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4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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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村里東萊鄭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Dongrae Jeong Clan in Gochon-r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구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에 있는 동래 정씨 세거지.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안일호장이던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보윤호장(甫尹戶長)을 지냈던 정지원(鄭之遠)을 중시조로 기세(起世)한다. 2세(二世)인 정문도(鄭文道)의 묘가 화지산 아래에 있다. 동래 정씨는 41계파로서, 기장 철마 지역 동래 정씨는 전서공파(典書公派), 참의공파, 동지공파로 대별한다.
고촌리의 옛 이름은 돋골이다. 고촌은 돋골의 본 마을, 오래된 마을이라는 의미로 보기도 한다. 또한 마을 앞 화산등(花山嶝)에 진달래꽃이 만발하면 마을 가득 꽃이 핀다고 하여 꽃촌이라 하였다가 후에 고촌으로 변하였다는 설도 있다.
고촌리 동래 정씨는 전서공파로, 파조는 12세 정규(鄭䂓)[행병부 전서로 호는 운학재(雲壑齋)]이며 청백리로 하사받았다. 전서공파의 철마 고촌리 입향조는 조선 광해군(光海君) 때 사람인 21세 정득남(鄭得男)이다. 24세 정원주(鄭元周)가 철마면 임기리로 이거하여 25세 정성보(鄭聖輔), 26세 정덕백(鄭德伯), 27세 정문언(鄭文彦), 28세 정학연(鄭學連)·정학인(鄭學寅)·정학윤(鄭學潤) 등으로 이어졌다.
고촌리는 북서쪽의 개좌산[451m]과 운봉산[454m]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산지가 발달하였으며, 북쪽으로도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북동쪽 산지에서 발원한 고촌천이 서쪽으로 흐르고, 북쪽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흘러 고촌천과 합류하여 남쪽에서 석대천에 유입한다. 하천 유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산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