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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산리 독점 마을 부여 백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3013
한자 達山里-夫餘白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Buyeo Baek Clan in Dalsan-ri Dokjeom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 독점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현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1가구
세거지 달산리 독점 마을 부여 백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 독점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에 있는 부여 백씨 세거지.

[명칭 유래]

달산리에 있는 독점[陶店] 마을은 옹기를 파는 가게라는 뜻의 이름으로, 이곳에서 도공들이 옹기를 만들어 장사꾼들에게 팔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 그대로 읽으면 ‘도점’이 되지만 현재도 독점으로 부른다.

[형성 및 변천]

부여 백씨(夫餘白氏)는 780년(혜공왕 16) 당(唐)나라에서 신라로 귀화한 백우경(白宇經)을 시조로 한다. 중시조는 백창직(白昌稷)이며, 고려 숙종(肅宗) 때 부여공으로 봉군된 6세손 백영신(白英臣)을 파조로 한다. 그러나 파조에 대한 기록이 소실되어 실제 파보는 11세 백신원(白信元)으로부터 형성되었다. 여문(汝文) 백수해(白受海)가 1592년경 지금의 기장군 철마 지역으로 입향하였다. 백수해의 아들 백이청(白以淸)에서부터 백최광(白最光)→ 백세화(白世化)→ 백용채(白龍彩)로 이어졌다. 백용채의 두 아들 가운데 맏아들 백치상(白致祥)은 네 아들을 두었다. 첫째가 백유문(白有文)으로, 19세기 전반 정관읍 달산리 독점 마을로 이거하였다. 다만 백유문은 후손이 없어 동생 백수문(白受文)의 아들이 양자로 들어가 후사를 이었다.

[자연 환경]

달산리 독점 마을 남쪽에는 달음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좌광천이 흐르며, 하천 주변으로 평지가 나타난다.

[현황]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달산리 독점 마을 부여 백씨도 모두 흩어지고 2013년 현재는 한 집만이 살고 있다. 부여 백씨 기장 문중 재실은 여문재(汝文齋)로, 기장군 일광면 횡계리에 있다. 대지는 1,256.20㎡[380평]이며, 팔작지붕 철근 콘크리트 한옥 양식이다. 건립일은 1989년으로, 54위의 위패를 모시고 10월 셋째 일요일에 묘사를 지낸다.

[참고문헌]
  • 인터뷰(부여 백씨 문중 백상철, 2013.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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