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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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守性 |
영어음역 | Gim Suse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선화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수성(金守性)[1927~2002]은 1927년 5월 28일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서 태어났다. 1943년 부산초량상업학교[구 부산초량상업실수학교]에 재학 중에 차병곤(車炳坤)·박정오·신정호(辛正浩)·전창호·정오연과 함께 윤독회를 통해 국내외 정보를 교환하고, 『조선 역사』 등의 책을 읽으면서 독립 의식을 키워 갔다.
동래 지역의 비밀 결사를 꾸리기 위해 동지를 규합하던 차에 동래 지역의 배광진(裵光珍)·배봉수(裵鳳秀)와 연결되면서 1944년 5월 1일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2동 부산진 시장 인근에 있던 신정호의 집에서 순국당(殉國黨)을 결성하였다. 김수성은 순국당에서 박정오·박태권과 함께 부산 지역 행동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순국당은 총독 암살, 일본군 군사 시설 파괴, 일본인 집단 거주지 방화, 은행 습격, 미군 공습시 산불 놓기 등을 행동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가 실행에 옮기기 어려워지면서 이들은 중국 둥베이[東北]의 한인 독립군에 들어가기로 결정하였다.
선발로 간 차병곤과 윤창석에 이어 2차로 박태권과 김수성이 함께 함경북도 길주군까지 갔으나 7월 28일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독립운동, 비밀 결사 조직,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1년간 검찰에 계류된 채 부산형무소 구치감에 구류되어 있었다. 구류 기간이 만기된 1945년 8월 1일 부산지방검찰청에서 배봉수·김진옥·남정기·박태권·전창오·윤창석·아사모토[朝本] 등과 함께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귀가 조치되지 못하고 일반 기결수와 같이 부두 작업에 투입되었다가 해방을 맞아서 1945년 8월 18일 풀려났다. 2002년 12월 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3년에 건국 포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