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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6·25 전쟁 때 부산 지역에 거주한 군인. 아버지는 강형석(姜亨錫)이고, 어머니는 신해운(申海雲)이다. 아내는 이정희이다. 이정희는 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이시영(李始榮)의 증손녀이며 6·25 전쟁 중에 학도 의용군으로 자원입대하여 강근호를 만났다. 슬하에 1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 강근호(姜槿虎)[1898~1960]는 18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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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고영건(高永建)[1897~1941]은 1897년 12월 12일에 김해군 대저면 평강리 69번지[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1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고영건이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일 때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의 소식이 부산에도 전해졌다. 이어서 3월 7일에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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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 호는 삼연(三然). 할아버지는 동래부 중군(中軍)을 지낸 무관이었다. 아버지는 구한말의 어지러운 현실에 좌절하여 시회(詩會)에 파묻혀 지냈다. 36세에 장혜경(張慧卿)과 결혼하였다. 곽상훈(郭尙勳)[1896~1980]은 1896년 10월 21일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360번지 현풍 곽씨(玄風郭氏) 무관 집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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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구영필(具永弼)이고, 어머니는 김수련(金秀連)이다. 아버지는 해외에서 독립 운동을 하였다. 본적은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면 가곡리이다. 다른 이름은 구자광(具滋光)이다. 구수만(具守萬)[1908~1976]은 1908년 3월 22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청광리에서 구영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0년 배재고등보통학교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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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구수암(具壽巖)[1901~1920]은 1901년 2월 1일에 동래군 기장면 동부리 267번지[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269-1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기장면에서 일어난 3·1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전국으로 확산되는 3·1 운동 소식과 동래 장터의 3·1 운동 소식이 기장에 전해질 무렵 서울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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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변절자. 본관은 능성(綾城). 구영필(具榮佖)[1890~1926]은 1890년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청광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밀양으로 이사 가서 성장하였다. 15세까지 한문을 배웠고 17세에 경성공업전습소를 졸업하였다. 이후 3년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과에서 공부하다가, 국권 강탈 후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3년까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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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 운동가. 증조 할아버지는 기장 지역에서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던 현감을 쫓아낸 권인후이고, 할아버지는 명정의숙과 보명학교를 세우고 기장의 광복회 운동을 이끌었던 권상중(權商重)이다. 독립운동가 권은해(權銀海)와 권복해(權福海)가 고모이고, 권은해의 아들 이수형이 사촌이다. 기장을 대표하는 민족 운동가 김약수(金若水)는 외종조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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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여성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권상중(權商重)이고, 어머니는 강처일이다. 아버지 권상중은 기장의 첫 사립 학교인 보명학교와 명정의숙을 설립하였다. 할아버지 권인후는 기장 지역에서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던 현감을 쫓아냈다. 독립운동가 권은해(權銀海)가 친언니이고, 권동수(權東洙)와 이수형[권은해의 아들]은 친정 조카들이다. 기장을 대표하는 민족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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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민족 운동가. 아버지는 권인후이다. 철종(哲宗) 말기에 지역 주민에게 혈세를 강요하는 기장 현감을 잡아 묶어 성 밖으로 내쫓은 인물이다. 부인 강처일과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으며, 이 가운데 두 딸이 기장 출신 항일 운동가로 유명한 권은해(權銀海)·권복해(權福海) 자매이다. 손자 권동수(權東洙)와 권은해의 아들인 외손자 이상복은 항일 투쟁을 전개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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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 운동가. 아버지는 권상중(權商重)이고, 어머니는 강처일이다. 권상중은 기장의 첫 사립 학교인 보명학교와 명정의숙을 설립하였다. 할아버지는 권인후이다. 권인후는 기장 지역에서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던 현감을 쫓아내었다. 남편 이상복은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유학한 엘리트로, 안희제(安熙濟)의 백산상회(白山商會)에서 서기로 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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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철암(權鐵巖)[1901~1936]은 1901년 5월 10일에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19세였던 권철암은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산되던 3·1 운동의 소식과 동래 장터 3·1 운동의 소식을 들었다. 때마침 서울에서 신문사에 다니던 김수룡이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면서 김도엽(金度燁)·구수암(具壽巖)·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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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녕(金寧). 아버지는 김석련(金石鍊)이고, 어머니 박옥(朴玉)이다. 1921년 작은아버지인 김세주(金世鑄)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조금이(趙今伊)와 결혼하여, 딸 김미리(金美理)와 아들 김정욱(金正旭)을 두었다. 김갑(金甲)[1889~1933]은 1889년 1월 7일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 1038번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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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백운(百雲). 아버지는 김재중(金在重)이고, 어머니는 박인애(朴仁愛)이다. 7남 중 넷째 아들이며, 1925년 5월 22일 서계순(徐桂順)과 결혼하여 3남 2녀를 두었다. 김귀룡(金貴龍)[1898~1975]은 1898년 6월 25일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350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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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기장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김두복(金枓馥)이고, 어머니는 송영숙(宋永淑)이다.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 김도엽(金度燁)이 친형이며, 부산에서 노동 운동을 한 김시엽(金時燁)·김주엽(金周燁)과 재종형제 사이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김두봉(金枓奉)은 5촌 당숙이며 김약수(金若水)[본명 김두전]도 일가 숙부이다. 박차정과도 내종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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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규원(金圭元)[1925~2002]은 1925년 1월 8일에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189번지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일본 아마가사키[尼崎]에 있는 관서학원고등상업학교에 진학하였으며 1학년 때 일본인들의 멸시와 민족 차별 행위, 재일 한국인들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하면서 민족의식을 각성하였다. 1943년 6월경부터 독립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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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규직(金圭直)[1909~1929]은 1909년 2월 1일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205번지에서 출생하였다. 부산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7년 봄에 같은 학교 동급생인 양정욱(梁正彧)·윤태윤(尹兌潤)·윤호관(尹昊爟)과 다른 학교에 다니던 김봉갑(金奉甲)·윤병수(尹炳洙) 등 10여 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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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근도(金根道)[1900~1983]는 망국의 기운이 가득하던 1900년 12월 10일에 경상남도 창원군 천가면[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722번지] 가덕도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근도는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으로 보통교육 4학년을 수료한 후 생계를 위해 1918년 일본 오사카[大阪]로 건너가 주로 법랑(琺瑯) 공장의 직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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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근배(金勤培)[1912~1968]는 1912년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민족 차별 정책에 대한 불만이 점차 고조되어 가던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조선인과 일본인 학생의 충돌에 의해 광주 항일 학생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분위기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1919년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 민족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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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기삼(金琪三)[1901~1965]은 1901년 2월 5일에 동래군 동래면 복천리 465번지[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465번지]에서 태어났다.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3학년이던 1919년 3월 13일 동래 장터에서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의 소식이 부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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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난줄(金蘭茁)은 1919년에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시작된 직후 서울에서 학생 대표가 내려와 서울의 만세 시위 소식을 알리며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고 시위를 고무하였다. 김난줄은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인 박시연(朴時淵)·주경애(朱敬愛)의 지휘 아래 부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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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덕도(加德島)는 오래전부터 국방의 요지로, 일찍부터 군사 시설인 가덕진(加德鎭)과 천성 만호진(天城萬戶鎭)이 설치되어 있었다. 따라서 가덕도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애국심과 민족의식이 강하였다. 더욱이 러일 전쟁이 일어난 1904년 7월에 일본 방비대는 가덕도의 토지와 가옥을 약탈하고 주민을 내쫓아 가덕도 주민의 생존권을 위협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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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달수(金達洙)[1888~1924]는 1888년 11월 27일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263-1번지에서 태어났다. 한자 이름을 김달수(金達銖)나 김달수(金達守)로도 썼다. 1919년 3·1 운동 당시 구포에서 미곡상을 하였으며 3월 29일의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은 서울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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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 아버지는 김두복(金枓馥)이고, 어머니는 송영숙(宋永淑)이다. 기장 지역 노동 운동과 청년 운동에 앞장선 김규엽(金圭燁)이 친동생이며 김시엽(金時燁)·김주엽(金周燁)은 육촌 형제이다. 또 독립운동가 김두봉(金枓奉)은 오촌 당숙이며 김약수(金若水)[본명 김두전]도 일가 숙부이다. 박차정(朴次貞)은 내재종형제[할아버지의 여자형제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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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동원(金東源)은 경상남도 창원군 천가면[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 가덕도에서 태어났다. 서울과 부산 동래 지역에서 일어난 3·1 운동의 영향을 받아 4월 11일 가덕도에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이 지방 유지였던 양흥석(楊興錫)이 3월 말 무렵 서울에서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내려와 가덕진 의거를 모의할 때 김동원은 최세권(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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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한글 학자이며 정치인. 호는 백연(白淵)·백련(帛連). 별명은 태항산 호랑이. 아버지는 김돈홍이다. 기장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약수(金若水)가 사촌이다. 신간회와 의열단에서 활동한 항일 운동가 박문희(朴文熺)·박문호(朴文昊)·박차정(朴次貞)은 김약수의 5촌 조카이고, 박차정과 결혼한 의열단 단장 김원봉(金元鳳)은 조카사위이다. 박차정의 작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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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명규(金明奎)[1893~1977]는 1893년 6월 3일 경상남도 밀양시 삼문동 389번지에서 태어났다. 1912년 밀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진주농업학교에 들어갔다. 