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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동 탑동 마을 분성 배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414
한자 菉山洞塔洞-盆城裵氏世居地
영어의미역 Noksan-dong Bunseong Bae Ancestral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탑동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상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세거지 녹산동 탑동 마을 분성 배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탑동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탑동 마을에 있던 분성 배씨 세거지.

[개설]

배씨(裵氏)는 신라 6부 촌장 중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 지타(祗陀)를 원조로 하였으나 고증할 자료가 없어 고려 개국 공신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분성 배씨(盆城裵氏)의 시조 배원룡(裵元龍)배현경의 4세손인 가락군(駕洛君) 배사혁(裵斯革)의 큰아들로 공민왕 때 병부 상서 겸 도원수로 분성군(盆城君)에 봉해졌다. 가문의 인물로 분성군 배원룡의 큰아들 배서(裵署)가 감무 어사(監務御使) 전객령(典客令), 둘째 아들 배종주(裵宗柱)는 전리 판서(典理判書), 배서의 아들 배단(裵端)이 평장사(平章事)에 오르는 등 가문의 명성을 떨쳤다.

[명칭 유래]

탑동(塔洞) 마을은 북쪽 금병산(錦屛山) 기슭에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23호인 범방동 삼층 석탑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녹산동 탑동 마을 분성 배씨 세거지는 분성군 배원룡의 14세손인 장사랑(將仕郞) 배민언(裵敏言)의 손자 16세 배문현(裵文絢)[1639~1703]의 묘소가 탑동에 있다는 기록을 볼 때, 배문현이 1670년경 30대 나이로 탑동에 와서 정착하여 입향조가 되며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강서구 녹산동에서는 산양 마을 다음으로 분성 배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고, 탑동 마을 입향조 배문현의 자손들이 인근의 생곡(生谷) 마을, 지사동(智士洞)으로 이거하여 입향조가 되었다. 즉 배문현의 손자 18세 배진해(裵晉楷)[1715~1775]가 생곡 마을, 배문현의 증손자 19세 배익형(裵益珩)이 지사동에 입향하였다. 탑동 마을분성 배씨는 340여 년간 세거해 왔다.

[자연 환경]

탑동 마을 북쪽으로는 금병산(錦屛山) 능현(綾峴)이 있고, 남쪽은 평지였다.

[현황]

탑동 마을분성 배씨가 한창 번성할 때는 20가구 가까이 살았다. 2002년까지만 해도 탑동 마을에 12가구를 중심으로 미음 마을 12가구, 세산 마을 7가구, 범방 마을 5가구, 와룡 마을 3가구 등이 살았으나 부산 경남 경마 공원이 들어서고 미음 산업 단지가 조성되면서 마을이 대부분 철거되었다. 2013년 현재 세산 마을에 7가구, 범방 이주 마을에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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