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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368
한자 盤如洞東萊鄭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Dongrae Jeong Clan in Banyeo-dong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영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17가구
세거지 반여동 동래 정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에 있는 동래 정씨 세거지.

[개설]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본래 신라 6부촌의 진지촌장(珍支村長) 지백호(智白虎)의 후손이다. 『경신보(庚申譜)』 총록에 따르면 32년(신라 유리왕 3) 지백호가 정씨(鄭氏)로 사성(賜姓)한 후 경주를 본관으로 하다 뒤에 동래로 분적하였다고 한다. 시조 정회문(鄭會文)은 안일 호장(安逸戶長)을 지냈다. 그 뒤 중시조인 정지원(鄭之遠)이 보윤 호장(甫尹戶長)을 지냈으며, 그 아들 정문도(鄭文道)가 안일 호장을 역임하였다. 정문도의 묘소는 부산의 명산으로 이름 높은 화지산(華池山) 동래 정씨 사당인 정묘사[화지사]에 있다.

정문도의 아들인 정목(鄭穆) 대에 고려 조정에서 시행하는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정항(鄭沆)정서(鄭敍) 대로 내려오며 집안이 현달하였다. 조선 시대 재상 17명, 대제학 2명, 호당(湖堂)[조선 시대 문신 가운데 특히 문학에 뛰어난 사람에게 휴가를 주어 오로지 학업을 닦게 하였던 서재이면서 관서. 독서당이라고도 불린다. 지금의 엘리트 양성 제도를 말함] 6명, 공신 4명, 판서 20여 명, 문과 급제자 198명을 배출한 명문 가문이다.

[명칭 유래]

반여동은 지형이 소반(小盤)[작은 밥상]처럼 동그랗다는 풍수설의 영향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반여동 동래 정씨 문중은 동래 정씨 참의공파(參議公派)로, 파조는 정회문의 12세손 참의공 정절(鄭節)이다. 정절의 아버지는 정양생(鄭良生)으로 아들 넷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막내가 정절이다. 정절의 증손자 가운데 첫째 진사공 정인(鄭認)은 양산으로, 둘째 가선대부공 정눌(鄭訥)의 두 아들 후손이 금정구 구서동해운대구 반여동 등으로 이거하여 세거하였다. 동래 정씨 가선대부공 반여 문중 입향조는 22세 정창시(鄭昌時)로, 1600년대 후반 경상남도 양산군 동면 법기리에서 동래 반여동으로 이거하였다.

[자연 환경]

반여동해운대구 서부에 위치하여 서쪽은 수영강과 접하고, 동쪽은 장산(萇山)[634m]에서 북쪽의 위봉[274m]으로 이어지는 산지가 발달하였다. 이곳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서쪽으로 흘러 수영강으로 유입하며, 북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석대천으로 유입한다. 석대천 하류와 수영강 유역에 평지가 발달하여 이곳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발달하였다.

[현황]

2013년 현재 반여동 동래 정씨상리 마을에 10여 가구, 중리 마을에 5가구, 삼어 마을에 2가구 등 총 17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동래 정씨 참의공파 가선대부공 반여 문중 재실은 인화당(仁和堂)이다. 인화당 뒤에 정창시의 묘소가 있다. 인화당에는 130위의 위패를 모시고 9월 마지막 일요일에 제향을 올리는데, 후손 70여 명이 참석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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