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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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辛正浩 |
영어음역 | Sin Jeongh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 795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대민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신정호(辛正浩)[1928~?]는 1928년 3월 3일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 795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산진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초량상업학교에 진학하였다. 1943년 부산진초등학교 동창생인 차병곤(車炳坤)·박정오 등과 함께 윤독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차병곤의 사촌 형인 조선청년독립당 이관수(李觀洙)의 영향을 받으면서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동시에 또래의 청년 학생들을 규합하기 시작하였다.
윤독회의 회원들은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의 배관진·배봉수(裵鳳秀) 등과 결합하면서 윤독회의 조직을 항일 학생 비밀 결사로 확장 재편하였다. 이윽고 이들은 1944년 5월 1일 신정호의 집에서 순국당(殉國黨)을 결성하였으며, 당시 참석자는 13인이었다. 순국당은 민족 독립과 주권 회복을 위해 투쟁할 것을 강령으로 하고, 행동 목표로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 총독의 암살, 일본군의 군사 시설 파괴, 일본인 집단 거주지의 방화, 은행 습격, 미군 공습시 산불 놓기 등을 결의하였다. 이때 신정호는 조직책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5월 8일 이들은 영도 다리 난간에 ‘대한 독립 만세’라고 쓴 벽보를 붙이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일본군 군용 철교 파괴 등을 도모하던 중 계획이 불가능해지면서 중국 둥베이[東北]로 가서 항일 독립군에 들어갈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7월에 차병곤 등 순국당 당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에 속속 합류하였다. 하지만 1944년 7월 25일 부산에서 순국당의 존재가 일제 경찰에 포착되어, 결국 8월 1일까지 순국당원 전원이 검거되었다. 순국당원들은 1년간 검찰에 계류된 채 부산형무소 구치감에 구류되어 있었다. 구류 기간이 만기된 1945년 8월 1일 신정호는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가, 8·15 광복을 맞아 기소가 기각되어 비로소 8월 18일에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3년에 건국 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