김명규는 진주농업학교를 졸업할 즈음 부산의 동래에 와 있으면서,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학생으로 동래 장터 3·1 운동을 주도한 엄진영(嚴進永)과 교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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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명수(金明洙)[1922~1942]는 1922년 7월에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으며 1936년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김명수가 동래중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21일과 22일 경상남도 연합 군사 대연습이 시행되었고, 11월 23일 부산 공설 운동장[현 구덕 운동장]에서 제2회 경상남도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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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반수(金班守)[1904~2001]는 1904년 9월 19일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32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서울에서 학생 대표가 내려와 3·1 운동을 알리고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며 시위를 고무하였다.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인 박시연(朴時淵)·주경애(朱敬愛)의 지휘 아래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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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호는 범산(梵山). 본명은 김진린(金振麟)이고, 출가하여 법명을 법윤(法允)에서 법린(法麟)으로 개명하였다. 김녕 김씨 충의공파 집안이다. 아버지는 김정택(金玎宅)이고, 어머니는 김악이(金岳伊)이다. 아버지 이름이 족보에는 김형상(金炯相)으로 되어 있어 제적 등본의 김정택과 다르다. 김법린(金法麟)[1899~1964]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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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병태(金餠泰)[1899~1946]는 1899년 1월 14일 부산진 좌천 마을[현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581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정공단(鄭公壇) 옆에 있던 육영재(育英齋)에서 공부하였다. 일제의 무단 통치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항일 의식을 키워나갔고 육영재와 부산공립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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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병현(金柄鉉)[1925~2008]은 1925년 3월 1일에 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 용동리 441번지[현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용동 441번지]에서 태어났다. 1938년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40년에 은사 허현(許鉉)의 지도로 양중모(梁仲模)·남기명(南基明)·김진훈(金鎭焄)·김일규 등과 함께 독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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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복선(金福善)은 1919년에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4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1919년 3·1 운동 발발 직후 서울의 학생 대표가 부산으로 와서 부산 지역의 학생 대표에게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고 시위에 나서도록 북돋았다. 이때 부산진일신여학교도 연락을 받고 의거를 서두르게 되었다. 김복선은 부산진일신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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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봉애(金奉愛)는 1919년에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4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시작된 직후 서울에서 학생 대표가 내려와 서울의 만세 시위를 알리며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고 시위를 고무하였다. 김봉애는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인 박시연(朴時淵)·주경애(朱敬愛)의 지휘 아래 부산진일신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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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으로 전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봉추(金鳳樞)[1892~1949]는 1892년 7월 27일에 부산에서 태어났다. 1919년 전라북도 전주에 거주하던 김봉추는 전주의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김봉추는 이운영(李云泳), 강선칠(姜善七), 김병학(金炳學) 등과 함께 3월 13일 전주의 공립제2보통학교(公立第二普通學校) 부근에서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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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김봉환(金奉煥)[1895~1928]은 1919년 당시의 나이가 25세였으므로 1895년 생으로 추정된다. 승려이며 불교 이외에 많은 독서를 하였고, 정치 철학 관련 신문 기사를 탐독하였다고 한다. 3·1 운동 당시 불교계의 민족 대표인 한용운(韓龍雲)이 범어사(梵魚寺)에 들러 범어사도 만세 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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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김상기(金相琦)[1894~1952]는 1894년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범어사 지방학림에서 공부하였다. 1918년 불교중앙학림을 수료하고 범어사(梵魚寺)에 돌아와 사찰 관련 업무에 종사하며 후진을 지도하였다. 1919년 2월경 불교계의 대표로 3·1 운동을 계획하고 있던 한용운(韓龍雲)이 범어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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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김상헌(金祥憲)[1893~1945]은 1893년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태어났다. 배달옹(裵達翁), 달(達) 등으로 불리었다. 어려서 불교에 귀의하여 부산 범어사 지방학림에서 수학하고 서울 불교중앙학림에 진학하였다. 1918년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의 지도 아래 불교를 연구하고 민족 사상을 고취하는 유심회(唯心會)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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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상환(金相煥)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서 태어났으며 생몰년은 알 수 없다. 그러나 1919년 부산 범어사(梵魚寺)의 명정학교를 다녔을 당시 미성년자가 아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출생 연도가 1900년쯤이라고 짐작된다. 1919년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이 범어사로 내려와 3·1 운동을 독려하자 차상명(車相明), 김한기(金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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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선갑(金銑甲)[1921~1942]은 1921년 9월 29일 경상남도 창원군 천가면 대항리 200번지[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항동 200번지]에서 태어났다. 1937년 부산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부산제2상업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23일 부산 공설 운동장[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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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성조(金聖祚)[1902~1920]는 1902년 10월 2일에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재학 중 동래 장터 3·1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동래 지역 만세 운동의 계획은 3월 7일 김귀룡(金貴龍)·엄진영(嚴進永) 등이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와 부산상업학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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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여성 운동가. 김수선(金水先)의 생몰년은 알 수 없다. 1920년대 초 동래 지역에서 청년 운동을 비롯한 사회 운동이 확산되면서 계몽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1921년 5월 김수선은 박소수(朴小守), 이기년, 김수범 등과 함께 동래여자청년회의 설립에 앞장섰다. 1925년 5월 동래여자청년회는 여성의 문맹을 타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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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수성(金守性)[1927~2002]은 1927년 5월 28일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서 태어났다. 1943년 부산초량상업학교[구 부산초량상업실수학교]에 재학 중에 차병곤(車炳坤)·박정오·신정호(辛正浩)·전창호·정오연과 함께 윤독회를 통해 국내외 정보를 교환하고, 『조선 역사』 등의 책을 읽으면서 독립 의식을 키워 갔다.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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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순이(金順伊)는 1919년에 부산진일신여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3·1 운동이 일어난 뒤 서울에서 학생 대표가 내려와 서울의 만세 시위 소식을 알리고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였으며 시위를 벌일 것을 종용하였다. 김순이는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 주경애(朱敬愛)의 지휘 아래 같은 학교 학생인 김응수(金應守)·송명진(宋明進)·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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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 1904년 부산 기장에서 김두수(金枓首)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산 지역에서 노동 운동과 청년 운동을 했던 김주엽(金周燁)이 친형이고, 김도엽(金度燁)·김규엽(金圭燁)과는 재종형제 사이이다. 또 독립운동가 김두봉(金枓奉)은 5촌 당숙이며 김약수(金若水)[본명 김두전]도 일가 숙부이다. 박차정(朴次貞)과도 내재종형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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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신복(金新福)은 1919년에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3·1 운동 발발 직후 서울에서 학생 대표가 내려와 서울의 만세 시위 소식을 알리며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고 시위를 벌릴 것을 종용하였다. 김신복은 부산진일신여학교의 교사로 있던 박시연(朴時淵)와 주경애(朱敬愛)의 지휘 아래 부산진일신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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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실이(金實伊)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 가덕도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영향을 받아 가덕도에서도 만세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지방 유지였던 양흥석(楊興錫)이 3월 말 무렵 서울에서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내려와 최세권(崔世權)·김동원(金東源)·이상운(李相云)·조용진(趙鏞晋) 등의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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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애련(金愛蓮)[1902~?]은 1902년 8월 30일에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163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산광역시 동구 영주동의 부산진공립보통학교[현 부산진초등학교] 재학 중에 3·1 운동을 맞았다. 서울에서 3·1 운동이 시작된 후 부산에서도 3월 11일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의 부산진일신여학교[현 동래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을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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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 본명은 김두전(金枓栓)이며, 이명은 김두희(金枓熙). 아버지는 김은홍이다. 김약수(金若水)[1890~1964]는 1890년 10월 21일에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240번지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의열단 김원봉(金元鳳) 단장이 물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약수(若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김약수는 휘문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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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영규(金永奎)[1898~1952]는 부산 범어사(梵漁寺) 소속 승려로 범어사 3·1 운동을 주도하였다. 출생과 사망 연도 이외에 자세한 인적 사항은 알 수 없다. 1919년 2월 불교계의 민족 대표인 한용운(韓龍雲)이 범어사로 내려와 주지 오성월(吳惺月), 이담해(李湛海), 오이산(吳梨山) 등을 만나 만세 운동을 상의하고 올라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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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두(金榮斗)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의 중리 마을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을 때 중리 마을에서도 동명학교(東鳴學校) 교사 이진석(李鎭奭)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가 추진되었다. 이진석이 경성약학전문학교 학생인 김연복에게 독립 선언서를 받아 동지를 규합하고 있을 때 김영두·양왕석·이규희·지봉구(池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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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서(金永瑞)[1880~1975]는 1880년 11월 23일에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255번지에서 태어났다. 김영서는 1919년 대구의 계성중학교(啓聖中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중에 3·1 운동의 소식을 듣고 이만집·김태련·권의윤·이상백·백남채·정재순(鄭在淳)·정광순(鄭光淳)·최상원(崔相元)·최경학(崔敬學) 등과 함께 만세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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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식(金永植)은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태어났으며 생몰년은 알 수 없다. 그러나 1919년 부산 범어사(梵魚寺)의 명정학교에 다녔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출생 연도가 1900년대쯤이라고 짐작된다. 김영식은 1919년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의 독려로 발발한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17일 명정학교와 범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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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주(金永柱)[1896~1930]는 1896년 9월 17일에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박재혁(朴載赫)의 부산경찰서 폭파 사건에 참여하였다. 