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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동 식만 마을 김해 김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403
한자 駕洛洞食滿-金海金氏世居地
영어의미역 Gangdong-dong Gimhae Gim Ancestral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식만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상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15가구
세거지 가락동 식만 마을 김해 김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식만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개설]

김해 김씨(金海金氏) 도총관(都摠管) 경신파(敬臣派)는 김수로왕의 후손으로 고려 때 도총관(都摠管)을 지낸 김경신(金敬臣)을 중조(中祖)로 모시는 계파이다. 이 집안은 고려 때 광정대부 첨의평리 상호군 영부사(匡靖大夫僉議評理上護軍領府事)를 지낸 2세 김원현(金元鉉)을 비롯하여 4세 축은(築隱) 김방려(金方礪), 6세 서강(西岡) 김계금(金係錦), 퇴은(退隱) 김계희(金係熙), 8세 담헌(淡軒) 김극검(金克儉)을 비롯하여 김관(金寬), 김유신(金庾信) 등 명현(名賢)이 배출된 명문 세가이다.

[명칭 유래]

이 지역의 땅이 기름져 쌀의 생산량과 질이 좋아 밥맛이 좋고 밥그릇에 가득 찬다 하여 식만(食滿)으로 불렀다고 한다. ‘밥 만개’라고도 불렀다. 가난한 사람도 이곳에 오면 먹는 것만큼은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으로 추정한다.

[형성 및 변천]

현재의 강서구 가락동 식만리에 고려 도총관의 18세손 통정대부 김수성(金守成)이 1820년경 식만리로 와서 정착하면서 지금까지 약 200여 년간 세거지를 이루어 왔다. 묘소와 제실은 강서구 강동동 덕계 마을에 있는데, 김수성의 할아버지 김원현(金元絃)과 그의 아들 김순생(金荀生) 등 3대의 묘를 찾았다고 한다.

[자연 환경]

가락동 식만 마을 북쪽에는 시만 마을과 경계를 흐르는 소하천이 동으로 흘러 서낙동강에 합류하고, 동쪽으로는 서낙동강이 흐르며, 서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강동동중사도가 자리한다. 마을 동쪽 서낙동강변에는 제방이 축조되어 있으며, 취락은 제방 안쪽에 식만 마을이 있는 지역은 넓은 평지가 나타난다.

[현황]

강서구 가락동 식만 마을에서 김해 김씨 고려 도총공파 문중이 한창 번성할 때에는 20~30여 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젊은이들이 객지로 나가고 2013년 현재는 15가구 남짓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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