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2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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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菉山洞智士-平山申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Noksan-dong Pyeongsan Sin Ancestral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지사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기 |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는 평산 신씨 세거지.
[개설]
평산 신씨(平山申氏)는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를 개국한 신숭겸(申崇謙)을 시조로 하며, 태조(太祖)가 내려준 본관과 성씨이다. 장절공(壯節公) 신숭겸의 공으로 그 아들 2세 신보장(申甫藏)이 정2품 원윤을 받고, 3세 신홍상(申弘尙)은 삼한 벽상 공신 개국공 성제자가 되었다. 4세 신경(申勁)은 적경실 부사, 태자태보(太子太保)가 되고, 5세 신성(申晟)은 태보(太保)가 되고, 6세 신유비(申愈毗)는 승지를 지냈으며, 7세 신명부(申命夫)는 녹사 직장을 역임하였다.
7세 신응시(申應時)는 전서(典書), 8세 신영재(申令材)는 도관(都官), 9세 신적(申樀)은 병부 낭중, 10세 신연(申衍)은 조봉랑을 지냈다. 11세 신중명(申仲明)은 국자박사로 통직랑, 도관 직랑, 좌대언을 지냈고, 12세 신군평(申君平)은 광대부, 어사대부, 집현전 학사를 역임하였다. 13세 신수(申璲)는 금오위 아용 장군(雅勇將軍)을 하면서 입조하여 이조 참의가 내려졌으나 받지 않았다.
14세 신효창(申孝昌)은 태종 때 진사로서 자헌대부, 좌군 도총제, 정사공신 병조 판서를 지냈다. 15세 신자수(申自守)는 진사를 거처 관찰사, 가정대부 중추원사, 호조 정랑을 지냈으며, 16세 신윤원(申允元)은 예종 때 왕자사부로 원종공신 군자감을 지냈고, 17세 신승준(申承濬)은 생원으로 장원 급제하여 교관과 교수로 밀양에서 일찍이 소문난 인물이었다.
18세 신탁(申倬)은 통덕랑을 지내고, 19세 신계성(申季誠)은 문장과 도학이 높아 삼고(三高)라 불렸는데, 각 인물의 행장기와 비문 등 많은 흔적을 남겼다. 그 외 집안 인물로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과 의병장 신돌석(申乭石), 독립운동가 신석구(申錫九)·신현구(申鉉九), 독립운동가로 국회 의장이자 대통령 후보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 집안이다.
[명칭 유래]
녹산동 지사 마을은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마을로, 주변 지세가 선비가 글을 읽는 고사 독서(高士讀書) 형국이어서 지사(智士)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평산 신씨 지사 문중은 제정공파이다. 20세 신유안(申有安)은 참봉을 지내고, 21세 신충후(申忠厚)는 통덕랑(通德郞)을 지냈는데, 신충후의 8세손인 29세 신병주(申秉周)가 1820년경 창녕 부곡으로부터 녹산면 지사리로 들어와 입향조가 되었다.
[자연 환경]
부산 과학 일반 산업 단지가 조성되기 전 지사 마을은 녹산동[법정동인 구랑동·녹산동·범방동·미음동·생곡동·송정동·신호동·지사동·화전동을 포함하는 행정동]에서 제일 오지였다. 북서쪽 굴암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산세는 마봉산·보개산·명월산·월잠산으로 이어지고, 동북쪽으로 뻗은 산세는 지사봉·옥녀봉으로 연결되어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지사천은 서쪽 산지에서 발원해 감싸인 산지 사이의 좁은 평지를 지나 남동쪽 좁은 골짜기를 따라 빠져나간다. 마을 남쪽에 보개산이 솟아 있고, 남쪽으로는 지사천이 흐르는 좁은 평야[지사 들녘]가 있었다. 마을 남쪽으로 장유로 가는 곰티 고개가 자리하였다. 부산 과학 일반 산업 단지가 조성되며 지사 들녘을 굽이치던 지사천은 직강화되어 공단 내 수로처럼 바뀌었으며, 주변 산지는 착평되어 넓은 들이 되며 옛 모습을 잃었다.
[현황]
1999년에는 지사동 신명 마을에 평산 신씨 9가구가 살고 지사 마을에도 5가구가 살았으나, 2000년대 초 부산 과학 일반 산업 단지 조성으로 마을이 철거되어 2013년 현재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