박재혁은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의열단(義烈團) 단장 김원봉(金元鳳)으로부터 부산경찰서를 응징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부산경찰서는 1920년 3월 의열단이 감행하였다가 실패한 진영·밀양 폭탄 사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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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 김옥겸(金玉兼)[1892~1957]은 1892년 김해의 대동면에서 태어나, 성년이 될 무렵 구포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평소 강한 배일사상을 가지고 있던 김옥겸은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여 항일 운동을 일으켜 여론을 환기하고자 하였다. 김옥겸은 3월 하순경 구포면사무소 서기였던 임봉래(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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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구(金龍九)[1890~1963]는 1890년 2월 1일에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340번지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부산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인 양봉근(楊奉根)이 고향으로 내려와 구포면사무소 서기인 임봉래(林鳳來)를 만나 서울과 평양의 독립 만세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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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재서(金在序)[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매학리 138번지]의 장녀 김임온(金任溫)과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다. 결혼 후 본적을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매학리 138번지로 이적하였다. 김윤희(金允熙)[1888~1921]는 1888년 울주군 언양면 교동리[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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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응수(金應守)[1901~1979]는 1901년 1월 21일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으로 김수(金壽)라고 불리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직후 서울 지역 학생들이 부산에 와서 비밀리에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며 학생들의 만세 시위를 고무하였다. 이 때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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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기장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김두연(金枓演)이다. 기장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 김두봉(金枓奉), 김약수(金若水)[본명 김두전], 김도엽(金度燁), 김시엽(金時燁) 등과 친척 사이다. 김응엽(金應燁)은 1911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학생으로 재학 중이던 193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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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인규(金麟圭)[1922~1996]는 1922년 8월 22일에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선리 1363번지에서 태어났다. 1936년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동래중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21일과 22일 경상남도 연합 군사 대연습이 시행되었고, 11월 23일 부산 공설 운동장[현 구덕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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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김인주(金仁柱)[1893~1944]는 1893년 9월에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에 감화를 받아 교인이 되었으며 1920년 부산 영주교회에서 집사로 선출되었다. 민족주의 운동에 앞장섰던 당시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김인주는 교인들에게 민족의식과 항일 독립 의식을 고취하였다. 1936년에 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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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인호(金仁浩)[1900~1982]는 1900년 2월 26일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68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일 때 동래 장터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동래 지역 3·1 운동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의 소식이 부산으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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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일규(金一圭)[1924~?]는 1924년 1월 27일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에서 태어났다. 1938년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동래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0년에 양중모(梁仲模)·남기명(南基明)·김진훈(金鎭焄) 등과 함께 은사 허현(許鉉)의 지도를 받아 독서회를 조직하고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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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 범어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김재호(金在浩)[1900~1969]는 1900년 경상북도 경주군 양북면 토양리[현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범어사로 출가하여 경내에 설치된 강당(講堂)에서 불교 의식과 불경을 배웠다.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자 이곳 범어사에서도 한용운(韓龍雲)의 독려로 범어사 명정학교와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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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녕(金寧). 아버지는 김인규(金璘圭)이다. 김진훈(金鎭焄)[1924~1945]은 1924년 8월 9일에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서 김인규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창원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동래중학교 재학 시절인 1940년에 은사 허현(許鉉)의 지도로 양중모(梁仲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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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행정가. 본관은 경주. 호는 춘재(春齋). 아버지는 김상형(金商炯)이고, 어머니는 김월봉(金月鳳)이다. 김상형은 양산의 부농이었다. 동갑인 이복순(李福順)과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다. 김철수(金喆壽)[1896~1977]는 1896년 5월 4일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상삼리 328번지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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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 범어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김충념(金忠念)[1897~?]은 1897년 4월에 태어났다. 불문에 염원하여 승려가 되기 위해 범어사에 입산하여 1900년대에 범어사 전문 강원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범어사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을 중심으로 범어사 3·1 운동이 전개될 때 김충념도 참여하였다. 3월 17일 명정학교와 지방학림의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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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노동 운동가이자 민족 운동가. 할아버지는 김규홍이고, 아버지는 김두한(金枓翰)이다. 항일 운동가 김두봉(金枓奉), 김약수(金若水)와 먼 일가이다. 김태엽(金泰燁)[1902~1985]은 1902년 12월 13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태엽이 어린 시절, 할아버지 김규홍이 기장군의 이방에서 물러나면서 가세가 급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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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한기(金漢琦)[1897~1982]는 1897년 12월 27일에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403번지에서 태어났다. 김한기는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범어사(梵魚寺)의 명정학교에 재학 중이었으며, 서울의 중앙학림에서 파견된 김법린(金法麟)과 김상헌(金祥憲) 등이 범어사를 중심으로 하는 만세 시위를 계획하자 여기에 동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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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한협(金漢俠)[1922~2010]은 1922년 9월에 부산에서 출생하였다. 1940년 동래중학교에서 김병현(金柄鉉)·양중모(梁仲模)·남기명(南基明)·김일규를 중심으로 독서회가 조직되었다. 이들은 1941년 겨울에 김일규의 집에서 독서회를 강화하여 항일 학생 조직인 조선청년독립당을 결성하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의하였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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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남기명(南基明)[1923~1999]은 1923년 10월 28일에 경상남도 통영군 동부면 명진리 542번지에서 태어났다. 1937년에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동래중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23일 부산 공설 운동장에서 일제의 민족 차별에 항거한 부산 항일 학생 의거[일명 노다이 사건]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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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 아버지는 문정두(文禎斗)이다. 문시환(文時煥)[1897~1973]은 1897년 8월 12일 경상남도 동래군 남면 밤대[현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에서 태어났다. 1남 5녀 중 외아들로 부모의 각별한 사랑 속에 자랐다. 1912년 공립동래보통학교[현 내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립동명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진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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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위동(文渭東)[1903~1976]은 1903년 3월 23일에 김해군 가락면 봉림리[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봉림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진주공립농업학교[구 진주농업학교, 현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 진학하였다. 때마침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부산·경상남도 지역에서도 만세 운동이 잇따라 일어났다. 1919년 4월 13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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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인갑(文仁甲)[1923~2008]은 1923년 7월 11일에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 878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37년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동래중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23일 부산 공설 운동장에서 열린 경상남도 연합 군사 대연습에 참여하였다. 이날 일제의 민족 차별에 항거해 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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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문학선이다. 처는 김만필이다. 문택수(文澤守)[1906~1935]는 1906년 5월 20일 경상남도 김해군 가락면 죽림리[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죽림동]에서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1925년 3월 경북도립사범학교[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를 졸업하고 경산 진량공립보통학교와 상주 외서공립보통학교에서 근무하였다. 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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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밀양. 별칭은 박일형(朴日馨)이다. 아버지는 박세규(朴世珪)이고, 어머니는 김덕윤(金德允)이다. 기장 갑부로 부산에서 고려상회를 운영하였고 조선국권회복단에 관여한 박인표(朴仁杓)가 큰형이고, 항일 운동가 박영출(朴英出)이 조카이다. 장인은 3·1 운동의 학생 대표였으며 해방 후 민주주의민족전선 경상남도위원회 의장이었던 김형기(金炯璣)[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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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덕술(朴德述)은 1913년 3월 31일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를 1회로 졸업하였다. 이후 부산 지역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독립 의식을 북돋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1919년 10월에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선동 혐의로 최재호, 박영신과 더불어 검거되기도 하였다. 1920년 12월 31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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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도백(朴道伯)[1892~1939]은 1892년 4월 19일 김해군 대저면 출두리 379번지[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1동 379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던 박도백은 3월 29일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은 부산과 동래의 만세 시위 소식이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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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밀양.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아버지는 박용한(朴容翰)이고, 어머니는 김맹련(金孟蓮)인데, 박용한은 대한제국 탁지부 기사였다. 기장 출신의 항일 운동가인 김두봉(金枓奉)은 어머니 김맹련의 사촌 동생이자 박문호에게는 외오촌 당숙이 된다. 박문호의 형제로 박문희(朴文熺)·박문하·박수정·박차정(朴次貞)이 있으며, 박문희·박차정도 항일 독립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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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밀양. 아버지는 박용한(朴容翰)이고, 어머니는 김맹련(金孟蓮)이다. 아버지는 대한제국 탁지부 기사였다. 어머니 김맹련의 사촌 동생이자 기장 출신의 항일 운동가인 김두봉(金枓奉)은 외5촌 당숙이다. 동생은 박수정·박문하·박문호·박차정(朴次貞)이다. 박문호·박차정과 더불어 항일 독립운동을 하였다. 