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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동 대리 마을 파평 윤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285
한자 龜浦洞大里-坡平尹氏世居地
영어의미역 Gupo dae-ri Papyeong Yun Clan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대리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백이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7가구
세거지 구포동 파평 윤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대리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 있는 파평 윤씨 세거지.

[개설]

파평 윤씨(坡平尹氏)는 고려 시대 공신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며, 조선 숙종(肅宗) 때 여진을 징벌한 윤관(尹瓘)의 후손으로 파평을 본관으로 하는 문중이다. 파평 윤씨는 고려조에서 조선조까지 문과 급제자 418명, 정승 11명을 배출한 명문 거족이다. 부산 지역에 정착한 입향조 윤성익(尹聖益)은 윤관의 20세 후손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인물로, 밀양 부사를 역임한 후 부산 지역에 정착하여 그 후손이 양산, 기장, 구포 등지에서 집성촌을 이루어 살았다. 그중 구포 지역이 문중의 중심지로 정착하면서 현재까지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명칭 유래]

구포동 파평 윤씨 세거지가 자리한 대리(大里) 마을구포동의 본 마을로 큰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형성 및 변천]

파평 윤씨구포동 대리 마을에 집중적으로 정착한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윤성익의 증손자로 무과에 급제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로서 사천 현감 및 진주진관 병마절제도위를 거쳐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역임한 윤홍석(尹洪錫)이 구포에 정착하면서 윤씨 문중의 중심지가 되었다. 윤홍석의 큰아들 윤필은은 문과에 급제하여 경상도 어사와 동래 부윤을 역임하였고, 둘째 아들 윤명은은 문과에 급제하여 고성 군수, 울산 군수를 역임하였다.

셋째 아들 윤상은은 부산 지역의 개화 선각자로서 구포사립구명학교와 전국 최초의 지방 은행인 구포은행을 설립하였다. 윤상은의 큰아들 윤인구는 8·15 광복 후 부산대학교를 설립, 초대 총장을 역임하였다. 문중 출신의 윤정은은 고령에도 아들 윤경봉과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에 앞장서다 1년 3개월 형을 선고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이렇듯 한국의 근현대사에 많은 업적을 남긴 명문 집안으로 지금도 가통을 이어 가고 있다.

[자연 환경]

구포동 대리 마을백양산 북서쪽 기슭의 큰 계곡 쪽에 있다. 마을 남동쪽에는 영산(嶺山)[구포의 주산인 백양산 북서쪽 기슭]이 있어 서쪽과 동쪽, 남쪽까지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북서쪽은 낙동강과 접한다. 백양산에서 발원한 대리천이 북서쪽으로 흐르며 시랑골[侍郞谷]을 거쳐 마을을 가로질러 현재의 구포 시장 쪽에서 낙동강까지 흘러든다.

[현황]

대리 마을 위쪽 당산 나무 아래쪽은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으나 도시 계획으로 큰 도로가 관통하면서 윤씨 후손들이 살던 가옥들이 철거되어 구포동 인근으로 옮겨 갔다. 2013년 현재 파평 윤씨 7가구가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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