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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오산 마을 동래 정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531
한자 中洞梧山-東萊鄭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Dongrae Jeong Clan in Jung-dong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영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10여 가구
세거지 중동 오산 마을 동래 정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에 있는 동래 정씨 세거지.

[개설]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본래 신라 6부촌의 진지촌장(珍支村長) 지백호(智白虎)의 후손들이다. 『경신보(庚申譜)』 총록에 따르면 32년(유리왕 3) 지백호가 정씨(鄭氏)로 사성(賜姓)하여 경주를 본관으로 하다가 뒤에 동래로 분적하였다고 한다. 안일 호장이었던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보윤 호장을 지냈던 정지원(鄭之遠)을 중시조로 기세(起世)하고 있다. 정지원의 아들 정문도(鄭文道)도 안일 호장을 역임하였다. 정문도의 묘소는 부산의 명산으로 이름 높은 화지산(華池山) 동래 정씨 사당인 정묘사[화지사]에 있다.

정문도의 아들인 정목(鄭穆) 대에 고려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정항(鄭沆)정서(鄭敍) 대에 오면서 집안이 현달하였다. 후손들이 동래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파명을 살펴보면 크게 교서랑공파와 첨사공파로 나누고, 적게는 교서랑공파에 전서공파, 설학재공파, 문경공파, 창의공파, 평리공파, 참판공파로, 첨사공파에 호군공파, 윤창파, 수찬공파, 직제학공파, 참봉공파, 대호군공파, 호장공파로 구분된다.

[명칭 유래]

원래는 봉림(鳳林) 마을로 불렸는데 이후 오산(梧山) 마을로 개칭되었다고 전한다. 오산 마을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하는데, 먼저 풍수지리설에 따라 이곳 지형이 오동잎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다음으로는 오동나무가 많아서 머구실[오동나무를 뜻하는 사투리]로 불리다가 오산이 되었다고도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임진왜란으로 동래가 잿더미가 되자 정선문(鄭善文)[17세]이 동래 거제에서 해운대 중동으로 이거하여 입향하여 동래 정씨 호장공파(戶長公派) 해운대 종중 입향조가 되었다. 1993년 해운대 종중 재실인 귀산재(貴山齋)를 문중 산과 논밭이 있는 일광면 회룡 마을에 건립하였다.

[자연 환경]

오산 마을은 북쪽으로는 춘천[대천으로도 부름]이 지나며, 북동쪽으로는 부흥봉광어곡에서 이어진 산지가 있고, 남동쪽으로는 와우산의 줄기와 맞닿아 있다. 마을 내애는 본래 오동잎 형상의 작은 언덕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도시화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현황]

일제 강점기 중동에는 동래 정씨 40여 가구가 살았으나 2013년 현재는 동래 정씨 호장공파 후손 10여 가구가 살고, 인근 우동에 10여 가구가 산다. 귀산재에는 위패 21위[44분]을 봉안하고 매년 음력 10월 15일에 향사를 지내며, 참석자는 100여 명이다. 동래 정씨 호장공파 해운대 종중 대표는 정규철[해운대구 거주]이다.

[참고문헌]
  • 『성씨의 고향』(중앙일보사, 1989)
  • 인터뷰(동래 정씨 호장공파 해운대 종중 대표 정규철, 2013. 12. 17)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4.02 서차 수정 윤창파, 호군공파 -> 호군공파, 윤창파
이용자 의견
정** 개설의 끝부분에서 "첨사공파에 윤창파, 호군공파, 수찬공파, 직제학공파, 참봉공파, 대호군공파, 호장공파로 구분된다."라고 하였는데 윤창파와 호군공파의 서차를 바꾸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오류의 기원은 중앙일보사에서 편낸 <성씨의 고향>이라는 책입니다. 동래정씨 을미보(1655), 병신보(1716), 이후 모든 동래정씨족보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 답변
  • 부산역사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소중한 의견과 족보 등을 검토하여 해당 서차를 수정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이용 부탁드립니다.
201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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