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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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菉山洞馬音-慶州李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Noksan-dong Gyeongju Lee Ancestral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마음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기 |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는 경주 이씨 세거지.
[개설]
경주 이씨(慶州李氏)는 신라 6부 양산촌(楊山村) 표암공(瓢巖公) 알평(謁平)을 비조로 삼고, 신라 말 진골 출신 알평의 36세손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로 한다. 이거명을 1세조로 한 경주 이씨는 그로부터 17세손에서 8개의 큰 파로 갈라졌는데, 녹산동 마음 마을 경주 이씨는 그중 고려 문신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을 중시조로 한 익재공파이다.
[명칭 유래]
마음(馬音)이란 말소리를 뜻한다. 마음 마을의 경주 이씨 입향조인 이필달(李必達)이 김해에 살면서 1670년경 문중 일로 창원군 웅천면에 갔다가 이곳을 지나는데, 말이 갑자기 서서 가지 않아 할 수 없이 내려서 끌고 가려 하니 큰소리로 울면서 버텼다고 한다. 이필달이 이 일을 인연으로 삼아 마음 마을에 정착하였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마음’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녹산동 마음 마을 경주 이씨 세거지는 29세 유학자 이필달이 1670년경에 정착한 뒤 후손들이 번성하여 340여 년간 이어 왔다. 이필달의 증조 할아버지 이경해(李景海)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많은 공을 세워 선무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이후 생곡리의 압곡 마을과 와룡 마을에 일부 이거하였다. 압곡 마을 출신으로는 지금도 이 학자라 불리는 1800년대 후반 김해 거유(巨儒) 이명후(李明厚)가 있으며, 와룡 마을에는 재일 사학자 이진희(李璡熙) 박사가 있었다.
[자연 환경]
마음 마을의 북쪽으로는 봉화산에서 북으로 뻗어 내린 천마산(天馬山)이 있고, 조만강이 흐르는 태야들이 자리한다. 마을은 천마산의 북서쪽 기슭에 있다.
[현황]
녹산동 마음 마을 경주 이씨는 강서구 녹산동 마음 마을을 중심으로 구랑 마을, 압곡 마을, 와룡 마을 등에 세거하였다. 2002년까지 마음 마을에 20여 가구, 구랑 마을에 10가구, 압곡 마을에 7가구, 와룡 마을에 6가구가 있었다. 이후 마음 마을을 제외하고는 미음 산업 단지 조성으로 철거되었다. 2013년 현재 마음 마을에 15가구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