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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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明洞平澤林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Waseog-ri Pyeong taeg Lim Clan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화잠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이성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에 있는 평택 임씨 세거지.
[명칭 유래]
조선 시대 이 지역은 양산군 좌이면 와석리로 불렸다. 현재의 북구 화명동의 상징인 화산은 신선덤이라는 암봉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형상이 신선이 누워 있는 것같이 보여 와석(臥石)이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 화산의 묏부리라는 뜻으로 화잠(華岑)이라 개칭하였다. 화잠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 화잠 마을로 불렸다.
[형성 및 변천]
평택 임씨(平澤林氏)는 고려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가이다. 그중 화명동 와석리에 자리 잡은 평택 임씨 문중의 입향조는 임회(林檜)로, 17세기 초반인 1613년(광해군 5) 당파 싸움으로 이이첨(李爾瞻) 등 대북파(大北派)의 무고로 양산[현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에 유배되어 10년간 지내면서였다. 임회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후손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세거지를 이루게 되었다.
조선 시대 『양산군읍지(梁山郡邑誌)』 인물 편에 보면 임회와 함께 6세손인 임경택(林景澤)이 나온다. 낙동강변의 적석(赤石) 암벽에는 ‘조대 주인 임경택(釣臺主人林景澤)’이란 글자를 새긴 조대(釣臺) 유적이 전승되어 임씨 문중의 발자취를 증명하여 준다. 이 문중 인물로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을 주도한 임봉래(林奉來) 등이 있다.
[자연 환경]
북구 화명동 화잠 마을은 주산인 화산 아래 자리 잡은 자연 마을이다. 화산의 동쪽 파류봉을 거쳐 금정산성으로 가는 옛길이 남아 있고, 북쪽으로 용동골을 끼고 대천리와 접경하며, 서쪽 낙동강변 쪽은 전답이 펼쳐져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북구 화명동 화잠 마을에는 평택 임씨 광해공파 화명 문중 재실인 관해재(觀海齋)가 있으며, 평택 임씨 20가구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