밀양 출신으로 의열단을 이끈 김원봉(金元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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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박재하이다. 항일 운동에 앞장섰던 박세현(朴世鉉)이 사촌 형이다. 여동생인 박인순은 초등학교에서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 구금된 적이 있다. 박세용(朴世用)은 1907년 8월 7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서부리 182번지에서 1남 3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박휘일(朴輝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었다. 성장 과정에서 사촌 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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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박재하(朴載廈)이다. 일제 강점기 부산과 일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세용(朴世用)이 사촌 동생이다. 박세현(朴世鉉)[1897~1917]은 1897년 8월 3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서부리 163번지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박세현은 1913년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에서 지방 유지였던 권상중(權商重) 등이 세운 명정의숙(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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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여성 운동가. 박소수(朴小守)의 생몰년은 알 수 없다. 1920년대 초 동래 지역에서는 청년 운동을 비롯한 사회 운동이 확산되면서 계몽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1921년 5월 박소수는 김수선(金水先), 이기년, 김수범 등과 함께 동래여자청년회 설립에 앞장섰다. 1925년 5월 동래여자청년회는 여성의 문맹을 타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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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 아버지는 박재형(朴在衡)이고, 어머니 김춘열(金春烈)이다. 박순천(朴順天)[1898~1983]은 1898년 9월 10일[음력]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학자였지만 어머니는 기독교 신자였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과 함께 대변리에서 3㎞쯤 떨어져 있는 월전교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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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 살았던 독립운동가. 본관은 반남. 호는 철마(鐵馬), 별칭은 덕수(德洙)·재근(才根). 박승길(朴昇吉)[1893~1960]은 1893년 2월 2일에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태어났다. 내각 총리대신 서리를 역임한 박정양의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어릴 적에 온성에서 부산으로 이주하여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 3가 64번지[8통 3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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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시연(朴時淵)은 1918년 3월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를 6회로 졸업하였다. 3·1 운동이 발생한 1919년에는 모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3·1 운동은 곧바로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부산에서도 서울의 학생들이 부산 지역 학생들에게 만세 시위를 격려하면서 비밀리에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는 일이 벌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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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준(朴英俊)[1885~1943]은 1885년 4월 25일에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에서 태어났다. 3·1 운동이 일어날 무렵 기장면에서 약간 떨어진 일광면 이천리의 이천 마을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1919년 4월 5일 기장면 3·1 운동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날은 기장 장날이었는데, 박영준은 평소와 다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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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 자는 현출(炫出), 호는 정인(盯仁). 아버지는 박인표(朴仁杓)이고, 어머니는 김씨이다. 아버지 박인표는 대지주였고 1910년대 조선국권회복단, 대동청년단, 대한광복회 등과 연결된 광복회를 조직하였다. 박인표는 경제 부문에서 고려상회·동래은행, 교육 부문에서 명정의숙과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숙부 박공표(朴孔杓)는 기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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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부산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한 승려이자 독립운동자. 박영환(朴永煥)은 경상북도 영천군 북안면 유상동[현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유상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에 범어사 불교전문강원 대교과(大敎科)에 적을 두고 있던 승려였다.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벌어졌을 때 부산에서도 범어사의 승려와 학생 등 7명이 참가하였는데, 이들이 돌아와 범어사 명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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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용선(朴容善)[1904~?]은 1904년 동래군 기장면 대라리[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에서 태어났다. 기장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25년 9월 동래고등보통학교 공사비를 기부하기도 하였다. 같은 기장면 출신인 김두봉(金斗奉), 김도엽(金度燁) 등과 함께 어울리며 항일 의식을 키웠다. 1924년 사상 단체 북풍회에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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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월성. 아버지는 박도전(朴道銓)이고, 어머니는 문지순(文池順)이다. 박임갑(朴壬甲)[1902~1990]은 1902년 3월 18일에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 384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 당시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의 소식이 부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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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부산 범어사 3·1 운동에 참가한 학생. 박재삼(朴在森)은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박재삼은 범어사 명정학교 학생으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벌어졌을 때 부산에서도 범어사의 승려와 학생 등 7명이 참가하였는데, 이들이 돌아와 범어사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을 중심으로 범어사 3·1 운동을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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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박희선(朴喜善)이고, 어머니는 이치수(李致守)이다. 박재혁(朴載赫)[1895~1921]은 1895년 5월 17일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 여동생과 생활하였다. 태어나서 부산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부산에서 성장하였다. 1911년 3월 22일 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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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정국(朴禎國)[1897~1972]은 1897년 11월 12일에 출생하여 어린 나이에 범어사(梵魚寺)에 입산하였다. 박정국은 명정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범어사 3·1 운동의 계획 수립에 참여하였다. 주동자들은 3월 18일 동래 장날에 의거를 결행할 것을 결정하였지만, 명정학교 학생 오계운(吳啓運)의 밀고로 사전에 정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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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정수(朴貞守)은 1919년에 부산진일신여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시작된 직후 서울에서 학생 대표가 내려와 서울의 만세 시위를 알리며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고 시위를 고무하였다. 박정수는 같은 학교 학생인 김반수(金班守)·심순의(沈順義)·김복선(金福善)·김봉애(金奉愛)·김응수(金應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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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밀양. 아버지는 박용한(朴容翰)이고, 어머니는 김맹련(金孟蓮)이다. 아버지 박용한은 순종 때에 탁지부 주사를 역임한 측량 기사였으며, 일제의 무단 통치에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1918년 1월 유서 한 통을 남기고 자결하였다. 어머니 김맹련은 기장 출신의 항일 운동가 김두봉(金枓奉)과 사촌이고, 김약수(金若水)[김두전]와 육촌 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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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부산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박창두(朴昌斗)는 함경남도 고화에서 태어나 범어사 지방학림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벌어졌을 때 부산에서도 범어사의 승려와 학생 등 7명이 참가하였는데, 이들이 돌아와 범어사 지방학림과 명정학교를 중심으로 범어사 3·1 운동을 계획하였다. 애초 이들은 동래 장날인 3월 18일에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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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배광진(裵光珍)[?~1945]의 출생 연도와 출생지는 알 수 없다. 1943년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재학 중에 부산실천상업학교 학생인 차병곤(車炳坤)을 알게 되어 친구인 배봉수(裵鳳秀)와 함께 전쟁과 관련한 정치 정세와 정보를 교환하면서 친분을 쌓아 갔다. 이들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조직을 만들기로 하고 동지를 규합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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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배봉수(裵鳳秀)[1928~2005]는 1928년 12월 18일에 경상남도 울산군 대현면 여천리 278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2년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친구인 배광진(裵光珍)과 함께 차병곤(車炳坤)을 알게 되어 전쟁 정세와 정보를 교환하고 학생을 중심으로 한 항일 조직의 결성을 상의하였다. 동지를 규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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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석이(裵石伊)[1898~?]는 1898년 1월에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서 출생하였다. 범어사(梵魚寺)에 인접한 마을에서 태어난 배석이는 범어사에서 설립한 명정학교에 입학하였다. 1919년 2월 하순에 한용운(韓龍雲)이 3·1 운동을 앞두고 범어사를 찾아와 오성월(吳惺月), 이담해(李湛海), 오이산(吳梨山)을 만나 3·1 운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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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및 대중운동가. 자는 성팔(聲八), 호는 광암(廣岩)이다. 배종철(裵鍾哲)[1895~?]은 1895년에 부산광역시 강서구 죽동동 38번지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에 오늘날의 부산광역시 강서구와 경상남도 김해시 일대에서 전개된 청년 운동과 농민 운동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배종철은 1920년 12월 조선청년회연합회의 창립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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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광흠(白光欽)[1895~1927]은 1895년 5월 24일에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복천동 319번지[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319-1번지]에서 태어났다. 1909년 박중화(朴重華)·신백우(申伯雨)·안희제(安熙濟)·남형우(南亨祐) 등 동지 80여 명과 함께 신민회 계열의 비밀 결사인 대동청년단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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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 거주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수원. 호는 운계(雲湲). 아버지는 백선문(白善文)이다. 백기준(白基俊)[1887~1974]은 1887년(고종 24) 11월 10일에 평안북도 의주군 비연면 홍의동 245번지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 당시의 주소는 지금의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2가 38번지이다. 백기준은 19세인 1905년 5월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하여 법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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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백신영(白信永)의 생몰년은 알 수 없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조직된 대한민국 애국부인회의 중심인물이었다.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국내 독립운동가를 연결하고, 해외 망명 지사와 가족 간의 연락을 취하는 중간 역할을 비밀리에 수행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이다. 부(府)·군(郡)에 지부를 설치하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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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부산 첨사 밑에서 무장을 지낸 변광(卞光)이다. 변봉금(卞鳳今)[1880~1958]은 1880년 1월 11일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 변봉금은 19세 때 최상훈(崔尙勳)과 결혼하였으며 통역관이었던 남편을 따라 만주로 갔다. 한일 병합 후 남편인 최상훈이 만주 독립군에 참여하면서 소식이 끊어져 홀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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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초계. 호는 석당(石塘). 변상태(卞相泰)[1889~1963]는 1889년에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일암리에서 태어났다. 변상태는 1905년 정명교(鄭明敎), 황병기(黃炳基) 등과 의병 운동을 하였다. 1910년 국권 강탈 후에는 최기택(崔基澤) 등 6명과 함께 부산의 불락산[현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뒷산]에 올라 대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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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매물(徐梅勿)은 1913년 9월 결성된 항일 비밀 결사 송죽회(松竹會)의 회원이었다. 