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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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蓮龜里夫餘白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Buyeo Baek Clan in Yeongu-r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현라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에 있는 부여 백씨 세거지.
[명칭 유래]
연구리는 이곳의 연봉리(蓮峰里) 마을과 구림리(龜林里) 마을이 합쳐지며 만들어진 합성 지명이다. 연봉리는 마을의 산이 연꽃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구림은 구칠재에서 따온 명칭이라고 한다. 또한 이곳 주민들은 옛날 연구리 본동에 연못[蓮池]이 있었고, 이곳에 거북이 살아서 유래된 지명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부여 백씨(夫餘白氏)는 780년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화한 백우경(白宇經)을 시조로 한다. 중시조는 백창직(白昌稷)이다. 고려 숙종(肅宗) 때 부여공으로 봉군된 6세손 백영신(白英臣)을 파조로 하나 파조에 대한 기록이 소실되어 실제 파보는 11세손 백신원(白信元)으로부터 형성되었다. 여문(汝文) 백수해(白受海)가 1592년경 현재의 기장군 철마면 지역에 입향하였다. 백수해의 형은 백수회(白受檜)로, 사후인 1717년(숙종 43) 숙종으로부터 ‘송담(松潭)’ 액호(額號)를 하사받았다. 백수회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의 공을 인정받아 1670년(현종 11) 통정대부 호조 참의에 추증되고 충신 정려에 명해진 인물이다. 지금도 양산 가촌에 건립된 송담 서원에서 향사하고 있다.
[자연 환경]
연구리 동쪽에는 아홉산[360m]에서 뻗은 산줄기가 있고, 서쪽으로는 북쪽에서 발원해 남쪽의 이곡천에 유입하는 소하천이 있다. 전체 지형은 북동쪽은 높고 서쪽으로는 저지대가 나타난다.
[현황]
2013년 현재 연구리에는 부여 백씨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부여 백씨 기장 문중 재실은 여문재(汝文齋)로, 기장군 일광면 횡계리에 있다. 대지는 1,256.20㎡[380평]이며, 팔작지붕 철근 콘크리트 한옥 양식이다. 건립일은 1989년이며, 위패는 54위로 10월 셋째 일요일에 묘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