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30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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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盤龍里夫餘白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the Baek Clan in Banyong-ri Buyeo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현라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에 있는 부여 백씨 세거지.
[명칭 유래]
반룡은 장안천과 관련한 지명으로 보인다. 장안천은 옛날에 ‘건천(乾川)’, ‘용천(龍川)’이라 하였다. ‘건천’은 ‘마르내’이고 ‘용천’은 ‘미리내’이다. 모두 큰 내 또는 으뜸가는 내라는 뜻이다. 이에 마을이 장안천(龍川)의 굴곡 지점에 위치하여 ‘선회할 반(盤)’ 자와 ‘용 룡(龍)’ 자를 써서 반룡(盤龍)이 되었다고 한다. 꼬불꼬불 반곡(盤曲)된 큰 내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또한 장안천 중류의 용수담(龍首潭)이란 소(沼)와 관련된 지명으로 보기도 한다.
[형성 및 변천]
부여 백씨(夫餘白氏)는 780년(혜공왕 16) 당(唐)나라에서 신라로 귀화한 백우경(白宇經)을 시조로 한다. 중시조는 백창직(白昌稷)이며, 고려 숙종(肅宗) 때 부여공으로 봉군된 6세손 백영신(白英臣)을 파조로 한다. 그러나 파조에 대한 기록이 소실되어 실제 파보는 11세손 백신원(白信元)으로부터 형성되었다. 여문(汝文) 백수해(白受海)가 1592년경 지금의 기장군 철마 지역에 입향하였다. 백수해의 아들 백이청(白以淸)에서부터 백최광(白最光)→ 백세화(白世化)→ 백용채(白龍彩)로 이어졌다. 백용채는 아들을 두 명 두었는데, 첫째인 백치상(白致祥)의 아들 대에 와서 기장 여러 곳으로 이거하였다. 백치상의 아들 가운데 넷째 아들인 백회문(白繪文)이 19세기 전반 장안읍 반룡리로 이거하였다.
[자연 환경]
반룡리 서쪽에 방모산[154m]을 중심으로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장안면의 서북쪽 산지에서 발원한 용소천이 반룡리 북쪽에서 장안천에 합류하며 동남쪽으로 흐른다. 산지는 대부분 저산성이며, 장안천 주변에 평지가 발달하여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반룡리에는 부여 백씨 1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부여 백씨 기장 문중 재실은 여문재(汝文齋)로, 기장군 일광면 횡계리에 있다. 대지는 1,256.20㎡[380평]이며, 팔작지붕 철근 콘크리트 한옥 양식이다. 건립일은 1989년으로, 54위의 위패를 모시고 10월 셋째 일요일에 묘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