송죽회는 1913년 9월 평양의 숭의여학교 기숙사에서 숭의여학교 교사 황애덕·이효덕, 숭현여학교 교원 김경희, 교회 교인 안정석 등 20여 명의 여성이 송(松) 형제로 뭉치면서 창립되었다. 송죽회는 1916년 지방 조직 결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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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영석(徐泳奭)[1925~1963]은 1925년 11월 24일에 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 244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찍부터 항일 활동을 시작하였다. 17세인 1941년 5월 오사카[大阪]에서 조선독립청년단에 가입한 후 1943년 정덕수(丁德秀)의 지령을 받고 오사카에서 항일 활동을 하던 중 일제 경찰에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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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용수(徐用守)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 가덕도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영향을 받아 가덕도에서도 만세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이 지방 유지였던 양흥석(楊興錫)이 3월 말 무렵 서울에서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내려와 최세권(崔世權)·김동원(金東源)·이상운(李相云)·조용진(趙鏞晋)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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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진랭(徐鎭冷)[1899~1971]은 1899년 5월 4일에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우계리 698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 동래 장터 3·1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3월 7일 김귀룡(金貴龍)·엄진영(嚴進永) 등이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와 부산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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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손군호(孫君浩)[1902~1976]는 1902년 9월 24일에 경상남도 양산군 웅상면 평산리[현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서 태어났다. 손군호는 부산 범어사(梵漁寺)에 승적을 두고 명정학교[범어사 불교 학교. 현 청룡초등학교]에 입학하였으며, 명정학교의 호국 불교 정신과 민족의식을 강조하는 교육 방침에 의하여 급진적으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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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태연(孫泰淵)은 부산광역시 기장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범어사(梵魚寺)의 불교 학교인 명정학교[현 청룡초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1919년 서울의 3·1 운동에 참여하였던 김법린(金法麟), 김상헌(金祥憲) 등이 범어사로 돌아오자 범어사에서도 중견 청년 승려 김봉환(金奉煥)·김영규(金永奎)·차상명(車相明)과 범어사 지방학림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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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송명진(宋明進)은 1919년에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1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서울에서 학생 대표가 내려와 3·1 운동을 알리고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며 시위를 고무하였다. 송명진은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인 박시연(朴時淵)·주경애(朱敬愛)의 지휘 아래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4학년 김반수(金班守)·심순의(沈順義)·김봉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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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척파(尺波). 송전도(宋銓度)[1891~1978]는 1891년 5월 24일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서 태어났다. 1904년 동래 개양학교에 입학하여 1907년 제1회로 졸업하였으며, 잠시 교편을 잡았다가 일본에 유학하여 동경물리학교에 입학하였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공부를 중단하고 귀국하여 항일 비밀 결사인 대동청년단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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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두성(辛斗星)[1890~1959]은 1890년 2월 17일에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에서 아버지 신영수(辛永壽)와 어머니는 방남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전국적인 3·1 운동 소식과 기장면 3·1 운동 소식을 접하면서 정관면에서도 만세 시위를 계획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신두성을 포함한 오해환·오진환·김종복·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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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범어사의 지원으로 유학을 간 교육자. 한말 일제 시기 범어사는 명정학교, 범어사 지방학림 등의 교육 기관을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따라서 범어사의 중요한 교육 사업 가운데 하나는 범어사에 소속된 승려나 학생을 타지 또는 타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에 범어사는 신자들의 부담으로 학비를 지원하면서 매년 2~5명씩 서울의 중등 교육 기관 혹은 중앙불교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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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정호(辛正浩)[1928~?]는 1928년 3월 3일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 795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산진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초량상업학교에 진학하였다. 1943년 부산진초등학교 동창생인 차병곤(車炳坤)·박정오 등과 함께 윤독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차병곤의 사촌 형인 조선청년독립당 이관수(李觀洙)의 영향을 받으면서 항일 의식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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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신종기(申鍾驥)는 울주군 언양면 교리[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서 태어났다. 범어사(梵魚寺)의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17일 범어사의 청년 승려와 명정학교 및 범어사 지방학림의 학생들은 졸업생 송별회에서 만세 운동을 결의하고 동래 장날인 3월 18일[음력 2월 17일]을 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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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과 중국 둥베이[東北]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호는 송학(松鶴). 아버지는 천석꾼인 신재종이고, 어머니는 이정순이다. 신필수(辛弼銖)[1885~1967]는 1885년에 경상북도 경주시 진문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7년 예수교에 입교하면서 개화와 독립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기장으로 이전하면서 교회 활동과 사회 운동을 하였다. 1919년 가을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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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심순의(沈順義)[1903~?]는 1903년 11월 13일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470번지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으로 심순지(沈順只)라고도 하였다. 1919년에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1919년 3·1 운동 직후 서울에서 학생 대표가 내려와 서울의 만세 시위를 알리며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고 시위를 벌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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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경한(安敬漢)의 생몰년은 알 수 없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벌어진 뒤 범어사(梵魚寺)에서도 김봉환(金奉煥)·김영규(金永奎)·차상명(車相明)과 범어사 지방학림 학생 김상기(金相琦)·허영호(許永鎬), 명정학교 학생 김한기(金漢琦) 등이 범어사 지방학림과 명정학교 학생들을 규합하여 3월 18일 동래 장터에서 장날을 기하여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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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안장원(安長遠)[1924~1971]은 1924년 1월 9일에 당시 경상남도 울산군 온양면 덕신리 516번지[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덕신리]에서 태어났다. 1936년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동래중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21일과 22일 경상남도 연합 군사 대연습이 시행되었고,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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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탐진. 자는 태약(泰若), 호는 백산(白山). 아버지는 안발(安鏺)이고, 어머니는 창녕 성씨(昌寧成氏)이다. 안희제(安熙濟)[1885~1943]는 1885년 8월 4일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 168번지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친척 형인 안익제(安翼濟)로부터 한학을 배우고 상경하여 1907년 보성전문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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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양봉근(楊奉根)[1895~1990]은 1895년에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에서 태어났다.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12년 사립화명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양봉근은 신학문과 의학에 관심을 두고 1918년 서울의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였다.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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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부산 범어사 3·1 운동을 주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양수근(梁壽根)[1898~1977]은 1898년 6월 27일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범어사에 입산하여 범어사의 명정학교[현 청룡초등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서울의 3·1 운동에 참여했던 김법린(金法麟)·김상헌(金祥憲) 등이 범어사로 돌아오자 범어사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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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정욱(梁正彧)[1909~1931]은 1909년 10월 20일에 경상남도 동래군 동면 복천리 202번지[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202번지]에서 출생하였다. 부산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7년 봄에 같은 학교 동급생인 김규직(金圭直)·윤태윤(尹兌潤)·윤호관(尹昊爟), 다른 학교에 다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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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양춘도(梁春到)는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범어사(梵魚寺)에 출가하여 승적을 가졌으며, 명정학교[현 청룡초등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서울의 3·1 운동에 참여하였던 김법린(金法麟), 김상헌(金祥憲) 등이 범어사로 돌아오자 범어사에서도 중견 청년 승려 김봉한(金奉煥)·김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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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태용(梁太鎔)[1893~1937]은 1893년 2월 24일 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 654번지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은 양대용(梁大溶)과 양태용(梁泰鎔)이다.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은 부산과 동래의 만세 시위 소식이 전해지던 3월 중순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인 양봉근(楊奉根)이 구포로 내려와 임봉래(林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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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여성 운동가, 사회 운동가. 아버지는 양덕유(梁德有)이고, 어머니는 한영신(韓永信)이다. 양한나(梁漢拿)[1893~1976]는 1893년 3월 3일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서 1남 10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기독교와 근대 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집안 분위기 속에서 근대 학문을 접하며 1913년 부산진일신여학교[현 동래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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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양흥석(梁興錫)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 가덕도에서 활동하였다. 서울과 부산 동래 지역에서 일어난 3·1 운동의 영향을 받아 4월 11일 천가면 가덕도에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이 지방 유지였던 양흥석은 3월 말 무렵 서울에서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내려와 청년 유지였던 김동원(金東源)·최세권(崔世權)을 만나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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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칭은 엄정우(嚴正友). 아버지는 의관직(議官職)에 있었던 엄석찬(嚴錫贊)이다. 동래 장터 3·1 운동을 주도한 엄진영(嚴進永)의 친동생이다. 엄병영(嚴秉永)[1902~1974]은 1902년 6월 8일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375-1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을 무렵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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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동래구 명륜동에서 의관직(議官職)에 있었던 엄석찬(嚴錫贊)이다. 동래 장터 3·1 운동에 참여한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학생 엄병영(嚴秉永)의 친형이다. 