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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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營洞金海金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Gimhae Gim clan in Suyeong-dong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영택 |
[정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김해 김씨 세거지.
[개설]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가락계 김씨의 종통으로 가락국의 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한다. 가락국이 멸망하고 11세손 김무력(金武力)이 신라에서 각간(角干)에 이르고, 그 아들 김서현(金舒玄)은 진흥왕의 아우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과 혼인하여 김유신(金庾信)을 낳았다. 김해 김씨의 파계는 김유신을 중시조로 하여 142파로 분파되는데, 이 가운데 김유신의 직계 종파로는 고려조의 김목경(金牧卿)을 증조로 하는 금령군파(金寧君派), 김목경의 아우인 김익경(金益卿)을 증조로 하는 감무공파(監務公派), 김관(金管)을 증조로 하는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등이다.
금령군파는 후손이 서울에서 살았다고 하여 경파(京派)라고도 하며, 감무공파는 후손 가운데 김극조(金克祧)·김완(金完)·김여수(金汝水)·김세기(金世器)가 봉군(封君)되었다 하여 사군파(四君派)라 하며, 판도판서공파는 김극일(金克一)·김일손(金馹孫)·김대유(金大有) 등 세 명현이 나왔다 하여 삼현파(三賢派)라고도 부른다.
[명칭 유래]
수영동은 조선 시대 동해 쪽 해상 방어를 담당하였던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수군절도사영의 ‘수(水)’와 ‘영(營)’ 자를 따서 ‘수영’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김목경의 후손 김일수(金逸秀)[5세]는 14세기 중반 충주에서 동래 동하면 장지 마을로 이거하였고, 이후 자손들이 세거하였다. 7세 김영정(金永貞)은 호남 관찰사를 거쳐 대사헌에 올라 시호를 안경(安敬)이라 하고 아들의 훈공으로 보조 공신(補祚功臣) 병조 판서에 추증되어 분성군(盆城君)에 봉하여졌다.
김희수(金希壽)의 손자인 김서응(金瑞凝)[13세]이 아들 셋을 두어 분거하니 김추여(金秋礪)는 수영파조, 김덕여(金德礪)는 해운대파조, 김충여(金忠礪)는 오륜대파조이다. 김희수는 임진왜란 당시 군자감 판관으로 동래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이들 세 파조는 김희수 묘를 중심으로 세거하였고, 화수계(花樹契)를 만들어 계금을 비축하여 거금을 충렬사에 헌납하였다. 1600년 중반 김추여가 선조 묘가 있는 수영동에 입향하였다.
[자연 환경]
수영동은 서쪽으로 금련산이 자리하고, 동쪽은 수영강과 접한다.
[현황]
대대로 수영동에 20여 가구가 살았다고 전하나 2013년 현재는 3가구만 살며, 수영구 전체에서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김희수 묘를 중심으로 김해 김씨 수영 문중은 해운대 우동 문중회 향사와 화수회계에 참석하면서 일문으로 숭조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수영 문중 회장은 김성율로, 중요 무형 문화재 제43호인 「수영 야류」의 보존회장과 「수영 야류」 전수 교육 조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