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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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九七里東萊鄭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Dongrae Jeong Clan in Guchil-r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구칠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구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구칠리에 있는 동래 정씨 세거지.
[개설]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안일호장이었던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보윤호장을 지냈던 정지원(鄭之遠)을 중시조로 기세(起世)하고 있다. 2세(二世)인 정문도(鄭文道)의 묘가 화지산 아래에 있다. 동래 정씨는 41계파로서, 철마에는 크게 전서공파, 참의공파, 동지공파가 있다.
[명칭 유래]
철마면 구칠리의 한자 표기를 처음에는 구칠리(仇柒理)라고 하였다가 뒤에 구칠리(九七里)라고 하였다. 이칭으로 구칠(九柒)·구칠(邱漆) 등을 사용한다. 이 다양한 표기에 대해 주민들은 이곳에 큰 옻나무 아홉 그루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구칠(九漆)이라 하였고, 그 옻나무가 언덕 위에 자생하고 있으므로 구칠(邱漆)이라 하기도 하였다 한다. 또 옻독으로 원수 같은 나무라 하여 ‘원수 구(仇)’ 자를 사용해 구칠(仇漆)이라 하였으며, 후에 구칠(九七)로 표기가 변하였다고도 전하지만, 실제로는 인근의 갈치재와 관련된 지명으로 보고 있다. 기장군의 철마면과 기장읍을 연결하는 큰 고개인 갈치재는 구칠재로도 불렀는데, 이 두 명칭 모두 거칠재의 변음으로 본다. 이때 거칠의 의미는 원래 ‘거칠 황(荒)’이 아니라 ‘클 대(大)’의 뜻을 담고 있어 큰 고개를 뜻한다고 국어학계에서는 해석한다.
[형성 및 변천]
동지공파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정진(鄭軫)을 파조로 한다. 지극한 효성과 임금에 대한 충성으로 그 명성이 인근에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구칠리 입향조 정시구(鄭時龜)는 정진의 10세손이다. 정시구의 증조할아버지는 정언룡(鄭彦龍)이다. 정언룡은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공신이다.
정시구는 1632년(인조 10) 동래부 서면 산저리 도화동 본집에서 태어나 유년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효성이 지극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학업의 미숙함을 알고 차성(車城)[기장의 별칭] 서편 운봉산 북방에 있는 장전에 집을 짓고 입거하여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이후 그의 문학과 효행이 인근 마을에 널리 알려졌으며, 그의 숙질이 차례로 향교 교수가 되는 등 많은 문학 지사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또한 정시구는 칠림 거사(漆林居士)로 1696년(숙종 22)의 병자 문록재(丙子文錄載) 기장 향안에 이름이 등재되어 있다.
[자연 환경]
구칠리는 북동쪽에서 시작하여 남동쪽과 남서쪽, 북동쪽까지 연결된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동남쪽에 갈치재가 있다. 사방의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리의 중앙에서 모여 구칠천을 이루며, 좁은 북쪽의 골짜기를 따라 흘러 철마천에 합류한다.
[현황]
2013년 현재 구칠리에는 동래 정씨 20여 가구가 사는데, 마을에 정시구의 묘와 함께 동래 정씨 재실인 칠림재가 있어 매년 10월 중정일에 시제를 봉향한다. 정언룡과 그의 종숙 정인정을 모시는 사당은 기장군 철마면 용천리에 있는 상현당·사정단(尙賢堂·沙汀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