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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동 밀양 손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358
한자 萬德洞密陽孫氏世居地
영어의미역 Mandeog Sagi Milyang Son Clan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사기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백이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7가구
세거지 만덕동 밀양 손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사기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에 있는 밀양 손씨 세거지.

[개설]

밀양 손씨(密陽孫氏)는 신라 흥덕왕 때의 효자로 유명한 손순(孫順)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손순은 신라 개국 당시 6부 촌장의 한 사람인 대수촌장 구례마(俱禮馬)의 후손이다. 성씨 손(孫)은 구례마가 받았다. 손순경주 모량리 출신으로, 지극한 효성으로 왕에게까지 알려져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고 문효라는 시호가 주어졌다. 손순의 이야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 5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9권, 『명심보감(明心寶鑑)』 효행 편에 실려 있다. 손순 유허비가 경상북도 기념물 제1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손순의 손자 손익감(孫翼減)이 관직에서 공을 세워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지면서 후손이 밀양을 본관으로 삼고 손순을 시조로 받들었다. 밀양 손씨 중시조는 고려 건국 공신으로 광리군(廣理君)에 책봉된 손긍(孫兢)이다.

[명칭 유래]

만덕동 사기 마을은 글자 뜻대로 절[寺]의 터[基]가 있던 마을이다. 고려 시대 만덕사가 있어 생겨난 지명으로 전한다.

[형성 및 변천]

밀양 손씨 탁공파는 15세기 전반 초읍(草邑)으로 들어와 살았는데, 입향조는 손구(孫龜)다. 초읍 문중에서 일부 세대가 18세기 후반 현 북구 만덕동 사기 마을로 들어왔다. 지금도 만덕 문중은 초읍 문중 소속이며, 초읍에 재실이 있다. 사기 마을에 정착한 동기는 알 수 없다.

[자연 환경]

만덕동 사기 마을은 고려 시대 만덕사가 있던 곳으로, 만덕사지(萬德寺址)는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다. 절터를 중심으로 남쪽과 서쪽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조선 시대 동래로 넘어가던 만덕 고갯길의 시발지로서 마을 앞에 금정산성 남문 쪽에서 흘러온 만덕천이 있고, 마을 뒤로 상학산 상계봉이 배산으로 있다. 마을 서쪽을 가로막은 용을산과 만덕사지의 안산인 비룡산이 남쪽의 정면에 솟아 있어 절터로서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현황]

1975년 남해안 고속 도로가 개통되면서 뚫린 만덕 터널이 만덕사지 입구를 차단하여 문화재인 만덕사지 당간 지주가 도로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다. 2013년 현재 북구 만덕동 사기 마을에는 밀양 손씨 문중의 옛 집들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나 밀양 손씨는 거의 대부분 외지로 이주해 가고 현재 7가구만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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