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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동 분절 마을 함안 조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453
한자 菉山洞粉切-咸安趙氏世居地
영어의미역 Noksan-dong Hanan Jo Ancestral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분절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상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10여 가구
세거지 녹산동 분절 마을 함안 조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분절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었던 함안 조씨 세거지.

[개설]

함안 조씨(咸安趙氏) 시조인 조정(趙鼎)은 당나라 사람으로 두 동생 조부(趙釜)와 조당(趙鐺)을 데리고 절강성(浙江省) 사람인 장길(張吉)과 함께 고려에 귀화하였다. 이후 왕건(王建)을 도와 고창성에서 견훤(甄萱)을 대파하고 공을 세워 개국 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으로 대장군 도원수에 올랐다. 그 후 후손들이 조정(趙鼎)을 시조로 함안(咸安)에 정착한 후 본관으로 삼고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조정의 아들인 2세 조간(趙幹)은 중랑장을 지냈으며, 손자 3세 조단석(趙丹碩)은 장군으로서 원윤(元尹)을 하였다. 4세 조시우(趙時雨)는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령장(都領將)을 지냈으며, 그의 동생 조영준(趙英俊)은 형부 상서를 하였다. 5세 조석화(趙錫和)는 군보랑(軍保郞)을 하였고, 6세 조열(趙悅)은 광정대부(匡靖大夫) 정당문학을 지냈다. 7세 조희(趙禧)는 밀직사 삼사 좌윤을 하고, 8세 조지흥(趙之興)은 문과 급제하여 계림부(鷄林府) 참군을 지냈다. 9세 조천계(趙天啓)는 봉익대부(奉翊大夫)로 판도판서를 하였으며, 10세 조열(趙悅)은 가선대부로 공조 전서에 올랐다.

11세 조안(趙安)은 재능이 영특하였으나 모든 벼슬을 불사(不仕)하고 일찍 죽으니 나라에서 사복시 정을 추증하였다. 12세 조여(趙旅)는 단종(端宗) 때 급제하여 명망이 높았으나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 함안 백이산으로 들어간 생육신(生六臣)이다. 13세 조동호(趙銅虎)는 진사, 통정대부로 진산군수를 하였으며, 14세 조순(趙舜)은 문과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 직제학, 정부 사인, 도승지, 대사헌, 충청 절도사, 경기 관찰사, 개성 유수, 가선대부 이조 참판 겸 동지의금부사를 지냈으며, 또 동생 조연(趙淵)은 진사, 의금부 경력을 지냈다. 15세 조정언(趙庭彦)은 부사직을 지냈고, 16세 조지(趙址)는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내는 등 명문 가문으로 이름을 드러내었다.

[명칭 유래]

녹산동 분절 마을 명칭은 옥녀봉(玉女峰)과 관련이 있다. 옥녀봉에는 풍수적 형세와 관련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옥녀(玉女)가 머리를 풀고 앉아 비단 병풍[금병산]을 치고 마을 앞 우물에 얼굴을 비추며 마을 건너 빗골[미음 마을 쪽 즐골]의 빗으로 머리를 빗는다는 것이다. 분절은 옥녀가 머리 빗질을 한다는 의미로 처음 한자로 표기할 때 가루 분(粉)에 빗 즐(櫛) 자를 써 ‘분즐(粉櫛)’로 썼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분즐이 분절(粉切)로 바뀌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18세 조함기(趙咸岐)는 면진군 조면도의 다섯째 아들로, 1650년경 함안에서 김해군 태야면 분절리로 이거하여 함안 조씨 녹산 입향조가 되었다. 그의 손자 20세 조하(趙榎)가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21세 조영백(趙榮伯)은 황산도(黃山道) 찰방을 지냈다. 22세 조중후(趙重垕)는 지혜와 재능이 뛰어났으나 20세에 요절하였다. 23세 조사진(趙思鎭), 24세 조영(趙穎), 24세 조기식(趙基植) 등으로 이어진다. 이후 옆 마을인 세산 마을로 이거하면서 360여 년간 세거지를 이루고 있다.

[자연 환경]

녹산동 분절 마을 북서쪽의 옥녀봉을 중심으로 산줄기가 북쪽과 서쪽으로 뻗어 있고, 남동쪽에는 평지가 펼쳐져 있다. 서쪽에는 장유와 연결된 태정 고개가 있으며, 마을의 동남쪽 산자락에는 분절 저수지가 있다.

[현황]

한창 집안이 번성할 때는 녹산동 분절 마을세산 마을함안 조씨 40~50가구 정도가 살았다. 그러나 분절 마을이 미음 지구 산업 단지에 수용되면서 젊은이들이 직장과 사업 따라 외지로 나가, 2013년 현재 세산 마을함안 조씨 10여 가구만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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