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서동 청도 김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390
한자 書洞淸道金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Cheongdo Gim Clan in Seo-dong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서동 섯골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진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15가구
세거지 서동 청도 김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금정구 서동 섯골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서동에 있는 청도 김씨 세거지.

[개설]

청도 김씨(淸道金氏)의 시조 김지대(金之岱)는 신라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8세손이다. 김지대는 1217년(고종 4) 거란군의 침입과 몽골군의 북변 침입을 막는 데 공을 세웠고, 1241년(고종 28)에는 진주 촉석루를 창건하였다. 원종 즉위 초 정당문학, 이부 상서(吏部尙書)가 되고 수태부 중서시랑평장사(守太傅中書侍郞平章事)에 올라 오산군(鰲山君)에 봉해졌다. 시호(諡號)는 영헌공(英憲公)이다. 그 후 오산이 청도로 개칭되자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청도로 하였다.

[명칭 유래]

서동에 자리한 섯골은 한자로 서곡(書谷)으로 표기한다. 동상 서당(東上書堂)의 이름을 따서 섯골·서곡이라 불렀다.

[형성 및 변천]

청도 김씨의 분파도에 의하면 김지대의 7세손 김점(金漸)은 자식들로 김유손(金裕孫)·김의손(金義孫)·김경손(金敬孫)을 두었고, 김유손은 김호우(金好雨)·김화우(金和雨)·김희우(金喜雨)·김시우(金時雨)·김영우(金靈雨)를 낳았다. 김시우는 김이준(金以濬)·김이문(金以汶)·김맹인(金孟仁)·김윤채(金胤埰)을 두며, 김맹인은 김은손(金銀遜)과 김갑손(金甲遜)을 두었다. 1400년대 말경인 연산군 대에 청도에서 동래에 내거한 영헌공 김지대의 11세손인 김갑손(金甲遜)이 동래 서동파(書洞派)의 입향조가 된다.

김갑손의 윗대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김선장(金善莊)은 고려 충혜왕(忠惠王) 기묘년에 일어난 조적(曹頔)의 난을 평정하였고, 김한귀(金漢貴)는 1362년(공민왕 11) 대장군으로 홍건적에게 빼앗겼던 개경을 수복하였다. 그 공으로 전공 판서로 일등 벽상 공신이 되었다. 김점(金漸)은 자헌대부 호조 판서를 지냈으며, 김유손(金裕孫)은 목사를 지냈다.

입향조의 아들 김용견(金用堅)은 참봉, 손자 김경(金褧)은 연일 현감, 증손자 김사위(金士偉)는 임진 창의로 선무 원종공신으로 충렬사에 배향되고, 향안에 입록되었다. 현손 김국간(金國幹)은 무과에 급제하고 향안에 입록되었으며, 현손 김국주(金國柱)도 좌수를 역임하고 향안에 입록되었다. 그 외에 김익훈(金益勳)·김익성(金益聲)·김익려(金益礪)·김우기(金宇機)·김우겸(金宇謙)도 향안에 입록되었다. 향교 전교 및 서원장, 장의에 입록된 사람은 다수이다.

[자연 환경]

서동 섯골 마을 북쪽으로는 동래의 진산인 윤산(輪山)이 위치하며, 남쪽으로 중군산(中軍山)이 가로 막아 분지를 이룬다. 동쪽은 사천(絲川)이 흐르고 있다.

[현황]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1904]에 따르면, 서동(西洞)은 28호로서 송씨(宋氏) 1호, 이씨(李氏) 4호, 박씨(朴氏) 5호, 김씨(金氏) 17호, 정씨(鄭氏) 1호로 구성되어 있었다. 금정구 서동 산71번지 소재 청도 김씨 서동 재실[동영재]은 1983년 11월 5일 해운대구 반여동 823번지에 신축 이전하여 입향조 김갑손을 비롯하여 100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11월 14일 추향제를 지내고 있다. 2013년 현재 청도 김씨는 19대째, 15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