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3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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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明洞仁同張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Daecheon-Ri Indong Jang Clan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대천리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이성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대천리에 있는 인동 장씨 세거지.
[개설]
인동 장씨(仁同張氏)는 일찍이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로, 고려 전기 인동현의 옥산 땅에 살면서 신호위 상장군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한다. 13세손 장백(張伯)이 고려 우왕(禑王) 때 문하시중으로서 옥산군(玉山君)에 봉해지면서 옥산을 본관으로 하였다. 이후 조선 후기 옥산이 인동으로 지명이 바뀌면서 본관을 인동으로 변경하였다.
[명칭 유래]
대천리(大川里)란 대천(大川) 유역에 형성된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천은 하상이 넓어 ‘큰내’로 부르다가 한자 이름인 ‘대천’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북구 화명동 대천리 마을에 인동 장씨 세거지가 형성된 것은 19세기 말로, 강서구 녹산동 쇠골 마을에 살던 장규하(張規夏)가 대천리 마을로 들어오면서부터이다. 장규하는 하단과 구포 등지에서 객주업을 하였는데, 인근에 머물 곳을 물색하던 중 마침 이 마을 어느 문중에서 호열자[콜레라]가 발생하며 딱한 처지에 놓이자 그 집과 농토를 입수하게 되었다.
입향조 장규하의 둘째 아들 장우석(張禹錫)은 구포사립구명학교를 설립하는 데 앞장서 초대 교장을 역임하였고, 한국 최초의 민족계 지방 은행인 구포은행을 설립하는 등 큰 발자취를 남겼다. 장우석의 큰아들 장진원은 사립화명학교 설립에 발기인으로 앞장서 많은 기부금을 내었고, 막내아들 장익원은 구포읍장으로서 구포~만덕으로 가는 길과 화명 대천~산성까지 오르는 산길을 차도로 개설하는 업적을 남겼다. 또 부산의 영화 발전에 앞장 선 부산대학교 교수 장갑상도 이 문중 출신이다.
[자연 환경]
대천리 마을 북쪽에는 부산의 진산(鎭山)인 금정산(金井山)이 자리한다. 금정산에서 발원한 대천이 흘러내려 서쪽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대천에는 전설이 깃든 애기소 폭포와 웅덩이가 있다.
[현황]
대천리 마을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일부 옛길과 가옥들이 보존되어 있다. 2013년 현재 인동 장씨는 3가구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