엄진영(嚴進永)[1899~1947]은 1899년 3월 30일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에서 5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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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여성 운동가 여운영(呂運英)은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들어서면서 각 지역에서 청년 단체가 설립되었다. 부산 지역[현 부산광역시 동구·중구·서구 일대] 여성들은 3·1 운동에 앞장섰던 경험이 있었고, 부산진일신여학교 출신들이거나 기독교 신자들이었다. 부산에서 태어난 여운영 또한 그런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921년 6월 부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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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오태환(吳泰煥)과 6촌간이고 「장전 구곡가(長田九曲歌)」를 지은 추파(秋波) 오기영(吳璣泳)[1837~1917] 동생의 손자이다. 오규환(吳奎煥)은 1925년 8월경 김창숙(金昌淑)이 전개한 군자금 모금 활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김창숙은 파리 장서 사건 때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北京]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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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오긍상(吳亘祥)[1899~?]은 1899년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 사창리에서 태어났다. 오점술로도 불리었으며, 일찍이 범어사(梵魚寺)에 출가하여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에서 공부하였다. 1919년 당시 21세로 범어사 지방학림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범어사의 대표 7명이 서울 의거에 참가하고 돌아와서 학생 의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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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오경천(吳敬天)이다. 오기원(吳基元)[1897~1940]은 1897년 12월 12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 437번지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기장 보명학교를 다녔고, 이후 기장에 있는 차성상회의 관리인으로 있으면서 비밀 결사인 기장광복회에서 활동하였다. 1917년 기장광복회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을 당시 회원으로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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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부산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오병준(吳炳俊)[1897~1966]은 1897년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에서 태어났다. 절에 들어가 공부하기를 바란 오병준은 부모의 승낙을 받아 범어사에 입산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범어사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의 재학생과 졸업생 7명이 서울로 가서 3·1 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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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오시권(吳時勸)은 함경남도 안변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범어사(梵魚寺)의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 재학생과 졸업생을 중심으로 하는 범어사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거사일로 결정된 3월 18일을 앞두고 18일 새벽 복천동의 범어사 동래포교당에 모인 주모자들이 사전에 정보를 알아채고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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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대지주였던 오진영(吳珍泳)이다. 오신근(吳信根)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생몰년은 알 수 없다. 일찍부터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비밀 결사인 기장광복회에서 활동하였다. 기장광복회에 가입한 시기가 언제였는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1917년 기장광복회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을 당시 회원으로 체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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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오이산(吳梨山)은 1919년 2월 한용운(韓龍雲)이 부산 범어사(梵魚寺)에 왔을 때 당시 범어사의 주지 오성월(吳惺月), 이담해(李湛海)와 함께 3·1 운동에 대해 논의하였다. 논의 끝에 오이산 등은 범어사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의 재학생과 졸업생 7명을 서울로 보내어 3·1 운동에 참여하게 하였다. 서울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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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부산 출신의 경제인. 오인규(吳仁奎)[1871~1937]는 1871년에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개항기 부산의 여타 조선인 객주들과 마찬가지로 해산물 위탁업 및 환오 정미소(丸吳精米所)를 경영하였다. 해산물 위탁업은 함경도에서 생산된 해산물이 주요 거래 품목이었다. 오인규가 경영한 정미소는 1919년 자료에서도 확인될 정도로 일정 기간 운영되었다. 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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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오점술(吳點述)은 1900년대 후반에 태어났다. 1919년 2월 하순경 한용운(韓龍雲)이 부산 범어사(梵魚寺)에 와서 3·1 운동에 불교계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에 범어사에서는 김법린(金法麟)·김영규(金永奎)·차상명(車相明) 등 7명을 서울로 보내어 3·1 운동에 참여하게 하였다. 3월 4일 이들이 독립 선언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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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오직선(吳直善)이고, 어머니는 김순임(金順任)이다. 오택(吳澤)[1897~1948]은 1897년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부모가 한약방을 운영하여 경제적으로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1903년 한문 서당 삼괴제(三槐齊)에서 천자문을 배우며 학업을 시작하였다. 1908년 부산진 좌천학교에 입학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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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 운동가, 의사. 왕치덕(王致德)은 1896년[혹은 1898년] 부산광역시 사상구[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 주덕리 749번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동구 범일동으로 이사하였다. 당시 범일동은 부산진에 위치한 대표적인 조선인 마을로서, 일본인 거주 구역이 팽창하면서 심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범일동 일대에 거주하던 조선인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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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부산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유석규(劉碩規)의 생몰 연대와 출생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벌어졌을 때 부산에서도 범어사의 승려와 학생 등 7명이 참가하였는데, 이들이 돌아와 범어사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을 중심으로 범어사 3·1 운동을 계획하였다. 애초 이들은 동래 장날인 3월 18일에 만세 시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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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비밀 결사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 유진흥(兪鎭興)[?~1929]은 항일 비밀 결사 흑조회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흑조회는 1925년 동래고등보통학교 4학년생인 박인호·최두해 등과 부산제2상업학교에 다니던 김규직(金圭直)·양정욱(梁正彧)·윤태윤(尹兌潤)·윤호관 등이 주축이 되어 동래독서회를 조직하고 동지를 규합한 것이 시초였다. 이들은 동래독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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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한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윤경(尹涇)[1889~1977]은 1889년에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임천재(臨川齋) 사숙(私塾)에서 한학(漢學)을 공부하였으며 1908년에 세워진 사립화명학교를 졸업하였다. 1910년 사립화명학교 교사로 근무 중 경상남도 사립 학교 교원 시험에 합격하여, 1918년에 사립화명학교가 구포공립보통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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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윤정은(尹正殷)이다. 윤정은은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사건 관련자 가운데 최고형인 징역 1년 3월을 선고 받았으며, 수감 중이던 1920년 1월 19일 69세의 나이로 옥사한 독립운동가이다. 윤경봉(尹敬奉)의 다른 이름은 윤봉경(尹奉敬)이다. 윤경봉[1897~1941]은 1897년 1월 25일에 부산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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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호는 창남(滄南). 아버지는 농사꾼 윤태의이고, 어머니는 최호영이다. 윤병호(尹炳浩)[1889~1974]는 1889년 8월 5일에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문의리에서 4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둘째 형 윤도청의 권유로 1908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했으며 이때부터 항일 투쟁의 길로 접어들어 1909년 10월 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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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장수(尹章守)[1895~1958]는 1895년 1월 6일에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윤장수(尹張守)이며 필묵상(筆墨商)이었다. 윤장수는 1919년 3월 29일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구포는 낙동강 좌안에 위치하여 부산, 김해, 양산, 동래에 접한 요충 지대로서 예로부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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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정은(尹正殷)[1852~1920]은 1852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대리 마을에서 태어났다. 구포 명문가인 윤씨 집안의 장남으로 본명은 윤길은(尹吉殷)이다. 평소 일제의 한국 통치에 대한 저항 의식이 강하였던 윤정은은 1919년 서울의 3·1 운동 소식을 접하자 68세의 노령으로 앞장서서 참여하였다.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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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 운동가. 윤택근(尹澤根)은 1898년 12월 27일 경상남도 거제시 연초면 명동리에서 윤규찬(尹奎贊)과 옥달순(玉達順)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7세 때 거제시 아주동 280번지로 이사하였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윤일(尹一)로 불리기도 하였다. 아내 옥우수(玉又守)와의 사이에 큰아들 윤병규(尹炳圭)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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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수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파평. 자는 의백(義伯), 호는 우산(右山). 할아버지는 동래 출신의 만석꾼으로 동래 부사와 사천 군수를 지낸 윤홍석(尹洪錫)[1843~1902]이고, 아버지는 동래 부사 겸 동래 감리·경상 우도 관찰사를 역임한 윤필은(尹弼殷)[1861~1903]이다. 작은아버지는 고성 군수와 울산 군수 등을 역임한 윤명은(尹命殷), 구포은행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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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갑이(李甲伊)[1897~1929]는 1897년 12월 20일에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24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이갑이는 1919년에 중구 영주동의 부산진공립보통학교[현 부산진초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서울에서 3·1 운동이 시작된 후 부산에서도 3월 11일 좌천동의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운동이 벌어졌다.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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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강희(李康熙)[1898~1943]는 1898년 2월에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1914년 중국 봉천성 장백부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다 돌아와서 다시 1916년[또는 1918년] 중국 상하이[上海]로 유학을 갔다. 1919년 5월 상해학생회와 상해청년단에서 활동하였고 1921년 12월 23일 유호학생회장으로서 재상해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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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관수(李觀洙)[1925~1951]는 1925년 10월 22일에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 괘법리 827-5번지[현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266-15번지]에서 태어났다. 1944년 결성된 항일운동 단체 순국당(殉國黨)의 당수인 차병곤(車炳坤)과 내외종간이다. 1938년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40년 동래중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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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근우(李根雨)[1900~?]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서 태어났으며 자세한 인적 사항은 알 수 없으나 판결문에 따르면 1900년에 출생한 것으로 보인다. 1919년 3월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 재학생 및 졸업생 7명이 범어사(梵漁寺)를 대표하여 서울의 3·1 운동에 참가하고 돌아와서 범어사 3·1 운동을 제안하자, 이근우는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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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달실(李達實)은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벌어졌을 때 부산에서도 범어사(梵魚寺)의 승려와 학생 등 7명이 참가하였다. 이들은 범어사로 돌아와서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을 중심으로 범어사 3·1 운동을 계획하였다. 