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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496
한자 李守烈
영어음역 Yi Suyeol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271번길 18[칠산동 281-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출생 시기/일시 1903년 12월 26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9년 - 동래고등보통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 - 동래 장터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실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71년 6월 8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0년연표보기 - 대통령 표창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연표보기 - 동래 장터 3·1 운동
출생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81-1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81-1
학교|수학지 동래고등보통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40지도보기
활동지 동래 장터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수열(李守烈)[1903~1971]은 1903년 12월 26일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81-1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2학년 학생으로 3월 13일 동래 장터 3·1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7일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의 소식이 부산에도 전해질 즈음에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와 부산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학생 대표가 독립 선언서를 전해 주면서, 4학년인 엄진영(嚴進永)·김귀룡(金貴龍)·고영건(高永建)·김인호(金仁浩)·이상덕(李相德) 등이 동래 의거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이수열을 포함한 2·3학년 대표들도 함께 계획을 진행하였다. 그러던 중 3월 10일 동래고등보통학교 선배이며 경성고등공업학교에 다니던 곽상훈(郭尙勳)이 독립 선언서를 수학 교사 이환(李環)에게 전해 주었으며, 이들이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 의거의 배후 참모 역할을 담당하면서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수열 등 주동 학생들은 협의를 거듭한 끝에 동래 장날인 3월 13일 오후 2시를 거사일로 정하였다. 그리고 3월 11일부터 13일에 걸쳐 고영건의 하숙집에서 독립 선언서와 대형 독립기, 태극기 등을 준비하였다.

3월 13일 오후 주동 학생들은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를 품고 속속 모여들었고 2시가 되자 엄진영이 동래군청 앞 망미루(望美樓)에 올라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수열도 함께 만세를 외치고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하며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출동한 일본 수비대와 기마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수열은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 받고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71년 6월 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0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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