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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동 전주 이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421
한자 巨堤洞全州李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Jeonju Yi clan in Geoje-dong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승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약 20가구
개설 시기/일시 1826년 - 이기엽이 세거 시작
세거지 거제동 전주 이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에 있는 전주 이씨 세거지.

[개설]

전주 이씨(全州李氏)의 시조는 이한(李翰)이다. 이한은 신라 태종 무열왕의 10세손 김은의의 딸과 결혼하였고, 문성왕 때 사공(司空)을 지냈다. 이후 조선 태종의 첫째 아들인 양녕 대군(讓寧大君) 이제(李禔)를 중시조로 하여 양녕대군파를 형성하였다.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 2동에 정착해 사는 전주 이씨는 전주 이씨 양녕대군파 고성파보 거벌 문중으로 불린다.

[명칭 유래]

거제(巨堤)라는 이름은 연제구 거제동에 축조된 큰 제방에서 비롯되었다. 조선 시대의 지명은 거벌리(居伐里)였다. 거벌(巨伐)로도 표기하였는데, ‘큰 벌’을 뜻하는 평야를 의미한다. 지금의 연제구 거제동연산동 일대에 펼쳐 있는 넓은 들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상습 침수 지역이었던 이곳에 제방을 쌓으면서 거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거제동 전주 이씨 세거지(巨堤洞全州李氏世居地)는 입향조인 이종철(李宗喆)의 큰아들인 이기엽(李基燁)이 1826년에 고성에서 부산 동래의 거벌리로 들어오면서 형성되었다. 이종철의 선대 내력은 다음과 같다. 양녕 대군은 총 10남 15녀를 두었는데 큰아들 순성군, 순성군의 둘째 아들 헌양군 이사조(李嗣租), 헌양군의 셋째 아들 완구정 이소남(李小南), 완구정의 후손 이옥견(李玉見), 그리고 이옥견의 후손이 이종철이다.

이기엽은 1806년(순조 6)에 태어났다. 이기엽이 20세 되는 해인 1826년에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하여 부산 거벌리로 왔다고 한다. 이기엽의 묘는 함안 정태동에 있고, 김영백의 딸인 부인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고성 삼봉리에 있다. 이기엽의 큰아들인 이치일(李致日)[1826년생]과 그의 부인 묘도 고성에 있다. 이기엽의 큰아들 이치일의 계자(系子)인 이병용(李丙龍)[1860년생] 때부터 묘를 거제 지역에 조성하였다.

[자연 환경]

서쪽에 금정봉[399m]과 금용산[150m], 화지산[200m]을 잇는 산지가 연제구 거제동을 에워싸고 있다. 산기슭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동쪽으로 흘러 온천천으로 유입하며 유역에 넓은 평지를 이룬다. 대부분 주거지로 이용되고 있다.

[현황]

1980년대 중·후반까지 도심에서는 드물게 50여 가구가 세거지를 이루었던 거벌 문중은 시대상에 따라 많이 흩어져 2013년 현재는 약 20가구가 거주한다. 모두 모여 제사를 지내던 이른바 큰집이 전통 가옥의 형태로 연제구 거제 2동에 있었으나, 재개발로 지금은 없어지고 현재는 따로 재실이 없다. 옛 문서 등은 동래 향교에 대부분 기증된 상태로 확인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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