애초 동래 장날인 3월 18일에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그러나 명정학교 학생 오계운이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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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달희(李達熙)[1920~1994]는 1920년 9월 29일에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일동리 347번지에서 태어났다. 1936년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동래중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23일 부산 공설 운동장[현 구덕 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경상남도 학도 전력 증강 국방 경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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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명시(李明施)는 1919년에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1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서울에서 학생 대표가 내려와 서울의 만세 시위를 알리며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고 시위를 벌릴 것을 종용하였다. 이명시는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인 박시연(朴時淵)·주경애(朱敬愛)의 지휘 아래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4학년 김반수(金班守)·심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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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 호는 백단(白旦). 한자 이름은 이봉우(李奉雨)로도 쓴다. 아버지는 이종만(李鐘晩)이고, 어머니는 이미의(李迷義)이다. 김혜정(金惠貞)과 결혼하여 아들 넷[이성신(李誠信)·이상필(李相弼)·이상준(李相俊)·이상덕(李相悳)]을 두었다. 둘째 이상필은 연길현 국자가 만세 시위에서 잡혀 고문으로 사망하였다. 셋째 이상준은 1920년 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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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덕(李相悳)[1900~1975]은 1900년 5월 13일에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서 태어났다. 이상덕이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4학년이던 1919년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의 소식이 부산으로 전해졌다. 이어 3월 7일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와 부산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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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세기(李世基)[1923~1976]는 1923년 10월 23일에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1265-1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산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에 일명 노다이[乃台] 사건으로 불리는 부산 항일 학생 의거에 참여하였다. 이세기를 비롯한 부산제2상업학교 학생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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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수강(李壽康)[1912~1962]은 1912년 8월 26일에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 눌차 마을에서 태어났다. 1936년 3월 중순경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동향인 김근도(金根道)·김성규(金成圭)·이수용(李守龍) 등과 함께 재오사카 가덕인친목회[在大阪加德人親睦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수강은 재오사카 가덕인친목회에서 동지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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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수룡(李守龍)[1911~1998]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에서 태어났다. 권필옥과 결혼하여 2남 3녀를 두었다. 부산에서 사립 소학교 4학년을 수료하고 1927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인의 모멸적 언동과 차별 대우를 체험하면서 민족의식을 쌓아 가던 중 김근도(金根道)가 중심이 된 재대판가덕인친목회(在大阪加德人親睦會)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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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수열(李守烈)[1903~1971]은 1903년 12월 26일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81-1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2학년 학생으로 3월 13일 동래 장터 3·1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7일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의 소식이 부산에도 전해질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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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부산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영우(李英雨)[1899~1937]는 1899년 3월 경상남도 양산군 웅상면 덕계리[현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불교에 귀의하여 범어사의 명정학교[현 청룡초등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에 범어사 지방학림에 재학 중이었다. 이때 부산에서도 범어사의 승려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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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호는 남저(南樗). 아버지는 당시 의령 지방의 유일한 만석꾼인 이상두이고, 어머니는 연안 김씨이다. 이우식(李祐植)[1891~1966]은 1891년 7월 22일에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면 동동리 1053번지에서 5대 독자로 태어났다. 어릴 적에 향리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도쿄[東京] 세이소쿠가쿠엔고등학교[正則学園高等学校]를 거쳐 도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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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운동가. 이은자(李殷子)의 생몰년과 출생지는 알 수 없다. 1920년대 초반의 여성 단체들은 주로 계몽에 초점을 두고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에 이르면 여성 운동계도 사회주의 사상을 지표로 삼는 활동가들이 등장하여 여자 청년회의 지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나아가 사회주의 계열의 여자 청년회가 설립되었다. 이은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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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진석(李鎭奭)[1886~1970]은 1886년 8월 21일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은 이규환(李圭環)이다.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 명지면의 사립동명학교(私立東鳴學校)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서울 등 각지에서 일어난 3·1 운동 소식을 접하는 가운데 동창인 경성약학전문학교 학생 김연복(金淵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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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택규(李澤奎)[1899~?]는 1899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5일 기장면 3·1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3·1 운동의 소식과 동래 장터의 3·1 운동 소식이 기장에 전해질 무렵 당시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2학년생이었던 김수룡(金壽龍)이 내려와 이택규를 비롯한 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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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봉래(林鳳來)[1890~1968]는 1890년 4월 22일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136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1년 사립화명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1912년 사직하고 구포면사무소 서기로 근무하였다. 1919년 당시 구포면사무소 서기로 재직하던 중 3월 29일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중순에 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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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 자는 찬성(贊成), 호는 소해(宵海). 아버지는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참봉을 지낸 부유한 지주 장운원(張雲遠)이다. 장운원은 박상진(朴尙鎭) 의사에 의해 살해된 칠곡 갑부 장승원의 아들이자 대한민국 초대 수도경찰청장과 3대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과 친척이다. 장건상(張建相)[1882~1974]은 188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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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봉기(張琫起)[1902~?]는 1902년 9월 5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기장면 3·1 운동 때 최연소자[18세]로 활약하였다. 전국으로 확산되는 3·1 운동의 소식과 동래 장터의 3·1 운동 소식이 기장에 전해지면서 김수룡(金壽龍)·김도엽(金度燁)·권철암(權鐵巖)·구수암(具壽巖)·최기복(催基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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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강주(田康住)[1923~?]는 1923년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357번지에서 태어났다. 동래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 일본으로 가서 돗토리 현[鳥取縣] 경항공립심상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938년에 졸업하였다. 이어서 효고 현[兵庫縣] 카스미실업학교[香住實業學校]에 입학하였다. 카스미실업학교 2학년 재학 중에 동아연맹(東亞聯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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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전병철(全秉哲)[1926~2010]은 1926년 9월 9일 경상남도 밀양군 하남면 남전리에서 태어났다. 1944년 울산 비행장 건설 근로 작업에 강제 동원되었을 때 부산제2상업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강제 노동 동원지에서 일제의 부당한 대우에 반발하여 태업을 주도하였다. 1940년대 이후 일본의 전세가 점점 불리해지고, 물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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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두열(鄭斗烈)[1922~2003]은 1922년 12월 27일에 경상남도 울주군 상북면 양등리 496번지에서 태어났다. 1940년 11월 23일 부산 항일 학생 의거[일명 노다이 사건] 당시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1940년 11월 21일부터 22일까지 이틀간 경상남도 내 중학교 학생 전체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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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성언(鄭聖彦)[1892~1952]은 1892년 7월에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서 태어났다. 범어사(梵漁寺) 명정학교를 거쳐 범어사 지방학림에 진학하였으며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범어사의 3·1 운동은 서울의 3·1 운동에 참여하고 3월 4일 부산으로 돌아온 김법린(金法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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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인찬(鄭寅贊)[1887~1932]은 1887년 12월 27일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468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부산의 3·1 운동 당시 24세의 정인찬은 영도 사립옥성학교(私立玉成學校)의 교사로 있으면서 학생들의 독립 만세 시위를 지도하였다. 1919년 3월 11일 부산진일신여학교 여학생들의 의거를 시작으로 큰 규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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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양(晉陽). 호는 물헌(勿軒). 아버지는 정규영(鄭奎榮)이고 어머니는 조용주(趙鏞周)의 딸이다. 정규영은 영남 유림의 거두 곽종석(郭鍾錫)의 문하로 정3품 통정대부 벼슬과 하동 향교 정교를 지낸 유학자였다. 동생은 정재기(鄭在淇)이고, 누이들은 강도현(姜道鉉)·이회근(李晦根)·정원현(鄭元鉉)·이인근(李人根)에게 출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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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정인길이고, 어머니는 이출구이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매학리 김재교의 장녀인 김매월과 결혼하여 2남 1녀를 낳았다. 정지모(鄭智謨)[1893~1925]는 1893년 3월 13일에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평리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전국에서 발생하는 3·1 운동 소식과 기장면 3·1 운동 소식을 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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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호종(鄭浩宗)[1901~1981]은 1901년 2월 9일에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262-1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에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의 소식이 부산에도 전해졌다. 이 무렵 3월 7일에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와 부산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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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미국에서 활동한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경범(敬範), 호는 해산(海山). 남강(南崗) 조정환(曺正煥)의 동생이다. 조정환은 민국독립단의 자의부장(諮議部長)을 지냈으며,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와 다물단을 조직하는 등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과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조정환의 아들은 제헌 국회 의원을 지낸 조규갑(曺奎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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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조용진(趙鏞晋)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 가덕도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영향을 받아 가덕도에서도 만세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이 지방 유지였던 양흥석(楊興錫)이 3월 말 경 서울에서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내려와 최세권(崔世權)·김동원(金東源)과 가덕도에서도 만세 시위를 일으킬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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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의경(義卿), 호는 남강(南崗). 