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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024
한자 金在浩
영어음역 Gim Jaeho
분야 종교/불교,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나철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종교인
성별
출생 시기/일시 1900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범어사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범어사 3·1 운동 주도로 징역 6개월 선고받음
몰년 시기/일시 1969년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3년연표보기 -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학교|수학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학교|수학지 범어사 불교전문학원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지도보기
활동지 부산광역시

[정의]

일제 강점기에 부산 범어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재호(金在浩)[1900~1969]는 1900년 경상북도 경주군 양북면 토양리[현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범어사로 출가하여 경내에 설치된 강당(講堂)에서 불교 의식과 불경을 배웠다.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자 이곳 범어사에서도 한용운(韓龍雲)의 독려로 범어사 명정학교범어사 지방학림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때 강당 생도였던 김재호범어사 3·1 운동에 참가하였다. 3월 17일 시위를 계획하기 위해 범어사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학생들은 졸업생 송별회를 마치고 범어사 포교당이 있는 동래구 복천동으로 갔으나, 미리 정보를 입수한 일본 경찰에 의해 몇몇의 주동자가 체포되자 김재호는 도망쳐서 강당 동료들과 함께 범어사로 돌아왔다.

이후 김재호범어사 명정학교와 지방학림의 학생들과 함께 다시 거사를 준비하여, 3월 19일 대대적인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김재호는 일본 헌병에 의해 체포되어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대구감옥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김재호범어사 불교전문학원을 졸업하고 포교사가 되어 불교의 대중화와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활동하던 중에 해방을 맞이하였다. 1969년에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범어사 3·1 운동 주도로 체포되어 6개월의 옥고를 치른 것이 확인되어 199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참고문헌]
  • 『부산시사』4(부산직할시사편찬위원회, 1991)
  • 『항도 부산』12(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1995)
  •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http://www.koreanhistor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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