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584 |
---|---|
한자 | 金圭直 |
영어음역 | Gim Gyuji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44[복천동 205]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서용태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규직(金圭直)[1909~1929]은 1909년 2월 1일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205번지에서 출생하였다. 부산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7년 봄에 같은 학교 동급생인 양정욱(梁正彧)·윤태윤(尹兌潤)·윤호관(尹昊爟)과 다른 학교에 다니던 김봉갑(金奉甲)·윤병수(尹炳洙) 등 10여 명과 함께 민족정신의 함양과 항일 투쟁을 목표로 하는 비밀 결사인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김규직과 독서회 회원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기관지로 『흑조(黑潮)』라는 월간지를 만들어 비밀리에 학우들에게 선전하고 동지를 규합하는 것에 주력하였다.
김규직은 학생 중심의 독서회 활동으로는 항일 투쟁 활동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1927년 가을에 자신의 집에서 모임을 갖고 조직의 강화와 동지 규합 및 투쟁을 보다 활발하게 전개하기 위하여 종전의 독서회를 발전적으로 해산하였다. 그리고 김규직을 대표로 하는 흑조회(黑潮會)[또는 혁조회(革潮會)]를 발족하여 유진흥(兪鎭興)·최장학(崔章學)·어소운(魚小雲)·최명인(崔嗚寅) 등 부산과 동래 지역의 각계 인사들과 연합하였다.
흑조회는 매월 정기 모임을 열고 비밀 월간지를 계속 발행하였으며, 회원들이 학생과 일반인을 각각 분담하여 맡아 항일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흑조회는 1928년 6월 18일부터 부산제2상업학교에서 일본인 교사를 배척하는 배일 동맹 휴학을 하였다. 이 무렵 김규직은 소년 운동에도 적극적이었으며 조선소년총연맹 중앙 집행 위원, 경남소년연맹 건설 위원 및 중앙 상무 서기, 동래소년동맹 위원장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부산제2상업학교 동맹 휴학 사건의 주동자 색출에 혈안이 된 일제 경찰은 1928년 겨울에 부산제2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유학 정보를 알아보러 일본에 다녀오던 흑조회 회원 양정욱을 연락선에서 검거하였다. 양정욱을 취조하던 일제 경찰은 압수한 일기장에서 12명의 흑조회 간부 명단을 찾아냈으며 결국 김규직을 비롯한 흑조회 간부 7명이 구속되었다. 구속된 흑조회 간부들은 「치안 유지법」 위반 혐의로 동래경찰서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했으며, 이들을 고문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악질 친일 경찰 노덕술(盧德述)이었다.
노덕술의 악랄한 고문에 시달렸던 김규직은 동래경찰서에서 부산형무소로 옮겨져 예심을 받던 도중 1929년 2월 13일 옥사하였다. 부산형무소에 함께 수감되었던 양정욱과 유진흥도 병보석으로 가출옥하였지만 고문의 후유증으로 병에 걸려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6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