별칭으로 조진(曺珍)이라는 이름을 썼다. 동생 조성환(曺誠煥)은 미국에서 이승만(李承晩)·안창호(安昌浩) 등과 활동하였고, 아들 조규갑(曺奎甲)은 제헌 국회 의원을 지냈다. 조정환(曺正煥)[1875~?]은 1875년(고종 12) 10월 6일 녹산 분절 마을[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미음동 111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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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주경애(朱敬愛)[1898~?]는 1898년에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 당시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서울에서 시작된 3·1 운동은 곧바로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부산에서도 서울의 학생들이 부산 지역 학생들에게 만세 시위를 격려하면서 비밀리에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3월 10일 전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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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지봉구(池鳳九)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 출신이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을 때 중리 마을에서도 동명학교(東鳴學校) 교사 이진석(李鎭奭)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가 추진되었다. 이진석이 경성약학전문학교 학생인 김연복에게 독립 선언서를 입수하고 동지를 규합하고 있을 때 지봉구·김영두(金榮斗)·양왕석·이규희 등이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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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지용준(池龍俊)[1894~1971]은 1894년 5월에 경상남도 양산군 상북면 소토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범어사(梵漁寺) 지방학림에 재학 중 범어사의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범어사의 3·1 운동은 서울의 3·1 운동에 참여하고 3월 4일 부산으로 돌아온 김법린(金法麟), 김상헌(金祥憲) 등이 독립 선언서를 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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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차병곤(車炳坤)[1928~1945]은 1928년 5월 15일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낙민동 272번지에서 태어났다. 조선청년독립당을 결성한 이관수(李觀洙)와 내외종간이다. 부산진초등학교를 다녔고, 중국 둥베이[東北]로 갔다가 1943년 귀국하여 조선청년독립당에 가담하고 있던 이관수와 교류하면서 항일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 부산진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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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기복(崔基福)[1901~1991]은 1901년 12월 28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서부리에서 태어났다. 19세였던 1919년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산되던 3·1 운동과 동래 장터 3·1 운동의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이때 최기복은 서울의 모 신문사에 다니던 김수룡(金壽龍)에게 독립 선언서를 받으면서 김도엽(金度燁)·구수암(具壽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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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덕관(崔德瓘)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대사 마을 사람이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을 때 대사 마을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최덕관은 같은 마을의 허병(許炳)이 3월 29일과 30일에 일어난 김해 3·1 운동 소식을 접한 뒤 조카 허종식과 더불어 만세 시위를 위해 동지를 규합하자 뜻을 같이하였다. 최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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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변봉금(卞鳳今)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부산에서 독립운동을 한 최천택(崔天澤)이 5촌 조카이다. 최상훈(崔尙勳)[1868~?]은 1868년에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났다. 한학을 배웠으며 26세 때 관내 부주사가 되었다. 이후 한성의 일어 학교를 졸업한 후 통역관으로 선발되어 일본의 육군 대장 우에하라 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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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세권(崔世權)[1901~1939]은 1901년 8월 19일에 경상남도 창원군 천가면[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 동선 마을에서 태어났다. 천가면 가덕도 지방의 유지였던 양흥석(楊興錫)이 3월 말 경 서울에서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내려왔다. 이에 최세권은 김동원(金東源)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계획하고, 이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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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최응관(崔應觀)은 함경남도 안변군에서 태어났으며 생몰년은 알 수 없다. 부산 범어사 지방학림을 졸업한 뒤 범어사(梵魚寺)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부산 범어사의 승려와 학생 등 7명도 참가하였다. 이들 7명이 돌아와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을 중심으로 범어사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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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 운동가. 최익수(崔益守)는 1901년 8월 22일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518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 공원에서 시작된 만세 시위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3월 11일 동구 좌천동에서 부산진일신여학교 여학생들의 용감한 의거가 일어났다. 이는 부산 지역 3·1 운동의 효시가 되어 동래와 구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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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장학(崔章學)[1909~?]은 1909년 4월 11일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469번지에서 태어났다. 1927년 부산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에 재학 중에 비밀 결사 흑조회(黑潮會)를 조직하였다. 흑조회는 부산제2상업학교 학생인 김규직(金圭直)·양정욱(梁正彧)등이 1927년 봄에 결성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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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찬수(崔燦洙)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 가덕도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영향을 받아 가덕도에서도 만세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이 지방 유지였던 양흥석(楊興錫)이 3월 말 경 서울에서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내려와 최세권(崔世權)·김동원(金東源)·이상운(李相云)·조용진(趙鏞晋) 등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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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언론인 아버지는 최차구(崔此球)이다. 해운대와 가야 등지에 상당한 전답을 가지고 있어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인 집안이었다. 집안의 독립투사였던 당숙 최상훈(崔尙勳)과 숙모 변봉금(卞鳳今)의 영향을 받아 민족의식을 높이게 되었다. 28세 연장인 최상훈은 무장 투쟁 단체인 북간도의군부와 김좌진(金佐鎭)의 북로 군정서 사관학교 교관으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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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추규영(秋圭暎)[1901~1977]은 1901년 8월 21일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389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에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의 소식이 부산에도 전해졌다. 이 무렵 3월 7일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와 부산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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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하인출(河仁出)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 가덕도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영향을 받아 가덕도에서도 만세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양흥석(楊興錫)이 3월 말 경 서울에서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내려와 최세권(崔世權)·김동원(金東源)·이상운(李相云)·조용진(趙鏞晋) 등의 동지를 포섭하여 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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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덕술(韓德述)[1903~1942]은 1903년 3월 7일에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53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한덕술은 7월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경상남도 지역 간부 및 간사장인 정인찬(鄭寅贊)의 권유에 따라 경상남도 등지의 부호들에게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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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 호는 먼구름[遠雲]. 아버지는 한흥교(韓興敎)[1885년생]이고, 어머니는 이인옥(李仁玉)[1883년생]이다. 형 한원석, 동생 한천석·한연석·한갑석·한화석·한정석이 있다. 아버지 한흥교는 일본 오카야마의학전문학교[岡山醫學專門學校]에 유학한 엘리트이며 중국에서 항일 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한형석(韓亨錫)[1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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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의료인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한규용(韓奎容)으로,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에서 담뱃대 공장을 경영하였다. 16살에 두 살 연상인 이인옥(李仁玉)과 결혼하여 4남 3녀를 두었다. 둘째 아들 한형석(韓亨錫)은 중국에서 항일 예술 운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이다. 한흥교(韓興敎)[1885~1967]는 188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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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허병(許炳)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대사 마을 사람이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을 때 대사 마을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3월 29일과 30일에 일어난 김해 3·1 운동 소식을 접한 뒤 조카 허종식과 더불어 만세 시위를 계속할 것을 꾀하였다. 허병은 같은 동네의 최덕관(崔德瓘), 활천면의 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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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허영호(許永鎬)[1900~?]는 1900년 12월에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태어났다.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고 범어사(梵魚寺) 산하 명정학교에 입학하였다. 범어사 3·1 운동은 서울의 3·1 운동에 참여하고 3월 4일 부산으로 돌아온 김법린(金法麟)과 김상헌(金祥憲) 등이 독립 선언서를 전하면서 계획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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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허치옥(許致玉)[1894~1924]은 1894년 10월 27일에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263-1번지에서 태어났다.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은 부산과 동래의 만세 시위 소식이 전해지던 3월 중순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인 양봉근(楊奉根)이 구포로 내려와 임봉래(林鳳來)[구포면사무소 서기], 윤경(尹涇)[사립화명학교 교사], 유기호(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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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홍순남(洪順南)은 경상남도 거제시 출신이다. 홍순남이 부산의 여성 운동계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은 1928년 6월 결성된 근우회 부산지회이다. 근우회 부산지회에서 준비 위원으로 설립에 관여하였다. 근우회 부산지회에서 표면적 직책을 갖지는 않았지만 영향력이 있었다. 홍순남의 활동은 해방 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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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홍재문(洪在文)[1897~1958]은 1897년 3월 20일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던 시기에 부산공립보통학교[현 부산진초등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11일 부산진일신여학교[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전신] 학생들이 독립 만세 시위를 벌였다는 소식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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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용하(黃龍河)는 부산광역시 사상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동래 장터 3·1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의 소식이 부산에도 전해질 즈음인 3월 7일에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와 부산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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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부산 범어사 3·1 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 황학동(黃鶴東)은 울주군 동면 방어진[현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에서 태어났다. 황학동의 생몰 연대는 알 수 없다.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벌어졌을 때 부산에서도 범어사의 승려와 학생 등 7명이 참가하였는데, 이들이 돌아와 범어사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을 중심으로 범어사 3·1 운동을 계획하였다. 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