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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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明洞金海許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Sujeong-ri Gimhae Heo Clan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수정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이성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에 있는 김해 허씨 세거지.
[명칭 유래]
금정산 상계봉에서 함박봉으로 뻗어 내린 언덕 위에 수령이 500여 년 된 정자[포구]나무가 있어 수정(水亭)이란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정자나무 부근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수정(水亭) 마을이라 불렀다.
[형성 및 변천]
김해 허씨(金海許氏)는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부인 허황후(許皇后)의 후예인 허염(許琰)을 시조로 한다. 1880년경 24세손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허준(許埻)이 김해 활천리에서 지금의 북구 화명동 수정 마을로 옮겨 와 살면서 김해 허씨 화명 종중을 이루었다. 김해 활천리의 김해 허씨 문중은 만석꾼의 집안으로 유명하였는데, 마을에 문중 서당을 짓고 대문을 다섯 개나 지나야 안채까지 들어갈 수 있는 대저택을 짓고 살던 중 일부가 이곳 수정 마을에 분산하여 살게 되었다.
수정 마을 김해 허씨 화명 종중은 일제 강점기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을 주도한 애국지사 27세 허정(許揁)을 중시조로 하여 별도로 지사공파(志士公派)를 형성하여 문중의 명맥을 잇고 있다. 특히 20세기 들어 사립화명학교를 설립하고 2대 교장을 역임한 허주(許鑄)를 비롯하여 구포은행과 부산의 백산무역회사의 대주주를 역임한 허걸(許杰)등 개화 선각자를 여럿 배출하였다.
[자연 환경]
수정 마을 언덕 아래 용당 마을 쪽으로 샛강인 소래강 물길이 흘러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강변 야산에 조선 시대 낚시질하던 조대(釣臺) 유적, 선비들이 모여 글짓기를 하던 학사대(學士臺) 유적이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수정 마을은 아파트촌으로 개발되어 김해 허씨는 8가구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