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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동 전주 이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398
한자 金城洞全州李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Jeonju Yi Clan in Geumseong-dong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진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13가구
세거지 금성동 전주 이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에 있는 전주 이씨 세거지.

[개설]

전주 이씨(全州李氏)의 시조 이한(李翰)은 신라 문성왕(文聖王) 때 사공(司空) 벼슬을 지냈으며, 그의 5세손 이경휴(李競休)는 고려조에서 사공을 지냈다. 17세손 이안사(李安社)[목조(穆祖)]는 대대로 전주에서 살아온 호족이었는데, 당시 전주에 새로 부임해 온 수령의 탐학과 방만을 규탄하니, 수령이 군사를 대동하고 보복하려고 하여 이를 피해 강원도 삼척으로 이거하였다.

그 후 이 수령이 안렴사가 되어 삼척으로 온다는 소문을 듣고, 그 보복을 꺼려 다시 함경도로 옮겼다가 원나라 간동(幹東)으로 가 그곳에서 5,000호의 다루가치[達魯花赤] 벼슬을 지냈다. 이안사의 아들 이행리(李行里)[익조(翼祖)], 이행리의 아들 이춘(李椿)[도조(度祖)], 이춘의 아들 이자춘(李子春)[환조(桓祖)] 등이 천호 벼슬을 계승하였다. 이자춘은 고려 공민왕 때 쌍성총관부 탈환에 공을 세워 대중대부(大中大夫)에 오르고 벼슬이 사복경(司僕卿)에 이르렀다. 시조 이한의 21세손 이성계(李成桂)는 조선 왕조를 창건하고 전주 이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명칭 유래]

전주 이씨 세거지가 자리한 금정구 금성동 공해(公廨) 마을의 ‘공해’란 관가 건물의 총칭으로, 마을에 관아가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공해 마을에는 금정산성을 개축하고, 금성산 금정진의 부대 건물인 식량 창고[산성창]가 있었다고 한다. 산성창에는 미곡 2,000석과 백포(白布) 56동이 비장되어 있었다.

[형성 및 변천]

파계(派系)의 유래를 말하자면 제왕은 조상이지만 조상으로 칭할 수 없기 때문에 왕자인 대군[왕후 소생]이나 군[후궁 소생]을 파조로 하여 이어 온 계통을 파계라 하는데, 이를 선원 파계(璿源派系)라 한다. 한편 분파된 계통을 살펴보면 목조 이전의 선계(先系)에서 갈린 세 파가 있고, 목조·익조·도조·환조 등 4조(四祖)의 자손 가운데 18파가 있으며, 태조 이후 역대 왕자파가 98파로서 모두 합치면 116파가 되나, 간혹 입양 관계로 사실상 그 수가 줄어든다.

금성동전주 이씨태종(太宗)의 둘째 아들인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증손인 문충공 주계군파에 속한다. 산성으로 이거하게 된 유래는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문충공 주계군과 두 아들 이유령(李幼寧)·이유반(李幼槃)이 먼저 사망하고, 문충공의 셋째 아들인 이유정(李幼靖)과 큰손자 이돈복(李敦復)이 노비들의 도움으로 경기도 장단으로 가게 되었고, 그 아들과 손자 대에는 지금의 대전광역시 회덕 비룡리대덕군 동면에 은거하게 되었다.

9세 이응수(李應壽)가 영남으로 피신하여 몸을 숨긴 곳이 동래 기장군 장안사 부근 동굴이었다고 한다. 상당 기간 이 동굴에 은거하였다고 하여 후세에 지방민들은 이 굴을 전주 이씨 굴이라고 한다. 이후 이응수의 후손들은 울주군 온산면 일대에 살다가 동래로 이거하였다. 동래로 온 후손들은 점차 번성 분가하여 차밭골[茶田谷], 가마실[釜谷], 시싯골[柿實谷], 분개[盆浦], 산성리(山城里) 등지에서 거주하였다.

금성동 전주 이씨 입향조는 11세 이유안(李有安)으로, 18세기 말에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유안은 금정산성진의 수첩군관(守堞軍官)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이덕채(李德彩)도 군관을 역임하였고, 손자 이인춘(李寅春)은 가선대부 행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고 한다. 1852년(철종 4) 이유안의 현손 이택인(李宅仁)에게 효령 대군의 후손으로 읍내 면소에 잡역을 금하라는 수사(水使)의 전령이 있었다.

[자연 환경]

금성동 전주 이씨 세거지가 자리한 금정구 금성동 앞에는 상계봉(上鷄峰)과 파리봉(玻璃峰), 동제봉(東帝峰)이 있으며, 뒤쪽 멀리 고당봉, 원효봉, 용호봉이 보인다. 마을에 있는 골짜기로 담짓골, 두꺼비골, 밤나무골, 세이셋골이 있는데, 이곳의 계곡수는 모두 곤실내[대천천 상류]로 흘러든다.

[현황]

2013년 현재 금성동에서는 전주 이씨가 8대째 살고 있는데, 공해 마을 5가구, 중리 마을 4가구, 죽전 마을 4가구가 산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02.07 한자 수정 이보(李補)->이보(李𥙷)
이용자 의견
정** [형성 및 변천] 다섯번째줄의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의} 에서 효령대군의 휘자 補를 𥙷로 수정하여 주십시오 대군의휘자는 衣변이아니고 示변입니다. 네이버지식백과사전에도 통보하시어 함께 수정 부탁드립니다.
  • 답변
  • 부산역사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한자를 수정하였습니다.
201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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