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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리 경주 김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504
한자 龍岫里慶州金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Gyeongju Gim Clan in Yongsu-ri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진봉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25가구
세거지 용수리 경주 김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에 있는 경주 김씨 세거지.

[명칭 유래]

용수리는 1914년 덕전동과 산막동평전동·가동을 통폐합하여 붙인 명칭으로, 정확한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다만 4개 마을이 모두 조룡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어 조룡산의 ‘용(龍)’ 자와 산부리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뫼부리 수(岫)’ 자를 합하여 붙인 이름으로 추정한다.

[형성 및 변천]

경주 김씨(慶州金氏)는 신라의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번성하여 16세기 무렵인 59세 김윤룡(金潤龍) 때 지금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로 입향하였다. 김윤룡의 호는 도정(陶亭)으로, 선조(宣祖) 임진년 창의한 공으로 2등 공신이 되어 절충장군 행다대포 수군절제사 겸 부산진 관사를 제수받았는데, 그 기록이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卷)』 및 울산 향토지에 수록되어 있다.

60세 김경유(金慶裕)를 거쳐 61세 김종한(金宗翰), 김이한(金而翰), 김동한(金東翰), 김지한(金之翰), 김방한(金邦翰), 김주한이 후사를 이었다. 이 중 김방한[1635~1698]은 호가 오정(鰲亭)으로, 1676년(숙종 2)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생원을 지냈으나 향리에 은거하여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가 남긴 문집 『오정 선생 일고(鰲亭先生逸稿)』 상권과 하권은 조선 후기 지방 사회 실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또 그가 찬술한 『주역집해(周易集解)』[1678] 3책이 전한다. 최근에 보물 제1771호로 지정된 기장 장안사 대웅전 상량문도 그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김동한의 아들은 62세 김상현(金象鉉)이고, 63세 김하서(金夏瑞)·김효흥(金孝興), 64세 김중련(金重璉)·김중옥(金重玉) 형제로 이어진다. 김중련에서 65세 김석후(金錫垕), 66세 김재형(金在衡), 67세 김형진(金亨珍)으로 이어지며, 김중옥의 후손은 김석규(金錫圭)·김재협(金在浹)·김정진(金廷珍)을 거쳐 68세 김시학(金時學), 69세 김달수(金達銖), 70세 김수홍(金守洪)으로 이어졌다.

[자연 환경]

용수리 북동쪽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병산리에서 발원한 좌광천이 이곳을 지나 동쪽으로 흐른다. 좌광천 주변으로 평지가 나타나 농경지로 이용되었으나, 현재는 정관 신도시 개발로 일부 지역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용수리 일부가 정관 신도시에 편입되었지만 경주 김씨 71세 김두봉(金枓奉)을 비롯하여 25가구가 살고 있다. 제실인 이현사(二賢祠)용수리 산막 마을에 있는데, 입향조 김윤룡김방한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올린다.

[참고문헌]
  • 『경주 김씨 도정공파보(慶州金氏陶亭公派譜)』
  • 『정관지』(정관지편찬위원회, 2000)
  • 『기장군지』(기장군지편찬위원회,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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