이루었으나 2013년 현재는 15여 가구가 살고 있다. 부산 전역에 40~50여 가구가 거주한다고 알려져 있다. 문중 재실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달맞이길 62-3의 한신 빌딩 5층에 있다. 재실에 한림공용파 조상 위패 20위[40분]을 모시고 매년 음력 10월 첫째 일요일에 제향을 올리는데, 후손 60여 명이 참석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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